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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죽음준비 교육 프로그램 <아름다운 하늘 소풍 이야기> 수업이 있는 날, 집에서 조금 일찍 출발해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보고 싶은 세계의 추모공원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지난 4월 18일 개막한 <보고 싶은 세계의 추모공원 사진전>은 2010년 2월 <세계 장례풍속 특별전>과 10월 <천국 가는 길에 국화꽃밭전>에 이어 세 번째로 장례식장 로비에서 열리는 전시회다.

사진전을 알리는 현수막과 전시된 사진들
▲ 보고 싶은 세계의 추모공원 사진전 사진전을 알리는 현수막과 전시된 사진들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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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을 왔다 들른 것으로 보이는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 몇 명과 점심을 먹은 뒤 커피 한 잔씩을 들고 동료들과 전시장을 둘러보는 젊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시회는 아시아와 북아메리카, 중서부 유럽, 라틴(南) 유럽, 북유럽, 동유럽으로 나누어 각 나라의 대표적인 추모공원을 중심으로 장례식장과 화장장, 봉안 관련 시설, 자연 장지 등을 보여주고 있다.

땅이 넓은 미국과 캐나다의 평장묘역은 골프장이나 잔디밭으로 보인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등 중서부 유럽의 추모공원들은 잘 가꾸어진 정원에 예술성이 뛰어난 추모 작품을 갖추고 있다. 

화장하고 남은 가루, 즉 유분(遺粉)이나 유회(遺灰)를 화초나 잔디 혹은 나무 밑에 묻어 장사하는 것을 통틀어서 '자연장'이라고 하는데, 사진 속에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주로 잔디밭에 마련된 '산골(散骨)장소'이다. 산골장소에 고인의 유분을 뿌리거나 묻은 다음 근처에 명패를 만들어 붙여 떠난 사람과 묻힌 곳을 추억하는 형태가 가장 많다.

'벽식 봉안당'이라고도 부르는 봉안담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기둥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회랑에 봉안하는 주랑(柱廊)식 봉안당은 그 나라의 건축 양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푸른 숲을 배경으로 아담하게 자리 잡은 프랑스 니스의 코트다쥐르 니스 화장장은 안내판이 없으면 전원주택이나 별장으로 착각할 정도로 건물이 산뜻하고 예쁘다. 거기에 자갈 마당을 만들어 산골을 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는 섬 전체가 묘지인 산 미켈레 인 이솔라 섬이 있다. 베네치아에서는 오래전 프랑스 점령 시절에 매장이 비위생적이라고 해 이 섬에 묘지를 설치했다고 한다. '죽음의 섬'이라고도 불리며 섬 전체에 화장장과 묘지, 봉안시설이 마련되어 있는 종합 장사시설이다. 푸른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섬, 저 뒤로 보이는 키 큰 나무들과 노란색의 시설물들은 현실의 장소가 아닌 신기루 같다.

전시장 입구에서
▲ 보고 싶은 세계의 추모공원 사진전 전시장 입구에서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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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추모공원과 묘지, 봉안 시설, 자연 장지, 추모의 숲, 추모 조형물, 추모 공간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도심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호젓한 숲길에 접어든 기분이다. 여기 어디쯤 내 몸 누일 곳, 아니 뿌려질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만큼 자연은 아름답고 눈부시다.

옆에서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던 20대 초반 여성 도우미에게 어디가 제일 맘에 드는지 물으니 넓은 잔디밭으로 되어 있는 미국이나 캐나다가 좋단다. 비록 화장한 다음이라고는 해도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이나 광장 밑에 묻히는 것보다는 그냥 눈으로만 보는 잔디에 뿌려지는 게 나을 것 같다며 화사하게 웃는다.

사실 단행본이나 안내 책자에서 여러 차례 접한 외국의 추모공원을 굳이 또 보러 전시장을 찾았던 것은 전시장소가 장례식장이었기 때문이다. 장례와 장사 지내는 일이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 있으며, 결국, 삶과 떠남, 떠난 후의 자리가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떠난 자가 잠시 머물러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그를 보내는 의식을 행하면서도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또 오늘처럼 추모공원 사진을 보며 너와 내가 묻힐 곳을 생각해 본다. 이처럼 삶과 죽음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좋은 교육이 또 어디 있을까.

자연장을 권하는 홍보 포스터
▲ 자연장 홍보 포스터 자연장을 권하는 홍보 포스터
ⓒ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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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수업을 위해 복지관 강의실로 올라가다 보니 층계 벽에 포스터 한 장이 붙어 있다. 어린이 모델이 "우리 할아버지는 달라요!"라고 한다. 자연장을 알리는 포스터다. '후손에게 묘지 대신 아름다운 공원을 선물해 주세요.'

나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내가 떠난 후 이 땅에 남아 살아갈 자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남겨줄 것인지, 죽음준비교육 강사로 어르신들과 날마다 하는 고민이다. 그동안의 수업 내용에도 들어 있었지만 좀 더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잠시 살다 떠나는 지구에 가장 폐를 덜 끼치고 떠나는 방법을 어르신들과 함께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 동안 엄청난 폐를 끼쳤으니 떠난 후에라도 좀 덜 미안하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보고 싶은 세계의 추모공원 사진전> 2011. 4. 18 ~ 6. 17 연세장례식장 1층 아트홀 로비 (주최 : 학교법인 연세대학교 연세장례식장 / 후원 : 사단법인 한국장묘문화개혁국민협의회)



태그:#보고 싶은 세계의 추모공원 사진전, #추모공원, #자연장, #죽음 , #죽음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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