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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나이가 차지도 않았는데
급기야 양궁의 슬픔을 끼치었으니
진실로 천도란 앎이 없는 것이라 하겠다
아아 슬픈 일이로다"

"늙은 이 몸 죽음과 종이 한 장 차인데
뼈야 썩어도 좋다만
마음이 지극한 도를 깨닫기 어렵도다.
하찮은 생졸년 따윈 다 부질 없는 것
이름을 말 안 해도 응당 난 줄 알테지."

앞의 것은 열세 살에 세상을 떠난 세종 임금의 큰딸 정소공주의 묘에서 나온 묘지명이고, 뒤의 것은 조선시대 김광수라는 사람이 죽기 전 스스로 써놓은 묘지명이다. 여기서의 '묘지'는 한글로 쓰면 같지만, 무덤을 뜻하는 '墓地'가 아니라 '墓誌'다.

전시장 입구
▲ 삶과 죽음의 이야기, 조선 묘지명 전시장 입구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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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 선조들은 무덤 안에 묻힌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무덤 내부나 그 언저리 땅 속에 기록을 남겼는데 이를 묘지(墓誌)라 한다. 또한 이 묘지(墓誌)에 묻힌 사람을 칭송하거나 추모하는 시구 즉, 명(銘)를 함께 실은 것을 묘지명(墓誌銘)이라고 한다.

돌, 청자, 백자, 백자청화, 분청사기, 오석, 대리석, 벽돌 등 재료는 물론 모양도 네모난 판형에서부터 서책형, 접시형, 항아리형, 원통형, 네모난 병 모양, 벽돌 같은 직육면체, 주사위 같은 정육면체 등 다양해 일일이 꼽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니 묘지, 묘지명에 담은 글 내용은 또 얼마나 다르겠는가. 기본적으로 이름, 자, 관직, 교류관계, 생일, 졸일(사망일), 향년, 자손 등에다가 업적과 행적을 넣거나 절절한 추모의 마음을 담고 있다. 

고인의 무덤 혹은 근처 땅 속에 넣기 위해 어쩌면 저토록 정성들여 글을 짓고, 글자를 새기고, 가마에 구워냈을까… 하는 마음에 신기하면서도 지금의 풍습과는 전혀 달라 낯설기도 하다.

묘지와 묘지명을 만들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훗날 묻힌 이를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조상의 묘를 받들고 유지하는 것이 자손의 첫째 가는 책임이었던 뿌리 깊은 전통을 생각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조상의 묘를 오래도록 잘 모시기 위해 만들었던 묘지와 묘지명은 효의 표시이면서 실천이었고, 그 당시의 장례문화였던 것이다. 

전시장 안 벽에 적혀 있는 '삶 그리고 죽음'
▲ 삶과 죽음의 이야기, 조선 묘지명 전시장 안 벽에 적혀 있는 '삶 그리고 죽음'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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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묘지명의 역사적 변천과 제작 방법을 보여주면서, 한쪽에서는 묘지명에 나타난 사연과 다양한 계층의 묘지명을 보여주고 있는데 총 150여 건의 묘지를 볼 수 있다. 사람의 한 평생을 간추려 적어 놓은 묘지명을 보면서 어찌 삶과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앞에 소개한 정소공주의 경우는 묘지명 옆에 '태 항아리'가 나란히 놓여있어 사람의 나고 죽음을 한 눈에 보게 된다. 보통 태 항아리는 태실에 묻는데 무슨 까닭인지 정소공주의 태 항아리는 묘에서 묘지명과 함께 발견됐다고 한다. 열세 살 어린 나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끝내는 만고에 없던 사변에 이르고, 백발이 성성한 아비로 하여금 만고에 없던 짓을 저지르게 하였단 말인가?"

"형이 눈물을 바르면서 쓴다"

앞의 것은 아버지 영조가 쓴 사도세자의 묘지의 일부이다. '아버지의 변명, 아내의 슬픔'이란 제목으로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뒤의 것은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이름 모를 형의 글이다. 아들의 묘지를 직접 쓴 아버지의 마음, 동생을 앞세운 형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의 장례 풍습에서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나 떠난 후 남은 사람들이 한 마디 적어준다면 과연 무어라 적어줄까 상상해 본다.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남아 전해져오는 고인에 대한 글들을 보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수굿해진다.

한 나라를 호령했던 임금도, 남부러울 것 없이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을 왕자와 공주도, 맘껏 권세를 누린 높은 사람도, 학문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도, 이름 없는 보통 사람도 결국 같은 길-죽음의 길로 떠났다. 아니 떠난다. 그러니 지금 여기의 삶이야말로 내가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진짜 내 것이다. 주어진 날들을 정성껏 살아내고 미련 없이 떠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걸 알까, 모를까. 삶과 죽음을 담은 전시회를 알리는 현수막 아래에서 박물관에 체험학습을 온 초등학교 아이들이 모여 앉아 재잘거린다. 먼발치에서 아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속엣말을 했다. '얘들아, 너희는 삶 쪽에 가까이 있으니 아무쪼록 맘껏 행복해라!' 이런 마음이 어이없었을까. 아이들 있는 쪽에서 갑자기 까르르 웃음이 터져나온다.

현수막 아래 앉은 아이들
▲ 삶과 죽음의 이야기, 조선 묘지명 현수막 아래 앉은 아이들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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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삶과 죽음의 이야기, 조선 묘지명>( ~ 4/17,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태그:#삶과 죽음의 이야기, 조선 묘지명, #묘지, #묘지명, #죽음, #죽음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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