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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여행 일곱 번째 이야기입니다. 오키나와평화자료관과 평화공원을 몇 번에 나누어 소개합니다. 저희의 여행은 1월 15일 토요일부터 18일 화요일까지 3박 4일 일정이었는데, 오키나와현립박물관과 오키나와 평화공원과 평화자료관 관람 일정이 월요일 오후로 잡혀있었습니다.

처음엔 현지 여행사에서도 저희 일행들도 일반적으로 박물관, 미술관 등이 월요일에 휴관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 투어를 시작하면서 일정을 확인하는데, 어떤 분이 "월요일인데 박물관 볼 수 있나?" 하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가이드가 갈피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평화자료관에도 전화를 하고, 오키나와현립박물관에도 전화로 확인을 하였습니다. 확인 결과 역시 월요일은 휴관일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일정을 급히 수정하였습니다.

오키나와현립박물관 일정을 다음 날로 미루고, 오전에 카데나기지를 볼 수 있는 '미치노에끼카데나' 전망대와 찌비치리동굴을 견학하고 오후에는 히메유리탑과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을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대신 넷째 날 오전에 둘러보기로 하였던 나하국제거리를 평화기념공원에서 돌아오면서 밤 시간에 들르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하였습니다. 일정을 바꿔놓고 보니 딱 맞게 잘 바꿨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오키나와 최고의 번화가인 나하국제거리를 넷째 날 오전에 둘러보는 것은 좀 싱거운 일정이기 때문입니다.

오키나와 평화기념 공원 한국인 희생자 위령탑
 오키나와 평화기념 공원 한국인 희생자 위령탑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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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출신 희생자 1만 여명, 명단엔 600명도 없어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과 평화기념자료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경이었습니다. 오후 6시까지 약 세 시간 동안 이곳에 머물렀는데, 세 시간 만에 둘러보기에는 너무 넓고 볼 것이 많은 장소였습니다.

만약 오키나와 여행을 간다면 평화기념공원과 자료관을 둘러보는 데 적어도 한 나절은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평화'와 '역사'를 주제로 한 이번 여행의 일행들은 대부분 자료관을 꼼꼼히 둘러보았기 때문에, 탁 트인 바다를 앞에 두고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싸인 평화공원을 산책할 시간이 많이 부족하더군요.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에 도착하면 맨 먼저 한국인위령탑을 찾게 됩니다. 저희가 한국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입구 쪽에 내려서 자료관으로 향하기 전에 위령탑을 먼저 둘러보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한국인희생자위령탑 입구에는 위령탑 건립의 취지를 새겨놓았습니다. 위령탑 건립 취지를 담은 비석에 새겨진 글에 따르면 징병, 징용으로 끌려와 희생된 한국인의 숫자는 1만여 명이라고 합니다.

한국인 희생자 위령탑 건립 취지
 한국인 희생자 위령탑 건립 취지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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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위령탑 건립위원회의 취지문
 한국인 위령탑 건립위원회의 취지문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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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모두 20만여 명인데, 그중 오키나와 출신 군인이 12만여 명, 일반 현민이 약 9만4천여 명, 군인 군속이 2만8천여 명, 미군 1만2천여 명, 그리고 기타 희생자가 6만5천여 명인데, 그중에 1만여 명이 한국인이라는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무려 1만 명이 오키나와로 끌려와 진지구축과 탄약운반에 동원됐고, 100개가 넘는 오키나와의 군 '위안소'에 조선 여성 다수가 일본군 위안부로 수용었다고 합니다.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 위령탑이라고 하는데, 1975년에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건립 취지문이 새겨진 비석의 바로 오른쪽에는 노산 이은상이 쓴 <영령들에게 바치는 노래>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키나와 전쟁 한국인 위령탑
 오키나와 전쟁 한국인 위령탑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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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위령탑 앞에서 잠깐 묵념을 올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였습니다. 오키나와평화기념 공원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없이 오키나와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넣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평화의 주춧돌'이라고 부르는 이 사업을 통해 매년 한 차례씩 추가로 확인되는 희생자들의 이름을 비석에 새겨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인 희생자 명단이 새겨진 비석을 찾아보았습니다. 가이드의 안내 덕분에 수많은 비석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비석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 희생자가 1만여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비석에 새겨진 이름은 채 500명이 되지 않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희생자 명단에도 80여 명의 이름뿐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희생자 명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희생자 명단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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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희생자 명단
 대한민국 희생자 명단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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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뒤에 남북으로 나뉜 '조선인' 희생자들

비석을 보시면 매년 추가로 이름이 새겨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 중 하나는 전쟁의 아픈 상처를 딛고 평화를 지향하는 이곳에서도 남북한 희생자들은 분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거리이기는 하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희생자 탑과 대한민국 희생자 탑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여기 이름이 새겨진 희생자들은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생기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생긴 이후에도 일본에서 조선 국적으로 살아가는 동포들이 있는 것처럼 그들도 징용과 징병으로 끌려올 때는 '조선적'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훗날 희생자들의 뜻과 상관없이 둘로 나뉜 조국 때문에 그들도 나뉘게 된 것이지요.

아울러 한국인 희생자들을 추가로 찾아내려는 노력이 지지부진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09년에는 비석에 추가로 각인된 명단이 없으며, 2010년에는 딱 1명뿐이더군요.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도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 노력에 소극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앞서 소개한 것처럼 여고 동창회가 앞장서서 히메유리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히메유리탑과 기념공원을 만들어낸 것과 비교하면(관련기사 : 그들이 꽃다운 소녀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유는?)  한국 정부의 노력이 미진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오키나와, #평화기념자료관, #평화기념공원, #전쟁,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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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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