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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공릉천에는 한국을 찾는 겨울철새 중 가장 커다란 새가 찾아왔다. 바로 하늘의 제왕이라 불리는 독수리다. 사실 독수리는 내가 새를 좋아하게 만들어준 새이다. 내가 4학년 때 파주환경운동연합 주최로 전세버스를 타고 다른 초등학생들과 민통선 안으로 독수리를 보러갔다. 그 날 나는 평소에 동네에서 보던 까치랑은 비교도 안 되게 커다란 독수리들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림책이나 동화에서 보던 독수리를 실제로 보니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런 독수리를 올해는 공릉천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매혹시킨 독수리의 위풍당당 하늘을 나는 모습.
 나를 매혹시킨 독수리의 위풍당당 하늘을 나는 모습.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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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는 몽골에서 새끼를 기르고 겨울이 되면 한국을 찾는다. 독수리는 몸집이 거대해서 새끼 양을 채간다든지 아이들을 채간다는 소문이 있어 한때는 무자비하게 사냥을 당했던 새이다. 그러나 독수리는 덩치와 달리 발의 힘이 약해 직접 사냥하는 기술이 없어서 죽은 동물의 시체를 파먹는 자연의 청소부다.

누구나 한번쯤 동물의 왕국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가 먹잇감을 사냥하면 하이에나나 대머리독수리가 와서 빼앗아 먹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한국에 있는 독수리도 그렇게 시체를 파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새들의 시력은 보통 사람보다 8배 정도 뛰어나다고 하는데 독수리 같은 맹금류들은 40배 정도 더 뛰어나다고 한다. 그런 시력을 가지고 넓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시체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옛날과 달라서 독수리들에게 필요한 동물시체가 많지 않다. 이런 독수리들을 위해 사람들은 죽은 돼지나 송아지들을 철원 토교저수지나 임진강의 장단반도에 놔준다. 그 덕분에 독수리들이 우리 한국에서 잘 지낼 수 있었는데 최근 들어 구제역과 AI로 독수리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금지되어 독수리들이 살아가기가 힘든 형편이다.

그런 이유로 독수리들이 최근에 공릉천을 찾아오는 것 같다. 조류전문가 말에 의하면 보통 독수리들은 사람들이 먹이를 주는 철원이나 장단반도 같은 곳을 찾는데 공릉천을 찾은 일은 이례적 이라고 한다.

공릉천 하늘을 선회하고 있는 독수리들.
 공릉천 하늘을 선회하고 있는 독수리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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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탐조를 다녔을 적에 공릉천 하늘 높이 빙빙 돌고 있는 몇 마리의 독수리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독수리들이 공릉천 논밭에 내려앉은 것이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가 떼로 앉아있었다. 나는 맨 처음에 공릉천에서 독수리를 봤을 때 논밭에 무슨 시꺼먼 덩어리가 앉아는 줄 알았는데 카메라로 찍어보니 바로 독수리였다.

독수리들이 논밭에 앉아있다.
 독수리들이 논밭에 앉아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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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들이 앉아 있던 논둑길에는 자동차 2대가 서 있었는데, 아저씨 2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자동차로 접근했기 때문인지 독수리들을 날리지 않고 가까이서 찍고 있는 아저씨들이 부러웠다. 나는 멀리서나마 독수리를 관찰하고 있는데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독수리들 옆에서 사진을 찍고 계시던 분은 며칠 전에 알게 된 조류보호협회 김포지회장을 지냈던 신현칠 선생님이었다.

자동차 뒤에 몸을 숨겨 독수리를 관찰하고 있다.
 자동차 뒤에 몸을 숨겨 독수리를 관찰하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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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반갑다며 내게 자기 쪽으로 오라고 했지만 그 쪽으로 갈려면 한참을 빙 돌아야 했기 때문에 멀리서 지켜만 봤다. 신현칠 선생님 옆에서 사진을 찍고 계시던 한 아저씨가 독수리들이 앉아 있는 논밭 위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서는 손에 들고 있는 뭔가를 휙- 던져주고 갔는데 그것은 죽은 큰기러기 사체였다. 또 자동차에서 고라니 사체를 질질 끌고 올라와서 논밭에 툭 놓고는 돌아갔다. 저 고라니를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해서 신현칠 선생님께 통화로 여쭤보니 로드킬 당한 고라니를 주워온 것이라고 한다.

독수리들이 떼로 달려들어 고라니 시체와 큰기러기 시체를 파먹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독수리들은 시체를 던져주려고 논밭 위로 올라왔던 아저씨를 피해 전부 날아가 버렸다. 완전히 날아간 건 아니고 고라니와 큰기러기 사체 하늘 위로 빙글 빙글 선회를 하며 사람들이 사라지길 기다렸다. 독수리들은 자신이 착륙하려고 하는 장소에 바로 착륙하지 않고 그 자리를 몇 바퀴 빙 빙 돌며 선회하면서 위험한 게 있나 없나 살핀 뒤에 앉는다. 그래서 신현칠 선생님과 다른 한 분도 자동차를 타고 멀리 비닐하우스 뒤로 차를 숨겼다.

신현칠 선생님과 다른 아저씨가 독수리가 땅에 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나는 느긋하게 터벅터벅 걸어가서 신현칠 선생님에게 갔다. 신현칠 선생님은 자동차로 마중 나와 주시고 아까 고라니 던진 아저씨가 자기 친구인데 지금 땅에 앉은 다른 독수리를 찍고 있다며 옆에 가서 같이 찍으라고 했다.

나는 논둑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서 독수리를 찍고 계시는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연사속도가 빠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계시는 아저씨의 얼굴을 보니 헉! 구면이다. 이 아저씨도 나를 바로 알아보는 눈치다. 그러고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인터넷에 나 깠더라?"

독수리들을 찍고 있는 기자아저씨.
 독수리들을 찍고 있는 기자아저씨.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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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 아저씨는 내가 예전에 공릉천에서 처음으로 삵을 만났을 때 함께 있었던 기자 아저씨였다. 삵을 관찰하던 도중에 기자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삵이 놀라 도망갔던 적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첫 기사로 올렸었는데 그 기사를 읽으신 모양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04782&PAGE_CD=

기자 아저씨는 내게 "삵이 나 때문에 도망간 것 같았어?"라고 물어보셨다. 정말로 화가 난 말투였으면 내가 무서워서 우물쭈물 했을 텐데 나를 괜히 겁을 줄려는 장난기가 섞인 말투 같아서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잠시 후 아저씨가 찍고 있던 독수리가 내 등장 때문인지 날아갔다. 그러자 아저씨는 "삵은 나 때문에 도망 갔고 얘들(독수리)은 너 때문에 날아갔네?"라고 말하시며 소리없이 씩 웃었다. 내가 아무 말을 안 하자 아저씨는 "너 때문에 (독수리가) 난 게 아니고 먹을 것이 다 떨어져서 난 거야"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인터넷 포탈이나 기사로 글을 쓸 때는 참 조심히 써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언제 어디서 만날지 사람의 인연이란 것이 알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사체를 파먹는 자연의 청소부 독수리.
 사체를 파먹는 자연의 청소부 독수리.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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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와 까치들.
 독수리와 까치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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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여러 날을 연속으로 공릉천을 찾았다. 독수리들이 고라니를 뜯어먹는 장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독수리들은 까치랑 까마귀들이 신나게 고라니 시체를 뜯어먹는 모습을 멀뚱멀뚱 지켜보다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나타나면 날아가 하루 종일 높은 하늘을 빙빙 돌 뿐이었다. 그러다가 잠을 자러 파주 적성면 쪽으로 날아가는 일이 되풀이 되었다.

하루는 독수리들이 하늘을 빙빙 돌고 있어서 멀리 컨테이너 박스 뒤에 숨어서 독수리들이 앉길 기다리자 하나둘 땅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독수리들은 땅에 내려앉을 때 날개를 구부려 급강하를 하는데 어찌나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지 깃털이 휘날리면서 바람과 부딪치는 "후우웅~"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독수리들이 논밭에 착륙을 했고 다른 독수리들은 계속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날은 다른 때와 달리 독수리가 무척 많았다. 나는 근처에 있는 비닐하우스 뒤에 몸을 숨기고 접근했는데, 어떤 구간은 퇴비를 쌓아놔서 지나가기 괴로웠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 그렇게 접근해서 독수리와 30m 정도의 거리를 두게 되었으나 몸을 숨길 마땅한 공간이 없어 비닐하우스에서 다시 나와 논두렁 밑으로 빙~ 돌아갔다.

신현칠 선생님은 15m 거리에서 사진을 찍어도 안 날아간다고 하였는데, 어림잡아 50m, 1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움직여도 독수리들이 날아갔다. 기러기나 오리들처럼 한꺼번에 날아오르진 않지만 한 마리 두 마리 날아가니, 나중에는 한 마리도 논밭에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더 많은 독수리들이 앉아 있는 곳은 앞쪽에 있는 논밭이었다. 여기에는 비닐하우스처럼 몸을 가리고 접근할 곳이 없어 포복을 해서 앞에 있는 수로에 몸을 숨겼다. 이래봤자 독수리들은 바로 나의 존재를 알아채겠지만 적어도 날아가지는 않는다. 이렇게 힘들게 접근을 해서 독수리들이 고라니 시체를 뜯어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독수리들은 여전히 고라니 사체를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독수리들이 고라니 사체를 안 먹는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아직 고라니 사체가 썩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람소리를 내며 급강하를 하고 있는 독수리
 바람소리를 내며 급강하를 하고 있는 독수리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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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공릉천에 와보니 독수리들은 논밭에는 없었고 한 마리가 공릉천 위에서 선회를 하고 있다가 공릉천 강변 갯벌에 앉으려고 급강하를 하였다. 논밭이 아닌 얼음판 위에 앉는 모습은 처음 보는 일이라 나는 마구 사진을 찍어댔다. 독수리가 착륙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따라 가다보니 또 다른 독수리가 보였다. 다른 한 마리가 먼저 앉아 있었던 것이다. 최근 공릉천에는 죽은 오리 숫자가 늘었는데 그 오리들을 먹으려고 내려앉은 모양이다.

착륙하던 녀석이 먼저 와 있던 독수리의 먹이를 빼앗으려고 하자, 먼저 와 있던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며 경계를 해서 착륙하던 독수리는 주변에 있던 유빙 위에 앉았다. 먼저 와 있던 독수리는 안심이라도 되는 듯 날개를 접고 자신이 먹고 있던 뭔가를 계속 파먹기 시작했다. 날아온 독수리는 유빙 위에 앉아서 옆에 있는 까치들이 서로 싸우는 걸 구경하는데, 까마귀 한 마리가 나타나서 독수리를 괴롭혔다. 이리저리 독수리 주변을 빙글 빙글 돌아다니면서 날개깃을 물고선 늘어진다.

이때 독수리가 까마귀를 째려보면 까마귀는 잠시 놀라 거리를 뒀다가 금방 또 달려들어서 독수리를 괴롭힌다. 하지만 독수리는 딱히 까마귀를 신경 쓰지 않는다. 까마귀가 자기 털을 뽑거나 말거나 오히려 나를 신경 쓰고 있었다. 군인들이 보초 서는 참호 같은 곳에서 엎드려 사진을 찍고 있는데도 독수리는 나를 한번 노려보고는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멀리 날아가 버렸다.

독수리: 뭐야? 어떤 자식이 내 날개깃을 잡아당겨-?
까마귀: 야 형님 왔다. 아는체 좀 해봐라 짜샤
 독수리: 뭐야? 어떤 자식이 내 날개깃을 잡아당겨-? 까마귀: 야 형님 왔다. 아는체 좀 해봐라 짜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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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엇! 형님 나오셨습니까?
까마귀: 오냐- 밥은 먹고 다니냐?
 독수리: 엇! 형님 나오셨습니까? 까마귀: 오냐- 밥은 먹고 다니냐?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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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아가지 않은 나머지 독수리를 관찰하기 위해 갈대숲으로 살살 접근했다. 삵처럼 소리 없이 걷고 싶었지만 한발 한발 접근할 때마다 살얼음들과 갈대를 밟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독수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갈대숲에서 얼굴만 내밀어 사진을 여러 장 찍었을 때 독수리가 나를 쳐다봤다. 부리에 갯벌 흙이 잔뜩 묻은 걸로 봐서는 갯벌 속에 동물의 사체가 있는 모양이다.

독수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어 그때마다 잠시 얼굴을 갈대숲으로 천천히 숨었다가 다시 자기 일에 전념할 때, 갯벌 흙을 마구 파헤치는 독수리 사진을 찍었다. 독수리는 걸을 때마다 날개를 펼쳐 균형을 잡기 바빴다. 갯벌이라 그런지 발이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 독수리의 우스꽝스러운 걸음을 약올리기라도 하는지 까치는 옆에서 깍깍 울어댄다. 독수리는 여전히 까치들을 무시하며 자기 할 일을 꿋꿋이 하다가 갑자기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날아가 버렸다. 먹이를 찾아 갯벌을 파헤치고 있었는데 나 때문에 날아가 버린 독수리에게 미안해졌다. 독수리 옆에서 시끄럽게 울던 얄미운 까치는 끝까지 독수리를 쫓아서 괴롭혔다.

갯벌에 앉은 독수리가 흙속을 파헤치고 있다.
 갯벌에 앉은 독수리가 흙속을 파헤치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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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간 공릉천을 찾아온 독수리들을 지켜보면서 "얘들 먹고 살기 참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겨울은 100년 만에 찾아온 강추위라 사람도 힘들고 새들도 힘든 것 같다. 더구나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AI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퍼지면서 독수리들에게 먹이주기 행사가 중단되어 더 힘들다. 먹이를 찾으러 공릉천을 찾아온 독수리들이 겨울을 잘 나고 몽골로 잘 돌아가기를 바란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철원처럼 죽은 동물 사체를 두어 독수리들만의 공짜 뷔페식당이라도 차려주고 싶다. 독수리들아 니들이 아무리 하늘의 제왕이라 해도 밥은 꼭~ 챙겨 먹고 다녀라 응?

독수리가 날개를 펼쳐 날아가고 있다.
 독수리가 날개를 펼쳐 날아가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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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독수리의 독은 대머리 독 禿자 입니다. 시체를 먹을 때 머리털이 있으면 먹는데 방해되어 대머리로 진화되었다고 합니다. 새 이름에 대머리라니 참 재밌죠?



태그:#공릉천, #독수리, #파주, #철새, #구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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