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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을 맞아 매서운 추위가 몰려온 지난 6일 낮 서울 당산철교 아래 공원공사를 위해 오탁방지막으로 가둬놓은 한강물이 두껍게 얼어 있다.
 소한을 맞아 매서운 추위가 몰려온 지난 6일 낮 서울 당산철교 아래 공원공사를 위해 오탁방지막으로 가둬놓은 한강물이 두껍게 얼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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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아~ 어디고? 밖에 나다니지 마래이~ 거기 보일러는 이상 없나? 여긴 동파돼서 물이 안나온다."

어머니는 늘 속에 있는 걱정을 한다발 쏟아내신다. '여보세요'라는 말을 하는 시간도 아까운신가 보다. 그래서 늘 통화를 하면 어머니의 마음이 먼저 들린다. 지난 16일 '모스크바가 서울로 이사왔네'라고 중얼거리는 와중에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그날 밤 같이 사는 녀석의 어머니한테서도 전화가 왔다(그는 전라도가, 나는 부산이 고향이다). 약속이나 한 듯 전화를 한 것이다. 사투리는 달랐지만 타지에 자식 보내놓은 부모님들은 마음은 다 똑같은가 보다.

근데, 동파라니. 내 고향 부산 집은 아파트는 아니지만 빌라라서, 수도가 안 나올 정도는 아닐 텐데 진짜 추운가 보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던 2009년 겨울, '아 따뜻한 부산으로 가고 싶다'고 몇 번이나 되뇌었던가? 서울이 춥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 당시에는 내복입는 것은 물론, 몸을 꽁꽁 싸맸다. 그런데 서울은 내복으로 중무장한 내 무릎을 시리게 했다.

부산은 바람 때문에 추운 거지 기온 자체는 그렇게 낮지 않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추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느끼고, 부산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그런데 그런 부산이 -12.8℃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96년만의 최저기온이란다. 이제 부산도 도피처가 아니다. 부산에서 각종 사건사고가 터졌다.

동파 때문에 3일 동안 수업 못한 공부방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비리사건 때문에 모금의 손길이 줄었지만, 겨울일수록 따뜻한 손길이 더욱 더 필요하다. 부산의 대학생 후배들 중에도 '공부방'을 운영하며 수업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 '무궁화 야학'이라는 이름으로 초등학교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공부도 도와주고 있다.

이곳도 이번 한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수도가 얼어버린 것. 아이들이 "화장실 가고 싶어요"라고 하면 대책이 없어, 잠시 수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추위 때문인지, 평소 연락 한 번 안 하던 녀석들의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세탁기를 못 돌려서 일주일째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잠시 장갑을 벗고 핸드폰을 들었다가 손이 핸드폰에 붙어버린 사람, 머리를 안 말렸다가 그대로 얼어버린 사람 등등 천태만상이었다. 머리가 얼어버린 사람은 실내에 들어가서 한참이 지난 후에 언 머리가 녹아 주변에 물이 뚝뚝 떨어졌다는 후문이다.

얼마 전, 일하고 있는 단체의 홍익대 앞 사무실도 수도가 얼어버려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웬 걸, 후배 녀석이 화장실에서 일을 보던 중 수도가 얼어버렸다는 급보가 날아온 것이다. 흰종이에 '화장실 물 사용금지'라고 써 붙여놓았지만, 사태는 이미 벌어진 후였다. 그 녀석의 '결과물'은 이틀동안이나 그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개그콘서트> 복숭아학당의 박영진씨의 말처럼, 내륙은 춥고 해안은 따뜻하다느니, 3한 4온 이라느니, 이런 교과서적인 내용으로는 절대로 이번 추위를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대안은 없고 역시 유일한 도피처는 '집' 아니겠는가?

자취생들, 몸과 도시가스비를 맞바꾸다

부산 해운대 시가지 전경.
 부산 해운대 시가지 전경.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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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추위는 정말 지독하다. 12월부터 추운 날이 계속됐다. 그러나 가난한 자취생들은 보일러를 함부로 틀었다가, '생활고'라는 다른 추위와 싸울 수밖에 없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12월 중 가장 추운 날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나와 자취생들은 중무장을 했다. 내복과 후드티를 입고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고 냉기만이 우리를 감쌌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추워서 잠에서 깼는데, '보일러를 틀까? 말까?'라는 엄청난 내적 갈등을 겪다가 참고 그냥 잠을 청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침 서로의 처참한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일단 내가 쓰러졌다. 서울 와서 그렇게 아파본 적은 지난해 10월 신종플루가 한창 유행이던 때에 고열로 응급실에 실려가본 것 이후에는 처음이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보일러에 걸려 있던 봉인을 풀었다. 약값에 5천 원, 기력회복을 위해 죽과 맛난 음식을 사먹는 데 1만 원 이상이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회복될 즈음 내 옆에서 잠을 자는 동지가 쓰러졌다. 그리고 그 친구가 회복될 때쯤, 침대 위에서 자는 동지가 쓰러졌다. 그 와중에 감기 안 걸리는 가장 건강한 1명만이 유일한 생존자였다. 우리는 엄청난 교훈을 얻었다. 보일러 값보다 약값이 더 나간다는 진실을 우리는 몸소 알아냈다.

서울대 앞에 사는 친구 놈은 한 층에 여러개 방이 있는 곳에 거주하고 있는데, 밤마다 전쟁을 벌인다고 한다. 같은 층에서 방을 쓰는 사람들이 가스비를 공동부담하기 때문에, 자신은 늘 보일러를 꺼놓는다고 한다. 근데 새벽마다 보일러를 켜놓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잡히기만 해봐라, 그 놈 꼭 잡는다! 가스비 지가 낼 거야?"
"덕분에 감기 안 걸렸네, 고마워해야지."

친구 놈은 이 말에, "따뜻해서 좋긴 하더라"며 킥킥 거린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면 이내 다른 곳으로 생각이 미친다. 건강한 20대 청년들도 이렇게 픽픽 쓰러지는 날씨인데, 쪽방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어떨까 싶다.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실 텐데...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가난 때문에 죽어갈까? 19일 서울역에서는 60세의 노숙인 한 분이 사망했다고 한다. 날씨만큼 추운 세상이다.

코는 시리고 등은 따뜻한 '전기장판'

그렇게 남을 생각하다가도 내 코가 석자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우리의 생존을 위해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다. 보일러를 계속 틀어놓을 수도 없다. 하긴 집에서도 보일러는 틀지 않는다. 대안은 바로 전기장판! 이리저리 수소문에서 후배한테 얻어온 전기장판은 작동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떤 사무실 이사를 도와드리면서 안 쓰는 전기장판을 발견, 집에서 작동을 해봤다... 결론은 성공! 드디어 제대로 된 전기장판 하나를 구했다. 하나다! 그래서 전기장판을 세로로 놓지 않고 가로로 눕혀서 머리부터 엉덩이까지만 따뜻하게 덮고 다 같이 잔다. 그 아래에는 다른 이불을 깐다.

물론, 자다 보면 등바닥에서부터 상체 5cm까지만 따뜻하고, 위로는 추워서, 프라이팬 위 달걀 뒤집듯이 자주 뒤집어야 한다. 전기장판을 써본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은 해봤을 거다. 등은 따뜻한데 코는 시린, 그 말 못할 상황. 그나마 전기장판이라도 생겨서 요즘은 결딜 만하다.

재능교육 농성장 모습. 해당 사진은 지난해 9월 9일 촬영한 것입니다.
 재능교육 농성장 모습. 해당 사진은 지난해 9월 9일 촬영한 것입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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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날이 추우면 몸만 힘든 게 아니라 걱정부터 된다. 이 추운 날씨에 길바닥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12월 1일 GM대우 자동차 아치 위에 올라가신 두 분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나도 가끔 GM대우 농성장에서 노숙을 하기도 하는데, 이때 느껴지는 추위는 어마어마하다. 진짜 추운데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10m가 넘는 아치 위에서 널빤지 하나 깔아놓고 농성을 하고 있다. 그 밑에선 신형찬 지부장이 추위에 떨며 단식중이다.

홍익대에는 본관점거농성을 하시는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있다.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지난 17일~19일 본관에 다녀왔는데, 나오는 길에 저녁 선전전을 위해 피켓을 들고 홍대정문으로 나오시는 분들을 지켜봤다.

시청 앞에는 재능교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텐트 하나에 의지해 1000일을 훌쩍 넘겨 투쟁을 벌이고 있다. 전기장판 하루 틀었더니 5만 원의 비용이 들어서 이내 포기하셨다고 한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아직 농성중이다. '하늘도 참 무심하시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날씨는 하늘의 뜻이라 하더라도 이분들이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건 인간의 뜻 아니겠는가?

오늘도 추위에 떨며, 자취방과 농성장을 오간다. 그런 거라면 20살 이 정도 추위쯤, 별거 아니다.


태그:#한파,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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