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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끊기로 하고 3개월간 피우지 않았다면 금연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만, 단박에 담배를 끊는다는 것이 여간 쉽지가 않다는 것은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나 역시 서너 번 실패를 거듭하면서 결국에 끊었던 것은 니코틴보다 내 의지가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백해무익한 담배를 왜 피워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성찰을 끊임없이 한 결과였다.

올해 담배만큼 해롭다고 생각했던 삶의 방식 하나를 끊어버렸다. 3개월이 넘어가고 있으니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올 8.15경축사의 화두는 '공정한 사회'였다. 대통령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역설했지만, 그 뒤의 장관직이나 총리 임명에서 '공정'이란 말이 무색해져 버렸다. 공정한 사회가 되려면 상생(相生)의 정신이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 약육강식이나 승자독식으로는 공정한 사회는 어림없다.

동네골목 상권까지 넘보는 SSM, 우리 사회의 많은 불공정한 것 중 하나

개점을 준비 중인 기업형 슈퍼마켓이 간판작업을 하고 있다.
 개점을 준비 중인 기업형 슈퍼마켓이 간판작업을 하고 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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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많은 불공정한 것 중에서 대형마트(할인점)가 동네골목 상권까지 넘보는 이른바 SSM(기업형 슈퍼마켓)이 있다. 한때, 장보기는 대형마트에서만 했었다. 그 시작은 창고형 마트가 시작될 때부터였으니 10년이 훨씬 넘었다.

휴일에 가족들을 자동차에 태우고 30여 분 거리의 마트까지 가서 주차장 진입까지 몇십 분을 기다리면서도 매장에 들어서면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듯 손수레가 넘칠 만큼 일주일치 일용할 물건들을 담았다. 그중에는 충동구매로 담는 것도 있었고 계산대에서 찍히는 가격에 속으로 흠칫 놀라기도 했다.

드물게 구(區)에 한 개 정도 있던 마트들. 어느새 동(洞) 하나에 여러 회사의 마트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모든 대형마트들이 다 들어와 있다. 걸어서 갈 만큼 가까이에 대형마트가 생겨나자 몇백 원이 어디냐며 맥주 한 병을 사 들고 동네가게를 지나칠 때면 양심이 울렁이기도 했지만 그때 뿐이었고, 나는 가난한 서민이라는 명분으로 대형마트를 이용했었다.

몇 년 전이던가, 자주 지나가는 아파트의 입구 쪽에 슈퍼마켓이 새로 생겼는데 상표가 대기업이었다. 그 옆에서는 오래전부터 영업하던 작은 슈퍼가 있었는데 마음속으로 '저 가게 타격이 크겠는데' 했는데 어느 날 보니 없어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이건 상도덕으로 보나 양심적으로나 대기업이 할 짓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고, 내가 대형마트에서 소비하는 것이 옳은 짓인가 하는 물음이 생겨났다.

어느 날 O마트에 물건을 납품하는 중소업체 사장이 마트 측의 횡포에 맞서 분신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공정한 소비'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기 시작하며 대형마트로 발길을 차츰 줄이기 시작했다.

대형마트 이용을 끊기로 결심을 하기도 했지만, 한 달을 넘기지 못할 때마다 스스로 내놓은 변명은 물건을 구입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동네 슈퍼나 재래시장을 가도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 있으면 발길은 쉽게도 대형마트를 찾았다.

최근에 부쩍 심해진 SSM의 골목상권 죽이기를 보면서 더 이상 비양심적인 소비를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 석 달 전이었다. 무조건 발길을 끊겠다는 생각으로 신용카드도 없애버렸고, 주로 소비하는 식품은 동네 슈퍼, 재래시장과 농촌 직거래를 이용했다.

대형마트를 끊고 난 후 놀란 것이 냉동고에 쌓여 있던 식품만으로 무려 일주일이나 장보기 없이 반찬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매주에 한 번씩 장을 봤더니 냉동고 구석구석에 식품들이 쌓였던 것이다.

쌀이나 과일류는 농민직거래로 몇 년 전부터 구입을 하고 있었고, 채소류도 몇 달 전부터 한 달에 두 번씩 농민으로부터 직거래로 받아보고 있으며, 작은 텃밭농사를 하고 있기에 푸성귀 정도는 자급을 한다. 그 외에 필요한 물건들은 동네 슈퍼나 좀 멀지만 재래시장을 이용한다.

대형마트를 끊고 난 후 달라진 점은...

대형마트를 끊고 난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계부를 사용하지 않아서 정확한 계산은 안 되지만 소비하는 돈이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일단 눈에 보이지 않으니 충동구매가 없어졌다. 특히 육류소비가 확 줄어들었고, 한 번에 많은 장을 보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불필요한 과식을 하고 버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럴 일이 없는 소박하고 간소한 밥상이 아주 좋다.
또한 금액으로 따지면 별거 아니지만 동네 슈퍼와 시장에서 소비하고 농촌 직거래로 농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자긍심으로 살아간다.

얼마 전에 대형마트를 소유한 재벌 2세가 트위터 논쟁에서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나... 어차피 고객의 선택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찬반의 여지가 있지만 그동안 대형마트의 싼값에 혹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공정한 소비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대형마트가 이윤을 많이 낼수록 지역경제와 중소·영세업자는 더욱 위축되고, 그만큼 소득이 줄어든 서민노동자들은 더 싼 값에라도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대형마트의 이익은 경영진과 주주들이며 외국자본들이다. 일간지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나만의 특종을 마감한다.

"서민들은 불황일수록 더 할인점을 찾는다. 할인산업이 가난한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할인산업을 이롭게 한다."  - <한겨레 신문> 7월 10일자 '할인점 싼 가격에 숨은 폭탄 돌리기' 중에서

덧붙이는 글 | '2010, 나만의 특종' 응모글



태그:#SSM, #기업형수퍼마켓, #대형마트, #대기업, #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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