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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얘기일지 몰라도 세월처럼 빠른 건 없다. 더워서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던 한여름이 불과 엊그제 같거늘, 지금은 두툼한 외투를 껴입고 출근치 않으면 안 되니 말이다. 하기야 입동(立冬)과 대입 수능일이 얼마 안 남았으니 지금은 분명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서는 진입로일 터다.

 

수능이 끝나면 곧바로 나는 현재 3학년인 전태일 노동대학의 졸업수련회에 참가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졸업을 할 수 있는 때문이다. 어제 이와 관련된 안내문을 이메일로 받고 보니 올해도 얼추 다 갔다는 느낌에 다시금 올 한 해를 새삼 돌이켜 보게 된다. 수련회에 다녀오고 나면 12월엔 고향 초등학교의 송년회가 있을 거고 이어선 선친의 기일이 닥친다.

 

12월이면 또한 방송가 역시 시끌벅적하다. 연기대상이니 방송대상이니 또한 뭐니 뭐니 해서 요란스러운 건 해마다의 여전한 패러다임이니까. 그렇다면 그런 데서 수상자가 되어 화려한 레드카펫을 밟는 이들은 오로지 연예인들에게만 국한되어야 할까? 올 2월에 나는 아빠로서의 자격을 일정 부분 달성했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이는 아들과 딸이 이틀 간격으로 모두 대학의 학사모를 썼기 때문이다. 나처럼 서민의 경우라고 한다면 익히 아는 상식이겠지만 없는 집에서 두 아이를 대학까지 가르친다는 건 무척이나 지난하고 고된 역경의 연속이다. 나는 정말이지 두 아이가 대학을 마칠 때까지 발을 쭉 펴고 숙면을 취한 적이 별로 없었다. 아무튼 두 아이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안 된 뒤 막역한 후배가 우리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아이들이 검은 학사모를 쓰고 찍은 커다란 졸업 사진이 안방의 벽에 걸린 걸 보고 낙심하듯 한숨을 쏟아냈다.

 

"형님은 좋으시겠수! 둘을 모두 대학까지 가르쳤으니 말요."

 

그처럼 자괴의 변을 토로한 후배는 빈곤으로 말미암아 역시나 둘인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지 못했다고 했다. 위로주를 내며 "내가 보냈다기보다는 둘 다 각자 알바 등을 하여 노력한 덕분이지 뭐..." 짐짓 말은 그리했으되 어쨌거나 두 아이 모두 대학을 마치게 했다는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뿌듯하고 흡족했다.

 

금상첨화로 아들은 졸업 전에 취업까지 하는 덕분에 지금은 학창시절에 받았던 학자금 대출금까지 얼추 변제하였다. 다만 딸은 얼마 전 대학원 진학시험을 치렀을 정도로 여전히 '학생'의 범주인데, 여하간 녀석도 석사학위를 딴 뒤엔 취업을 하겠다고 했으니 기다리고 볼 일이다.

 

이상이 2010년 올해 '나만의 특종' 제1호다. 두 번째 특종은 지난 7월에 내가 수필가로 등단했다는 사실이다. 모 문학회 주최 신인작가 공모전 수필 부문에 응모한 것이 당선되어 등단식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의 기분은, 뭐랄까... 마치 옷에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은 그런 느낌이었다. 과연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렇다면 고사하고 말까? 그러한 좌고우면은 사흘 이상이나 점철되는 고민의 가중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종착역에 닿은 결론의 도출은 아이들에게 조금은 '격상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었다. 즉 현재처럼 비루한 비정규직의 가난한 무지렁이보다는, '수필가'라는 타이틀을 다는 것이 이담에 녀석들이 누구와 대화를 나눌 적에도 플러스가 됐음 됐지 마이너스는 아닐 것이란 단견이 작용한 것이다. 서울 종로서 열린 등단식에는 염천더위였음에도 아들과 딸도 짬을 내 참석해 축하해 주었다.

 

이 자리서 문학회의 대표님께선 "등단이란 우쭐함을 버리고 만날 죽비소리와도 같은 두려움과 겸허함을 잃지 말라는 의미"라는 새로운 인식의 계기까지를 깨닫게 해 주셨다. 등단식을 마친 뒤 우리는 청계천에 가서 술을 마시고 발도 담그며 모처럼 한가함을 누릴 수 있었다. 그 후 집으로 돌아와선 지인들에게 거푸 등단주를 내느라 가뜩이나 팍팍한 주머니 사정엔 더한 궁핍의 거미줄이 잔득 끼었다.

 

그렇지만 그건 당연히 치러야 할 어떤 가난한 날의 행복이자 즐거움이었다. 마지막으로 3번째 '2010 나만의 특종'은 서두에서 이미 밝혔듯, 전태일 노동대학 3년 과정을 끝마치고 마침내 졸업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 대학에 들어갈 때와는 달리 동기생 중 일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중도에 학업을 그만 두었다. 그러나 나는 초지일관으로 반드시 졸업하고야 말겠다는 다부진 결심이 애초부터 착근돼 있었다.

 

그렇게나 하고팠던 공부였기 때문이었기도 하지만, 내 맘대로 할 수 없었던 지난날의 공부가 나로선 그야말로 철천지원수로 각인된 때문이다. 다시 곱씹고 싶기도 싫지만 여하간 남들처럼 배우지 못한 때문의 현실은 늘 그렇게 빈곤과 슬픔, 그리고 좌절과 낙담의 질곡으로 빠져드는 단초였다. 세인들은 무식하다고 놀렸고 사(社)측에선 비정규직이라고 비웃으며 조소와 폄훼의 먼장질을 일삼았다.

 

이러한 진퇴양난의 협곡에서 벗어나는 길은 독학이 되었든 뭐가 됐든 간에 부족한 내 머리에 지식의 비료를 잔뜩 뿌리는 것 외는 딱히 해법이 없었다. 그래서 시작하였고 아울러 수십 년간 습관처럼 읽어댄 방대한 책은 이러한 나의 열망에 자양분과 지혜의 샘물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만의 공부로선 분명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다가 참 운이 좋아 만나게 된 것이 바로 전태일 노동대학이다. 말이 좋아 주경야독(晝耕夜讀)이지 실은 오프라인 강의장에만 가면 눈꺼풀이 천근처럼 무거워 온 적이 한두 번도 아니다. 그러나 나같은 무지렁이에게 이처럼 공부할 기회와 더불어 지식의 전수라는 참맛의 카타르시스까지를 허락해 주신 전태일 노동대학에 감사하는 마음이 여전했기에 나는 지난 3년간의 대학공부를 그나마 성실히 이수하여 왔던 것이다.

 

여하간 그렇게 강동거리며 배운다고 노력을 하였기에 그나마 조만간 졸업을 맞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12월이 되고 연말이 가까워지면 한 해의 대차대조표를 살펴본다. 그리고 잘못 된 건 새해에 반성의 계기로, 잘 된 건 계속하여 견지코자 하는 마음에 족쇄를 채우기 마련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2010년 나만의 특종은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은 한 해였다 하겠다. 토끼는 빠르기가 예사롭지 않아서 준비를 덜 하면 고작 한 마리조차 잡기 힘들다.

 

고로 한두 마리도 아닌, 세 마리나 되는 토끼를 다 잡았다는 건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물론 이같은 결과의 도출은 거저 생긴 것이 아님은 당연지사이다. 이를 이루기 위하여 나는 그만큼의 노력을 충분히 경주했으니까. 그렇다면 이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끝으로 이 삭막하고 비정한 사회에 대해 그간 품었던 반감을 올해 많이 버릴 요량이다. 대신에 새해부턴 보다 진일보한 아이디어로 매사를 긍정적으로 볼 생각이다. 나에게 세 마리의 토끼를 선사해 준 2010년에 진정 감사한다!

덧붙이는 글 | <2010, 나만의 특종>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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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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