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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전도사' 최윤희씨의 죽음이 마음 속에서 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웰다잉 연극 <행복한 죽음>을 보러 가는 걸음은 그리 편편치 않았다.

 

우리들 삶에 있어서 행복이란 과연 무엇이며, 행복을 소리 높여 외친 그 순간에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을 그의 고통과 비록 60년을 넘게 산 인생이지만 앞에 놓인 길이라고는 그 길 밖에 볼 수 없었던 절박함,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그리 훌쩍 떠나버리면 그 뿐인 건 아니라는 항의와 분노의 마음까지 섞여들어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 혼란은 나에게 배신감의 또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웰다잉 극단 제2회 공연이 있었던, 지난 10월 13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컨벤션 홀은 웰다잉(well-dying, 품위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법)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관심 그대로 350석이 꽉 차는 성황을 이뤘다.

 

연극의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고 공연 시간도 약 40분 정도로 짧은 편이다. 말기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67세 할머니 앞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오는데, 그 손님은 자신의 이름은 '새콩'이며 소중한 친구(precious friend)이자 하늘나라 여행가이드라고 소개한다.

 

가족이나 의사 등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새콩이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할머니는 새콩의 도움을 받아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정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존엄하고 품위있게 마지막을 보낼 것인지 고민하고 결심하게 된다.

 

가망 없는 수술을 거부한 할머니는 전재산인 떡볶이집을 기부하기로 하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곁을 지켜준 오빠와 여동생과 의사에게 차례로 감사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새콩의 표현대로 '웰다잉의 수레를 타고 천상의 무도회'를 향해 떠난다. 

 

 

나는 죽음준비교육 전문 강사로 몇 년 째 일하고 있지만, 그 사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죽음을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때가 많다. 연극을 통한 전달이 가지는 강점의 출발점 또한 이 부분일 것이다.

 

마지막 리허설 직후 이 연극을 직접 쓰고 연출한 장두이 교수(서울예술대학)를 만났다. "전문배우가 아니라 삶의 경험이 많은 중년과 노년의 아마추어 배우들이라서 오히려 기술이 아닌 깊이가 우러나와 더 좋다"며 소감을 밝힌 그는, "연극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바로 와 닿기 때문에 책이나 강의를 통해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평소 자신은 연극을 통해 죽음을 배웠노라고 말해온 그에게 '행복한 죽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즉답을 했다. "죽음을 늘 가까이에서 느끼면서 준비해온 분들이 맞이할 수 있는 멋진 죽음이 아닐까요?"

 

 

이어서 이번 연극의 기획자인 각당복지재단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홍양희 회장에게 웰다잉 연극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물었다. 

 

"연극을 통해 누구에게나 오는 죽음을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내 삶이 어떤 죽음과 이어질 수 있는지 고민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가 죽을 자리를 알 수 있기를 원하고, 나의 죽을 자리에서 죽을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나의 삶이 나의 죽을 자리로 인도해 주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니 웰다잉은 곧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연극 <행복한 죽음>을 기획하고 연출한 두 사람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 전도사' 최윤희씨의 죽음을.

 

"떠나면 그만이 아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며 삶의 연장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떠난 다음 주위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기게 될 것인지, 그 유산(legacy)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장두이 교수)

 

"그가 얼마나 아팠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그가 가진 의미, 그의 마지막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했어야 되지 않을까. 내 죽음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 우리 모두 고민해야 한다." (홍양희 회장)

 

 

웰다잉 교육 강사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극단이지만 적극적으로 죽음과 죽음준비를 담아 지속적으로 공연을 해나가는 분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다만 일반 연극이 아니기에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민감하고도 절실한 주제인 존엄한 죽음, 품위있는 죽음, 가족들의 역할, 죽음을 앞둔 당사자의 마음에 대해 잠깐이라도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짧고 단순화시킨 내용만으로 끝내버려 이야기를 미처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까닭이다.

 

지난 해 막을 올린 1회 공연 작품을 가지고 한 해 동안 복지관, 학교, 교회 등에서 30여 회의 공연을 했다고 하니, 이번에도 회를 거듭할수록 배우들의 기량이 성숙해지고 내용 또한 다듬어지리라 기대한다. 죽음을 이야기하며 제대로 인식하고 직면하는 기회가 연극은 물론 다양한 매체를 통해 더 늘어난다면, '행복한 죽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도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웰다잉 연극 <행복한 죽음> 찾아가는 공연 안내 : 노인단체, 복지관, 종교시설, 병원, 학교 등에서 관람 신청을 하면 직접 찾아가 공연을 한다. 문의 02-736-1928, kakdang@hanmail.net


태그:#웰다잉 연극, #행복한 죽음, #웰다잉, #죽음준비, #죽음준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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