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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 지공, 나옹 선사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이다. 왕생극락을 염원하는 중생을 위해 극락세계를 관장하시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보전과 같은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 신륵사 조사당 무학, 지공, 나옹 선사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이다. 왕생극락을 염원하는 중생을 위해 극락세계를 관장하시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보전과 같은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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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뱃속을 그리워하고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좋아하는 습성은, 인류의 태곳적 고향이 바다였고 10만년 전 야자수 그늘에서 살았던 생활방식이 우리 몸에 남아 있는 흔적이다. 우리 모두 죽어 없어지지만 영원히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자식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류가 멸종되지 않는다면, 가을에 지는 낙엽과 봄에 나오는 새싹이 같으면서 다르듯이 우리도 이런 형태로 영생하게 될 것이다.

몸이 지치고 피곤할 때 찾던 한옥의 뜨끈뜨끈한 구들방은 찜질방으로 그 형태가 변하여 존속한다. 아파트가 가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이지만, 방 하나라도 온돌방처럼 만들고 싶어 한다. 한옥을 그리워하는 이유에서 따뜻한 아프리카 열대우림 해안과 비슷한 환경인 구들방이 있어 원천적인 향수를 달랠 수 있다는 사실도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찾지만, 배가 부르면 편히 누울 자리를 찾는 게 우리 육체이다. 이제 우리는 배고픈 시절을 벗어나 풍요를 누리고 있다. '아파트에서 나와 다시 한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나의 이론의 배경이기도 하다. 물론 돌아갈 한옥은 과거 우리가 살아온 한옥과 다른 형태일 것이다. 이 다른 형태의 한옥을 찾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몫이고 목수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신륵사 극락보전 보수 공사 현장 답사

이 선생님께서는 여주 신륵사 극락보전 보수공사를 주관하신다. 대들보 윗부분이 해체되고 210년 전 장인들의 솜씨로 만든 한옥의 속살이 드러나자 제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해체공사를 잠시 중단하셨단다. 지용한옥학교 전문목수과정 2기생 16명이 수요일(15일) 새벽 6시에 학교를 출발하여 경기도 여주까지 달려간 사연이다.


아직 한옥의 내부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 귀한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면서 이곳저곳 부지런히 둘러보고 카메라에 담아두란다. 오늘 본 자료가 언젠가는 필요할 때가 올 것이라는 말씀이다. 신륵사를 나오는 길에 선생님께서 최근에 건축하신 신륵사 경내 누각을 둘러봤다. 내 것 같은 친근한 기분이 드는 것은 같은 기문의 스승 솜씨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옥학교 입교 후 불과 3주 지났지만 상당한 부분이 낯익다.

신륵사 경내에 이광복 도편수께서 관장하여 지은 누각의 내부구조.
▲ 신륵사 누각 신륵사 경내에 이광복 도편수께서 관장하여 지은 누각의 내부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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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극락보전은 1985년 경기도 유형문화재 128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정조 24년(1800년)에 중수가 완공되었으니 210년 전 건물이다. 신라시대에 창건하여 크게 번창한 사찰이지만, 조선시대 초기 억불 정책 탓에 침체되었다가 세종대왕과 소현왕후 심씨의 원찰(망자의 명복을 비는 사찰)이 된 후 사세를 회복하였다. 신륵사에는 중요 문화재인 조사당을 비롯한 많은 국가보물이 있으며 유형문화재인 극락보전이 널리 알려졌다.

제도 수업

16명 학생들의 연령 분포는 20대 초반부터 60대 후반까지이고 나는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이들 중 두 분은 회사를 경영하시는 분들이고 한 분은 신부님, 그리고 절반은 목수를 직업으로 삼고자 하시는 분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하고 싶은 분들이다. '한옥의 역사와 변천' 강의 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에 답한 내용을 근거로 한 자료이다.

학생들의 구성비율은 한옥의 현 주소를 잘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우드워커(wood worker)> 발행부수로 짐작할 수 있지만, 외국에서는 은퇴 후 나무를 다루는 기술을 배워 손수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들어 쓰는 것이 보편화되어 나이 60에 한옥학교에 입학하는 경우도 드물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다.

수업 내용을 정하는 교과 과정의 40% 정도가 이론교육과 교양과목이다. 기능인 양산보다 이론으로 무장한 기술자를 배출하겠다는 것이 학교의 설립취지이다. 이런 취지로 짜인 수업일정표에 의해 15일 두 번째 제도 수업이 있었다.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을 믿고 설계의 기본이 되는 제도의 의미를 간과하고 숙제를 등한시했으나, 두 번째 시간에 3차원 공간에서 위치를 정의하는 수업을 하면서 기본 개념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 제도수업 컴퓨터 설계 프로그램을 믿고 설계의 기본이 되는 제도의 의미를 간과하고 숙제를 등한시했으나, 두 번째 시간에 3차원 공간에서 위치를 정의하는 수업을 하면서 기본 개념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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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수업 내용은 선 그리기였다. 나는 지난 30여 년 동안 컴퓨터와 함께 살아온 사람이다. "붓셈으로 계산할 수 없으면 컴퓨터로도 해를 구할 수 없다." 후배 연구원들에게 입이 닳도록 강조하던 말이다. 나 자신이 이를 실천하지 못해 회복하기 힘든 자존심의 상처를 입은 시간이기도 했다.

컴퓨터 건축설계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있는 나는 '손으로 선을 그릴 일이 없다'라는 생각에 제도수업의 진정한 의미를 간과했다. 선생님께선 선 그리기 숙제를 내셨고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마침 학교에서 준비한 제도 도구들이 부족하다. 이런 핑계 저런 연유로 나는 숙제를 못하고 수업에 임했다.

두 번째 시간은 3차원 공간에서 좌표를 찾는 내용으로 시작했다. XYZ 좌표계에서 (5,6,7) 점을 찾는 것이다. 2차원 도면에 3차원 좌표를 찍는 것이다. 한번도 생각해 보거나 해본 일도 없다. 순간 당황한 나는 Y 좌표값을 구하려고 역삼각함수 방정식을 세워놓고 X 값을 구하려고 했다.

학생들의 시도를 둘러보신 선생님께서 사각형 3개로 3차원 공간의 어느 점이든 결정하는 방법을 제시하셨다. 너무도 당연한 방법이고 정연한 논리다. 오만방자했던 내 자만에 스스로 놀랄 뿐이다. 수업시간 내내 안절부절 못했다.

오후 실습시간에 두겁주먹장 턱을 파면서 끝이 두 곳 이상 닿는 사실을 확인하고, 3차원 공간을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제도 선생님의 말씀이 새삼 가슴에 와닿았다. 지용한옥학교는 이렇게 기술자를 만들고, 이래서 다른 한옥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이 학교에 입학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나 싶다.

연장통 만들기

한옥건축에 사용할 부재의 이음과 맞춤의 기본 이론과 실습을 끝냈으니 이제 한옥을 짓기 위한 장도에 오른다. 목수가 가는 길에 연장이 따라가기 마련이니 가장 우선해서 해야 할 일이 연장통 만들기다.

학생들의 실습용 부재를 원목을 제재하여 만든다. 제재한 원목은 사용할 부재보다 크다. 톱과 대패로 자르고 다듬어 사용한다. 자연스럽게 대패와 톱을 다루는 실습이 병행된다.
▲ 제재기 학생들의 실습용 부재를 원목을 제재하여 만든다. 제재한 원목은 사용할 부재보다 크다. 톱과 대패로 자르고 다듬어 사용한다. 자연스럽게 대패와 톱을 다루는 실습이 병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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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통을 만들기 위한 부재를 얻기 위해 원목을 제재기로 켠다. 제재기로 켠 목재는 기대치수보다 크다. 톱과 대패로 다듬어 원하는 넓이와 두께로 맞춰야 한다. 전동공구가 아닌 대패와 톱으로 말이다.

선생님께서 대패 사용법을 다시 설명하시고 시범을 보이신 후 학생들 중 한번 해보겠다는 지원자를 찾는다. 내가 나섰다. 대패 사용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라 별 두려움 없이 나섰다. 힘껏 당기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묵직한 골통품 대패는 부재 끝을 지나 시멘트 바닥에 나가떨어져 버렸다.

선생님 춘부장께서 쓰시던 물건이었단다. 대패가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면 날물이 흐트러진다. 아주 망가질 수도 있단다. 참으로 무색하다. 아연실색하여 서 있노라니 선생님께서 날을 빼서 숫돌에 갈아 다시 세운 후 대패집에 고정하시고 다시 학생 중에 지원자를 찾았다.

여기서 물러서면 나는 영원히 대패 공포에 시달릴 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힘차게 대패를 당겼다. 횟집 접시 바닥에 까는 것 같은 종잇장 같은 대패밥이 경쾌한 소리와 같이 위로 솟는다. 됐다 싶다. 다음 사람에게 차례를 넘겼다.

"저 정도 내공이면 상당한 경지여."

용을 쓰는 초로에게 하는 격려 말씀이겠지만 그래도 고마운 선생님의 평가였다.

지용한옥학교에 입교하여 3주일이 지나자 혼자서 연장통을 사괘주먹장 막춤을 이용하여 만들 수 있었다.
▲ 연장통 지용한옥학교에 입교하여 3주일이 지나자 혼자서 연장통을 사괘주먹장 막춤을 이용하여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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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장 맞춤을 응용하여 만든 사괘맞춤 연장통. 마음에 안 들어 다음에 다시 만들겠다고 해보지만 결국 못 만들고 평생 들고 다니게 되는 것이 연장통이란다.

하루 동안 사투 끝에 연장통을 완성했다. 만들고 나서 내 연장통을 바라보니 감개무량하다. 각종 연장들을 넣어본다.

연장통을 가장 먼저 만드는 것이 바른 수순이다. 그러나 평생 들고 다녀야 할 연장통을 가장 서툰 솜씨일 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연장통은 목수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닌다. 우리 몸 속에 남아 있는 태초 유전자 흔적처럼 우리 선생님도 연장통에 흔적으로 남아 우리를 항상 지켜보고 싶어 하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을 집도 연장통처럼 못생기고 투박해도 좋으니 할 얘기가 있는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태그:#지용한옥학교, #목수, #연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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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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