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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에 대해 검색해 보니 '사람을 억누르고 괴롭히는 행위'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호강을 위해 다른 사람을 억누르고 괴롭히는 게 온당한 처사일까요?

 

저는 핍박이란 말이 종교에서나 쓰여지는 낱말인 줄 알았습니다. 핍박이란 말도 행하는 사람이 있고 당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일 것입니다. 사람을 억누르고 괴롭히는 행위를 일삼을 정도라면 분명히 좋은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핍박하는 사람은 당하는 사람에 비해 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나쁜 성격과 나쁜 마음에 힘까지 가졌으니 자신의 영달을 위해 다른 누군가를 억누르거나 괴롭게 할 것입니다. 핍박을 자행하는 사람은 핍박을 당하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도 재미가 있을까요?

 

핍박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본 또 하나의 이야기

 

지난 10년 저는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에서 일해왔었습니다. 그러다 올 3월 중순경 제가 원하지도 않았는데도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같은 지붕 아래서 같이 일하며 같은 식당에서 같은 밥 먹는데도 원청의 절반 수준인 월급. 게다가 원청 직원의 비아냥거림. 사측의 인간차별.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냥 일만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애원했었습니다. 원하청 사업자는 냉정하게도 저와 함께 많은 하청 직원을 정리해고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후 저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울산시 교육청에서 집회 있는데 한번 가볼래?"

 

'나 말고 또 다른 곳에 핍박 받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집회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17일 오후 5시 30분 울산시 교육청 앞으로 지인과 함께 가보니 그곳엔 10여명의 중년 여성들이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분홍색 앞치마에 어떤 글이 쓰여 있어 자세히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위탁전환 철회하라!

부당해고 철회하라!

 

'이분들은 누구이며 왜 이곳에 와서 더운데 이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회는 1시간 가량 진행되었습니다. 민주노총,공공노조,진보신당,민주노동당 그 외에도 지역의 여러 사회단체가 함께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집회후 저는 분홍색 앞치마를 걸치고 있는 분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습니까?

 

"우리는 옥동에 있는 제일고등학교 급식조리원입니다."

 

그분들은 제일고등학교 식당에서 급식조리원으로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9년 넘게 일 해 왔다고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식구들 밥 해 차려주고 서둘러 설거지한 후 8시까지 학교 식당으로 출근합니다. 학생과 교직원 포함하여 1,4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밥과 국, 반찬을 열심히 만들어서 12시 30분부터 13시 30분까지 식판에다 퍼 올려 줍니다. 학생과 교직원이 밥을 다 먹고 난 후 식판을 가지고 오면 남은 음식 찌거기를 별도로 모으고 식판과 수저도 모아 씻는 일을 오후에 해야 합니다. 식당 청소를 마무리 하고 17시에 퇴근 한다고 합니다.

 

"우리처럼 단체 급식하는 식당 종사원은 손발이 잘 맞아야 해요. 2인 1조가 한조가 되어서 밥하고 국 끓이고 여러가지 요리도 합니다. 식당에서 일 해 보셨는지 모르지만 많이 힘들어요. 더구나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에는 더 힘들지요. 몸은 힘들어도 우리는 우리 자식들에게 가족에게 차려 놓는 음식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해 왔어요."

 

지난 2007년 위탁을 직영으로 전환했다고 합니다. 학교측에서 전환 하고 싶어한 게 아니라 교육청에서 와서 실사를 하고 해서 직영으로 전환했다고 합니다.

 

"그 때 전국에서 많은 학생들이 식중독 때문에 난리가 났잖아요. 그게 다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음식을 위탁업체에 하청을 주었기 때문 아니겠어요? 직영으로 하면 아무래도 학교에서 학생들 건강문제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잖아요. 그러나 위탁업체에 식당을 넘기면 학생들의 건강한 먹을거리에 신경 쓸까요? 아무래도 자신들의 이익도 챙겨야 하니깐 덜 신경쓰게 될 거 아닌가요? 요즘도 방송에 보니 가끔 학교에서 점심 잘 못 먹고 집단 식중독 걸렸다고 하는 내용이 나오더라구요. 그게 다 이유가 있어요. 학교가 위탁업체에 식당 운영권을 내주어 생긴 문제입니다. 위탁 업체에 학교 식당을 맡기는 한 학생들의 건강권이 위협 당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2010년 2월 방학 중이었는데 난데없이 조리사에게 면담 문자가 와서 학교로 찾아 가보았다고 합니다. 제일고등학교 식당 급식조리원은 기간제로 일해 왔다고 합니다. 조리사 문자를 받고서 2010년 되면 무기계약 되려나 하고 희망을 품었다고 합니다. 학교에 가보니 교장이 조리사를 시켜 급식조리원을 모두 모이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직영으로 식당운영 어렵다. 골치도 아프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급식조리원은 교장에게 "무기계약 안 해도 좋으니 제발 일하게만 해달라"고 애원했다고 합니다. 교장을 만나고 온 다음날 영양사, 조리사를 포함하여 급식조리원 23명 모두에게 해고통보서가 배달 되었다고 합니다. 학교 측은 법에 따라 해고 1개월 전에 해고 예고 통보서를 보낸 것입니다.

 

 

해고 통보서를 받고 나서 어렵사리 학교 이사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학교 이사장은 냉정하게 "법을 바꿔라. 나는 직영이 싫다"고 잘라 말하고는 이왕 왔으니 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2007년 7월 1일 제정된 기간제법 제4조 2항에 의하면 '재계약을 여러 차례 하더라도 2년을 초과한 노동자에 대해서는 무기계약을 체결한 노동자로 본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제일고등학교 급식조리원의 경우 여러 차례 재계약을 맺어온 기간제 노동자들이니 학교측이 무기계약자로 대하기 싫어서 모두 정리해고 해버렸다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로 173일째 원직복직을 염원하며 거리에 나선 울산 제일고등학교 식당  급식조리원. 그분들에게 제일고등학교측과 교육청에 바라는 점 있으면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해고통보 받았을 때 멍 했어요. 그렇게 며칠이 지난후 정신을 차리고 이건 아니다 생각 했어요. 학교로부터 정리해고 당하고 나니 너무 억울했어요. 그래서 노동부와 법률 사무소에 알아 보니 법이 그러니까 억울해도 어쩔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어요. 다른 방법이 없나 인터넷으로 검색 하다가 울산 공공노조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연락을 취해 도움을 받게 되었어요.

 

만나서 이야기 해보니 희망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공공노조에서 하라는 대로 같이 일하던 사람들 불러 모아 노조에 가입부터 했어요. 모두 15명이 노조에 가입 했는데 개인 사정으로 3명 빠지고 지금은 12명이 힘차게 원직복직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원직복직 집회 하면서 잃은 것보단 얻은게 더 많아요. 신성한 교육현장에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힘없는 우리를 내쫓았어요. 우리도 눈도 있고 귀도 있고 감정도 있는데 학교장과 이사장은 우릴 너무 무시하고 있어요.

 

반면에 우리 집회에 꾸준히 함께 참여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먹고 사느라고 집과 가족만 신경 써 왔는데 노조라는 것을 처음 알고 170여 일 집회를 하고 배우면서 지내다 보니 또 다른 사회 흐름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요즘 생전 처음 컴퓨터도 배워요. 이해하기 쉽지 않고 앉아서 강의 듣는 것도 힘들지만 또다른 재미가 있어요. 좋은 분들과 함께 좋은 세상 만들어 가는데 보탬이 되고 싶어졌어요. 다른 곳으로 보내 주겠다는 말도 들리지만 우리는 원직복직을 원해요. 그것만이 해결책입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 자존심을 건드렸어요. 아무리 우리가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지만 비양심적으로 그러면 안되잖아요. 우리가 여기서 물러서면 그들에게 또 다른 누군가가 당할 거예요. 더이상 우리처럼 당하는 사람 만들지 말자는 생각에서 우리는 꼭 다시 원직복직 쟁취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그들은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 함께 만들어요' 라는 다음 카페를 만들고 거기서 옹기종기 원직복직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답니다. 핍박받는 사람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라도 하듯이.


태그:#울산, #제일고등학교, #교육청,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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