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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검색한 지도를 인쇄하여 가지고 갔으나 현지실정과 많이달랐다. 팔영산입구에 세워진 지도가 정확했다.
▲ 팔영산지도 인터넷으로 검색한 지도를 인쇄하여 가지고 갔으나 현지실정과 많이달랐다. 팔영산입구에 세워진 지도가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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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반도를 받치고 있는 높이 608m인 팔영산의 면적은 9881km² 이다. 고흥반도는 최근 나로호 인공위성 발사 때문에 온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으나 성공하지 못해 커다란 아쉬움을 남긴 곳이다. 멀잖아 성공하기를 빈다. 

도립공원인 팔영산은 고흥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중앙의 성주봉을 비롯하여 유영봉·팔응봉·월출봉·천주봉 등 8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보통 1봉~8봉으로 부른다. 산세가 험하고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절경의 산이다. 각 봉우리 정상부근에는 등산을 돕는 철 구조물이 잘 설치되어 있어 초보자도 그리 어렵지 않게 8개 봉우리 전구간을 답사할 수 있다.

팔영산의 본 이름은 '팔전산'이었으나 중국 위왕의 세숫물에 8개 봉우리가 비춰져 그 산세가 중국에까지 떨치면서 이름을 팔영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니 선조들의 신비주의와 영웅 선호사상의 일면을 여기서도 엿보는 듯하다.

팔영산의 품속에 파묻혀 천년 세월을 지나온 능가사는 한때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더불어 호남의 4대 사찰이었단다. 창건 당시인 신라시절에는 10대 사찰로 꼽히는 대가람이었다. 지금은 송광사의 말사로 비구니들의 수행도량으로 이름이 높다.

절 주변에는 소록도, 외나로도 등 절경의 섬 외에도 덕흥 해수욕장이 여름철 관광지로 명성이 높으며 읍성, 마목성 등 외적의 침략에 대비한 성곽들도 가볼 만한 곳이다. 

장수의 비결은 '친구를 많이 갖고 있는 것'

나와 집사람은 오래 전부터 산을 좋아했다. 특히 집사람이 가게를 운영했던 십여 년간 거의 주말마다 산에 가서 다음 일 주일 동안 사용할 기를 충전해 왔다. 가게를 열고 닫는 시간 때문에 우리 등산팀원은 언제나 나와 집사람이었다. 지도와 나침반만 있으면 어느 산을 어떻게 갈지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나에겐 오히려 둘이서 행동하는 것이 단출하고 편했다.

작년과 올해 대부분 회갑을 맞는 우리 동창들은 급변하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항상 마음의 여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세월을 살았던 것 같다. 카페 글에서 얻은 상식이지만 장수의 비결은 돈이나 권력 그리고 명예 등 우리가 그렇게 쫓고 갈구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쁘다는 이유로 항상 뒷전으로 밀렸던 '친구를 많이 갖고 있는 것'이었다. 의외였다.

'같이 산에 다니자는 친구들의 권유가 반갑고 소중하다.'

말복이었던 지난 8일은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여 고흥군 점암면에 있는 팔영산을 등산하기로 약속한 날이다. 약속은 두 달 전에 했고, 한 달이 지난 후에 그 날이 할아버님 기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비모임을 거쳐 창립총회 성격을 띤 산행인지라 약간 무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참석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언제나 같이 다니는 집사람은 기일 준비를 위해 남겨두고 8일 오전 7시 반에 광주에서 출발하는 친구들과 합류하기 위해 혼자서 7일 오후 10시 반에 대전에서 광주송정으로 가는 KTX에 올랐다. 늦어도 8일 오후 10시까지는 대전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체면차릴 자식, 며느리 없어 소란스런 할아버지, 할머니 등산길

설래는마음으로 대오를 정비하는 친구들과 부인들. 날씨는 더 없이 좋으나 말복 날이라 더위는 각오해야할 것 같다.
▲ 능가사 입구 설래는마음으로 대오를 정비하는 친구들과 부인들. 날씨는 더 없이 좋으나 말복 날이라 더위는 각오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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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경부터 모여드는 친구들 얼굴에는 학창시절 소풍 갈 때 설렘이 그대로 담겨있다. 친구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국도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신록이 더 없이 좋다. 어린 시절 달걀후라이 하나 도시락 밥 위에 얹으면 소풍을 위한 특식이 되었던, 행복했던 그 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친구들 모임에 일어난 감흥이다.

10시경 능가사 입구에 도착하여 증명사진을 찍고 대오를 갖춘다. 노란 병아리 같은 유치원 어린이들 소풍길이나 60이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들 등산길이나 소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체면 차려야 할 자식들이나 며느리도 없다.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모두들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산길로 접어들었으나 때가 말복 날이다. 일등과 꼴찌가 구별되는 시간은 30분이 채 못됐다. 옹기종기 모여서 같이 산행을 하겠다는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선두는 팀의 자존심인지라 일봉부터 팔봉까지 종주하기로 하고 본대는 형편을 봐가면서 완급을 조절하기로 했다.

낙산낙수(樂山樂水)팀은 선봉팀이요. 요산요수(樂山樂水)팀은 본대였던 것 같다. 선봉은 산행자체에 무게를 둔 탓이고, 본대는 산의 본질을 보려고 했고 같이 간 친구들 우의에 더 큰 비중을 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대는 나중에 산행속도가 늦어져 후미와 합쳐졌다.

3봉에서 바라보는 6봉의 우장한 모습. 오늘 중으로 갈  길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우선 바라보는 경치는 시원하다.
▲ 팔영산 영봉들 3봉에서 바라보는 6봉의 우장한 모습. 오늘 중으로 갈 길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우선 바라보는 경치는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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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 정상에 오르니 천하가 발 아래로 보인다. 천하를 검어 쥘 힘이 솟는 듯했지만 연비가 매우 불량해진 '노후장비'들은 가파른 암봉을 오르기가 힘겨웠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의 의미가 절실하다. 자진 휴식 때마다 누구의 배낭에선가 기력을 보충하기 위한 연료가 공급되었지만 그 때뿐이다. 추진력으로 모아지질 않는다.

남해의 해안은 리아스식해안이라 섬이 많다고 배웠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와서 보니 그 풍광의 멋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많은 요트들의 유유한 항해모습을 중첩해보는 맛이좋았다.
▲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절경 남해의 해안은 리아스식해안이라 섬이 많다고 배웠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와서 보니 그 풍광의 멋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많은 요트들의 유유한 항해모습을 중첩해보는 맛이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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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과 삼봉 사이 바람골에 이르러 시원한 바람에 과열된 엔진을 식히던 본대는 더 이상 전진할 의욕을 잃고 오봉 밑자락에 이른 선두팀에게 긴한 메시지를 보낸다. 

"우리는 연료가 빵구나 더 이상 못가것승게, 여기서 도시락 무게라도 덜고 갈란다. 느그들은 거기서 우리들 기다리지 말고 밥 묵고 계속 가그라."

점심과 휴식으로 원기를 충전한 본대가 오류봉(오봉) 아래 이르러보니 공격조는 칠봉과 팔봉을 향해 이미 떠났고 나머지는 휴식을 취하면서 본대를 기다리고 있다. 능가사 입구를 떠난 지 4시간 밖에 되질 않았지만 새삼스럽게 반갑다. 다 주어 모아 달아봐야 한 근도 못될 정담이지만 또 한 차례 쫑알거리는 시간이다. 

마냥 논다고 가야 할 길이 줄어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본대는 옥류봉을 향해 슬슬 기동을 시작한다.

"여그서는 불륜이 아닝께 손을 잡아라! 그래도 어쭈고 외간 남자 손을 덥썩덥썩 잡는다냐!"

밀고 당기면서 옥류봉에 오른다. 지금은 등산하는 사람들을 위해 쇠사슬을 달고 철판으로 발판을 붙이고 사다리를 놓아 길을 다듬었으니 망정이지, 인공 확보물이 없다면 팔영산 8봉을 답사한 사람들 숫자를 손에 꼽아야 할 것 같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옥류봉에 올라 두류봉(6봉)을 쳐다보니 남은 힘을 다 쥐어짜야 할 비장한 각오가 선다.

산에서 힘이 들 땐 '뒤'를 한 번 돌아 보라

두류봉(6봉)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니 걸어온 길 자취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봉부터 5봉까지의 모습
▲ 팔영산 능선 두류봉(6봉)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니 걸어온 길 자취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봉부터 5봉까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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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의 덥고 더운 날, 말이 586고지이지 해수면에서 시작한 586고지의 바위산은 에누리 없이 586m를 올라야 이를 수 있는 경지다. 산에 다니면서 터득한 방법이지만 갈 길이 멀고 힘들면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것도 좋다. 자기가 이룩한 성과를 한 눈에 확인하면서, 앞으로 나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건곤이 맞닿는 곳 하늘문이 열렸으니 하늘길 어디메뇨, 통천문이 여기로다. 듀류봉 오르면 천국으로 통하노라.'

두류봉(6봉) 입구의 표지판에 적힌 글이다. 2봉을 올라 멀리 바라보이는 장대한 암봉이 있어 웅장함을 예상했거늘 이제 실체를 대하고 보니 차라리 담담하다. 머리가 숙여지고 겸허해진다. 이렇게 낮출 수도 있고 숙일 수도 있는 머리를 그렇게도 쳐들고 다녔는가 싶다.

팔영산의 가장 볼만한 장관인 두류봉을 넘고 나니 7봉인 칠성봉으로 가는 길과 능가사로 하산하는 안부에 이른다. 2시 반이다. 등산 안내 표시판에 의하면 1봉부터 8봉을 지나 능가사에 도착해야 할 시간인 4시간 반이 지났다. . 

7봉(칠선봉)과 6봉(두류봉)사이의 안부에 설치된 이정표. 능가사로 하산하는 길의 표시를 발견하자 모두들 더갈 생각을 않고  주저않는다.
▲ 이정포 7봉(칠선봉)과 6봉(두류봉)사이의 안부에 설치된 이정표. 능가사로 하산하는 길의 표시를 발견하자 모두들 더갈 생각을 않고 주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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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가사로 하산하는 길로 들어선다. A코스는 아니지만, B팀의 코스로 계획한 길이다. 최선을 다했다. 이제 하산하여 고달픈 육신을 위로해줄 차례이다. 등산 과정은 끝나고 복날 행사의 시작이 다가왔다. 친구들 눈빛이 새삼 초롱초롱해진다. 

하산 길에 7봉과 8봉을 돌아보며 다음날을 기약해보나 나이가 들어 급격히 쇠락해가는 체력의 현주소 때문에 약속 끝에 굵고 힘찬 마침표를 찍기 어렵다. 그런데도 다시 오겠다고 다짐해 본다.

팔영산에서 약 30여 분 달려오니 한반도 끝단 바닷가 남열해수욕장이다. 힘든 등산을 미치고 즐기는 시간이라 여흥이 깊다.
▲ 남열 해수욕장 팔영산에서 약 30여 분 달려오니 한반도 끝단 바닷가 남열해수욕장이다. 힘든 등산을 미치고 즐기는 시간이라 여흥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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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가사 입구에 도착하여 '말복 날 행사'를 위해 버스에 올라 해수욕장으로 향할 때 시간을 보니 4시다. 지금 바로 대전으로 출발해도 8시경에나 도착할 것이다. 만일 해수욕장에서 2시간을 보낸다면 광주에 도착시간은 9시 이전이 되기 어렵다. 버스로 유성으로 가서 집에 들어가면 젯밥 드시려고 오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떠나신 후가 될 공산이 크다.

광주 동생에게 전화해서 이곳에 들러 나를 픽업하여 대전으로 가자고 했다. 마음 편하게 친구들과 어울려 말복 날 행사에 곁들여 친구들이 준비해 온 고급 위스키도 2병씩이나 바닥을 보고나니 모든 것이 넉넉해지고 여유가 생긴다.

2시간을 달려 동생이 해수욕장 식당에 도착했다. 6시다. 친구들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슬며시 빠져 나왔다. 동생차에 몸을 실었으니 10시 이전에 대전에 도착해 제사를 모실 수 있을 것이다. 정숙운전을 당부하고 뒷자리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참선 자세를 취한다.

장수의 비결이 왜 좋은 친구들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몫인지 확연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친구 찾아 400리 길을 달려왔고 600리 길을 돌아가지만 힘들거나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장수의 길을 가기 위한 노잣돈을 양손에 듬뿍 쥔 기분이다. 출발한지 10분이나 됐을까 전화기 벨이 울린다. 내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 산친회(산을 사랑하는 친구들의 모임)장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http://bhchung9988.blog.me/120112970042 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친구, #팔영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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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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