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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2일 도쿄YMCA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사람들. 사진 왼쪽부터 김희용 목사, 닼하시 마코토 회장, 두 사람 건너 이용섭 의원, 이금주 회장, 양금덕 할머니.
 지난 6월 22일 도쿄YMCA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사람들. 사진 왼쪽부터 김희용 목사, 닼하시 마코토 회장, 두 사람 건너 이용섭 의원, 이금주 회장, 양금덕 할머니.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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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을 다시 본다. 지난 6월 22일 밤, 일본 도쿄YMCA에서 촬영한 것이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다음날(23일) 실천할 '행동'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또 무엇을 위해 일본사람과 한국사람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일까.

시간이 흘러 7월 14일, 일본 거대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이 일본 나고야에 있는 한 시민단체에 문서를 보낸다. 문서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6월 23일, 양금덕씨 및 김중곤씨를 비롯한 귀 회의 관계자가 폐사를 방문하셨을 때, 이용섭 한국 국회의원께서 제안하셨던 내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답을 드립니다. 전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하여 '협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에 대하여 동의합니다."

미쓰비시가 한국정부조차 침묵하고 있는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해서 협의하겠다고 공식발표한 것이다. 앞서 지난 6월 24일에 열린 주주총회장에서는 근로정신대 문제가 있었음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정부나 전범기업이 근로정신대 문제와 관련해 협의를 하겠다고 공식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놀랍다 못해 충격적인 사건이다.

미쓰비시가 어떤 기업인가. 일제 강점기 동안 무려 10만 명에 이르는 식민지 백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 무기 등 군수물자를 만들어 제국(帝國)에 충성한 1등 전범기업이다. 특히 그들은 강제 수탈한 노동력에 대해서 임금을 지불하기는커녕 사죄조차 하지 않아 온 것으로 유명한 회사다.

그런 1등 전범기업이 근로정신대 문제를 인정하고, 나아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의 장에 나서게 만든 이들은 누구인가? 글머리에 실린 사진 속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20년 넘게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 해결 위해 싸워온 일본 나고야 시민들

도쿄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나고야 지원모임 회원들. 이들은 왕복 700km가 넘는 먼 길을 매주 개인당 30만원씩 차비를 들여가며 오갔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도쿄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나고야 지원모임 회원들. 이들은 왕복 700km가 넘는 먼 길을 매주 개인당 30만원씩 차비를 들여가며 오갔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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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가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를 인정하고 협의의 장에 나서게 만든 주역은 누가 뭐라 해도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지원모임(이하 나고야 지원모임)'이다. 나고야 지원모임은 1986년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이후 20년이 넘게 일본정부와 미쓰비시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 투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1999년 3월 1일엔 일본정부와 미쓰비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10년 에 걸친 재판투쟁을 벌였다. 소송은 2008년 11월 11일 도쿄 최고재판소가 '기각' 판결을 내림으로써 일단 졌다. 하지만 이들은 2007년 7월 20일부터 3년 세월을 나고야와 도쿄 왕복 700km가 넘는 거리를 오가며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 '금요시위'를 계속했다.

한국사람도 하기 힘든 일을 1000명이 넘는 일본 나고야 시민이 20년 넘게 해온 것이다. 나고야 시민들이 도쿄 최고재판소에서 소송 기각 판결을 받고 한 말은 유명하다.

"일본법의 판결은 끝났지만 역사의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7월 24일 현재 나고야 지원모임은 어떻게 협상을 진행할 것인가를 두고 미쓰비시 측과 치열한 물밑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사람 부끄럽게 만드는 일본사람이 있었기에 잠자던 미쓰비시의 양심은 깨어날 수 있었다.

지역 한계 넘어 역사의 양심 일깨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지난 6월 22일 한국 국민 13만4162명이 서명한 항의문서를 미쓰비시에 전달하기 위해 출국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시민모임 회원들. 사회를 보고 잇는 이가 시민모임 결성을 주도한 이국언 사무국장이다. 이들은 광주라는 지역한계를 넘어 근로정신대 문제와 관련 13만명이 넘는 국민 서명을 이끌어내는 저력을 과시했다.
 지난 6월 22일 한국 국민 13만4162명이 서명한 항의문서를 미쓰비시에 전달하기 위해 출국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시민모임 회원들. 사회를 보고 잇는 이가 시민모임 결성을 주도한 이국언 사무국장이다. 이들은 광주라는 지역한계를 넘어 근로정신대 문제와 관련 13만명이 넘는 국민 서명을 이끌어내는 저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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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나고야 지원모임이 있다면 한국에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대표 김희용 목사, 이하 시민모임)'이 있다. 시민모임은 2009년 3월 첫발을 뗐다. 일제 치하 근로정신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에서 단체가 태동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힘들었다, 사람 모으는 것도, 싸우는 것도. 그러나 시민모임은 지역이란 한계에 갇히지 않았다. 그들은 시민모임 활동을 시작한지 3개월 만인 2009년 6월, 미쓰비시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2만8174명의 서명을 받아 미쓰비시에 건넸다. 그해 9월 미쓰비시가 광주에 자동차 판매장을 열자 1인 시위에 들어갔다. 1인 시위는 1년 가까이 계속 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6월 23일, 시민모임은 전국에서 13만4162명의 서명을 받아 미쓰비시 본사에 전달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를 홀로 싸우게 하지 않겠다며 소박하게 출발한 시민모임은 이제 한국사람들의 양심을 깨우고 전범기업 미쓰비시를 움찔하게 만드는 강한 시민모임이 됐다.

대표는 목사, 사무국장은 전직 기자, 가장 열심인 활동가는 택시 기사...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100여 명의 시민모임 회원들이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사죄와 배상의 테이블로 나오게 만들었다.

미쓰비시로부터 근로정신대 문제 협상수용 이끌어낸 이용섭 국회의원

지난 6월 23일 이용섭 의원이 일본의 양심을 묻는 가슴 띠를 두른 채 도쿄 미쓰비시 본사로 항의방문을 가고 있다. 이 의원이 미는 휠체어에는 이금주 태평양전쟁 유족회장이 타고 있다.
 지난 6월 23일 이용섭 의원이 일본의 양심을 묻는 가슴 띠를 두른 채 도쿄 미쓰비시 본사로 항의방문을 가고 있다. 이 의원이 미는 휠체어에는 이금주 태평양전쟁 유족회장이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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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의 협상수용을 이끌어낸 여러 주인공 중 한 사람은 이용섭(민주당·광주 광산을) 국회의원이다. 이 의원은 시민모임 회원들이 "13만명이 넘는 국민의 서명을 받았다"며 도움을 요청하자 국회의원 100명의 서명을 받아 미쓰비시 측에 전달하며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다.

특히 이 의원은 지난 6월 23일 일본 도쿄에 있는 미쓰비시 본사를 항의 방문한 자리에서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장을 만들 의향이 있는지 7월 15일까지 답해주기 바란다면서 만약 미쓰비시가 진심어린 사죄와 정당한 배상을 하지 않을 시에는 국민적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압박했다. 미쓰비시가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와 관련하여 협의의 장에 나오겠다고 밝힌 것도 이 의원의 요구에 답하는 형식을 빌어서였다.

이 의원과 함께 도쿄 미쓰비시 본사를 항의방문한 한 시민모임 관계자는 "보통 국회의원과는 확연히 다른 진정성과 겸손함을 이용섭 의원에게서 보았다"며 "이 의원 같은 국회의원이 10명만 더 있어도 한일과거사 문제는 잘 정리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의원은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가장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나고야 시민들과 한국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의 그간의 노고가 결실을 맺어가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외면하고 있는 사이 일본과 한국 시민단체 그리고 한국 국회의원 한 명이 과거사 해결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 이젠 한국 정부와 보다 많은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태그:#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이용섭, #한일, #나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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