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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으로 이사 오자마자 집 지으면서 버려진 자투리 목재를 재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남 고흥으로 이사 오자마자 집 지으면서 버려진 자투리 목재를 재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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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에서 전남 고흥으로 이사와 한창 이삿짐을 풀고 있는데 우리 집 아이들이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아빠 이삿짐 쌀 때 이웃집 할머니가 새로 이사 오는 사람한티 뭐라구 하는 소릴 들었는데  기분 나쁘더라구."
"뭐라구 했는디?"
"우리 집 보고 저거, 순전히 쓰레기들 주워 다가 고친 집이래."

"맞는 얘긴디 뭐. 그려서 기분 나뻤어?"
"쓰레기라고 하니께 기분 나쁘지."
"그려, 아빠도 쓰레기라니까 기분은 나쁘다. 근디 새로 들어올 사람은 뭐라고 혀?"
"우리 집 허물고 다시 짓는데."
"이제 그 집은 우리 집이 아니지."

모든 것이 만나면 언젠가는 영영 헤어지는 날이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집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주 시골집은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고향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두세 살 무렵부터 13년을 살아왔던 정든 집. 그 집을 구입한 사람은 우리 식구에게 정든 집에 대한 애착을 매몰차게 떼어 주고 있었습니다.

집은 새로, 집안 구석구석은 재활용품으로

우리 부부는 이사 오고 나서 맨 먼저 재활용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공주 시골의 이웃집 할머니 말대로 그동안 그래왔듯이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쓰레기나 다름없는 버려진 것들을 최대한 재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이 날을 위해 집을 지을 때 미리 자투리 목재들을 꼼꼼하게 챙겨 두었습니다.

집 짓는 과정에서 잘려나간 자투리 목재들이라고는 하지만 그 길이가 짧다 뿐이지 하나 같이 멀쩡했습니다. 화목용으로 쓰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목재들이었습니다. 그 뽀얀 속살을 들어내고 있는 목재들을 어떻게 화목보일러에 쑤셔 넣을 수 있겠습니까? 쪼개졌거나 못이 심하게 박혀있는 토막들은 화목용으로 따로 분리해 두었습니다.

자투리 목재로 그대로 짜맞춘 밥상으로 만들었지만 실용성이 떨어져 지금은 앉은뱅이 책상으로 쓰고 있다.
 자투리 목재로 그대로 짜맞춘 밥상으로 만들었지만 실용성이 떨어져 지금은 앉은뱅이 책상으로 쓰고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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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밥상부터 짰습니다. 어떤 일이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길이가 똑 고른 목재들이 많지 않아 크고 작은 것들을 한데 모아 짜깁기 하듯 밥상 모양의 틀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똑 고르게 톱으로 잘라서 짜 맞추면 될 일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버려야 할 목재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었습니다. 또한 밥상을 기계로 찍어내듯 딱 맞아 떨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럴 재주도 없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크게 손대지 않고 생긴 그대로를 활용하자주의의 느려터진 성품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 것이지요.

그 성품 덕분에 그런대로 괜찮은 밥상이 나왔습니다. 밥상이라는 네모반듯한 정형화된 균형을 깨뜨린 나름 근사한 밥상입니다. 전체적으로는 대칭으로 보이지만 그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대칭의 미가 살아있는 밥상입니다. 대칭과 비대칭이 어울려 있는 한옥에서 볼 수 있는 그 어떤 절묘함이 살아있다고나 할까요? 밥상 하나에 너무 거창한 표현을 갖다 붙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요? 잠자는 공간이나 밥 차림 공간이나 먹고 자는 것은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 가족만의 밥상, 그 가운데 부분은 창호 형태로 짜 넣어 멋까지 좀 부렸습니다. 국그릇 같은 뜨거운 것을 놓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뭔가 별 생각 없이 그리거나 만들기 좋아하는 우리 집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의 기발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밥상은 두 달쯤 지나 책상이 돼 버렸습니다. 틈새가 많아 음식물을 흘리게 되면 닦아 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폼은 났지만 그만큼 실용성이 떨어진 것이지요. 하지만 앉은뱅이책상으로의 활용가치는 충분했습니다.

버려진 목재 활용해 창고 짓고, 밥상 만들고

역시 버려진 목재를 활용해 연장 보관용 창고를 만들었다.
 역시 버려진 목재를 활용해 연장 보관용 창고를 만들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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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재활용 작품은 창고 였습니다. 먼저 아내와 함께 연장을 보관하기 위해 집 옆에 자투리 목재로 작은 창고를 만들었습니다. 이삿짐을 풀자마자 하루 이틀 사이에 당장 비가 온다는 예보가 날아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여 아내가 그동안 시골생활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주워 오거나 얻어온 오만가지 잡동사니들을 보관할 좀 더 큰 공간이 하나 더 필요했습니다.

공주에서 가져온 잡동사니들을 보관하기 위해 집을 지으면서 버려진 목자재들을 덕지덕지 기워 임시 창고를 만들었다.
 공주에서 가져온 잡동사니들을 보관하기 위해 집을 지으면서 버려진 목자재들을 덕지덕지 기워 임시 창고를 만들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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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들이 집 지을 당시 높은 곳에서 작업하기 편하게 짜놓은 받침대가 있었는데 그걸 분해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했습니다. 본래 뼈대만 있던 것을 허름한 판자 집의 그것처럼 여기 저기 버려진 목자재와 공주에서 살 때 주워다 놓은 유리문을 활용해 임시 창고를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위에 집 지을 때 나온 목재 포장지며 건물 외벽에 설치하다가 남은 방수시트 등을 이용해 비 가림을 설치했습니다. 일정한 길이의 방수 시트가 없어 스님들 누비옷처럼 덕지덕지 이어 붙였습니다. 그것도 작업이라고 시옷자 알루미늄 사다리를 받쳐 놓고 작업을 하다가 그게 그만 옆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땅 바닥으로 쿵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측방 낙법 하듯 옆으로 나가 떨어져 흙을 탈탈 털어가며 멀쩡하게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당시는 멀쩡하다가 며칠 지나면 뒤탈이 나기 마련이라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그렇게 댓 평 정도의 창고를 짜깁기 하는데 하루 반나절 쯤 걸렸습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사나흘이 지나도록 뭉그적거리고 있을 터인데 저만치 바다 먼 곳에서 부터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었거든요. 아무리 느려터진 놈이라 할지라도 급하면 다 하게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처마가 짧아 현관으로 비가 들이쳐 집짓고 남은 목재를 이용해 비막이와 신발장을 만들었다. 아내는 신발장에 그림을 그렸다.
 처마가 짧아 현관으로 비가 들이쳐 집짓고 남은 목재를 이용해 비막이와 신발장을 만들었다. 아내는 신발장에 그림을 그렸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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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품 어때? 목수도 이렇게는 못해"

그 다음에는 내부 작업. 남은 판때기와 자투리 목재로 벽장 선반과 아이들 책상, 책꽂이 등을 만들었습니다. 거기다가 현관으로 비가 들이쳐 비 가림 지붕과 신발장까지 만들었습니다. 이 또한 전기 대패로 깎아대고 전기 사포로 반들반들하게 문지르고 나니 흙바닥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굴러다니던 자투리 목재들이 결이 매끈한 책상이며 책꽂이로 대 변신을 하더군요. 책상과 책꽂이는 목재를 최대한 적게 들여 아주 단순한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집 짓다가 남은 목재와 자투리 나무 토막을 이용해 최대한 단순하게 책꽂이며 아이들 책상을 만들었다.
 집 짓다가 남은 목재와 자투리 나무 토막을 이용해 최대한 단순하게 책꽂이며 아이들 책상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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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내 작품 멋지지 않냐? 단순미가 살아 있잖어. 목수들도 이렇게 못혀."

단순한 작업성과에 마냥 도취 되어 있는 내게 일 잘하는 아내가 한마디 툭 던졌습니다.

"아이구, 큰일했네요 큰일, 목수들이 보면 웃겠다. 그게 그렇게 좋아?"
"그럼! 새 집 지을 때 보다 훨씬 더 기분이 좋구먼. 목수들이야 목재들은 필요한 만큼 맘껏 자르고 설치하고 했지만 나는 거기서 잘려 나온 것들을 조각조각 주워 다가 짜 맞췄잖어. 이 일이 더 어려운 일이라구. 사실 목공 기계들이 알아서 다 해줬지만 말여."

따지고 보면 밥상에 창고, 책꽂이 등등의 모든 작업들이 단기간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목공기계 덕분이었습니다. 목수였던 막내 동생이 인도로 떠나면서 놓고 간 오만가지의 연장들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던 것입니다. 길이를 재거나 균형을 잡는 것에서 부터 자르고 깎고 다듬고 거기다가 실 침에서 부터 큰못 작은 못을 박고 목재는 물론 바위까지 뚫어 대는 온갖 연장들이 다 있으니까요.

성품 느려터진 내가 이 정도였으니 한시라도 일손을 놓지 않는 아내의 일머리는 말할 것도 없었지요. 비록 중급의 도배지와 장판지, 새 싱크대에 세면대, 손님방 가스레인지(거실 가스레인지는 이전에 쓰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에 작은 냉장고, 실내 신발장까지 새 물건들을 겁없이 사들였던 아내였지만 아내는 역시 내가 따라 잡을 수 없는 재활용의 '귀재' 였습니다.

따라잡을 없는 재활용의 귀재, 아내

어디선가 얻어온 천을 이용해 아내가 재봉틀을 돌려 만든 손님방 커튼. 심심한 커튼에 낙엽 문양을 새겨 넣었다. 대형 유리문 역시 처가에서 중고로 굴러다니던 것을 가져온 것. 그걸 목수인 윤구씨가 문틀을 만들어 억지로 짜 넣었다.
 어디선가 얻어온 천을 이용해 아내가 재봉틀을 돌려 만든 손님방 커튼. 심심한 커튼에 낙엽 문양을 새겨 넣었다. 대형 유리문 역시 처가에서 중고로 굴러다니던 것을 가져온 것. 그걸 목수인 윤구씨가 문틀을 만들어 억지로 짜 넣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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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정리를 대충 마친 아내는 쉴 틈 없이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을 돌려 손님방을 비롯해 각 방의 벽장 공간에 어딘가에서 얻어온 자투리 천을 이어붙여 커튼을 만들고 보일러 실 옆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다용도실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그건 또 뭐여?"
"이거? 공주 살 때 버려진 책장을 주워다가 옷장으로 쓰던 건데 괜찮지?"

아내는 책장에서 옷장으로 변신했던 다 낡아 빠진 가구를 흰 페인트를 칠해 놓고 그 유리문에 문종이를 이용한 압화를 만들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이쁜 꽃들로 장식한 압화가 아니었습니다. 집 주변에서 당장 눈에 보이는 아무 풀이나 꺾어다가 붙여 놓았던 것입니다.

아내가 공주에 살때 버려진 책장을 주워와 옷장으로 만들어 사용하다가 이사 올 때 영영 사라져 버릴 위기에 놓여 있던 것을 말끔히 수리해 유리창에 압화를 새겨 작업복을 넣는 옷장으로 쓰고 있다.
 아내가 공주에 살때 버려진 책장을 주워와 옷장으로 만들어 사용하다가 이사 올 때 영영 사라져 버릴 위기에 놓여 있던 것을 말끔히 수리해 유리창에 압화를 새겨 작업복을 넣는 옷장으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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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들풀로 해놓으니까 신선해서 좋네, 근디 그 옷장 너무 낡아서 이사 올 때 버린다고 했잖어?"
"그 여자가 하두 괘씸해서 그냥 가져 왔어."
"그 여자? 뭐라 했길래?"

이사 올 무렵 아내는 공주 시골집에 들어오게 될 사람과 대판 싸움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 여자 눈에는 우리 집 살림살이들이 잡동사니로 보였나 봐, 그런 잡동사니들을 없애 버리지 뭐 하러 가져 가냐고 그러더라구."
"그래서?"
"우리 한티는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데 왜 버리냐고 했더니, 뭐라더라? 젊은 여자가 욕심이 많다나 뭐라나, 내 참 기가 막혀."

"수행자라면서 웃기네, 그런 욕심은 얼마든지 부려두 되지 뭘, 근디 인효 엄마가 그 여자 보다 나이가 많다고 했잖어."
"그 여자가 나보다도 서너 살이나 어린데 나보고 젊은 여자래."
"그래서 뭐라 했어?"
"그냥 가만있었지 뭐."
"젊은 여자라고 해서 한편으로는 좋았겠구먼."

아내 말대로 우리 집 살림살이들이 그 사람 눈에는 죄 다 잡동사니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새집까지 지어놓고 온갖 낡은 가구들을 챙겨가는 것이 큰 욕심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우리 집 이삿짐은 10년 이상 쓴 전자제품에 누군가가 버린 것을 재활용하여 10년 가까이 사용한 낡은 물건들이 꽤 많습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고급스런 이삿짐은 아내의 장롱입니다. 그동안 시골집 안방이 비좁고 천정이 낮아 창고에 쑤셔 박혀 있다가 고흥으로 이사 와 비로소 10여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어쨌든 집을 짓는 과정에서 새 것에 대해 욕심을 부렸던 아내가 무엇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고 재활용했던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새 것을 선호하는 것은 그 어떤 생명을 죽여 나가는 것이지만 버려진 것을 재활용하는 것은 죽어가는 생명에 불씨를 지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어떤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렇게 새 집과 함께 새 것에 눈을 돌리던 아내는 다시 소박한 생활이라는 불씨를 지펴나가고 있었습니다.


태그:#자투리 목재 재활용, #밥상, #창고, #압화, #커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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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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