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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제는 남대천을 끼고 좌우에 각각 1km 정도씩 난장을 벌여 진행한다.
 강릉단오제는 남대천을 끼고 좌우에 각각 1km 정도씩 난장을 벌여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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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뒤 추모기간 때 단오제 개최 여부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다만, 강릉시청 앞에 설치한 공식분향소 외에 행사장 입구 광장에도 분향소를 따로 설치해 추모를 한 뒤 행사장으로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지난해 6월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해 전국이 엄숙한 추모 분위기에 젖었던 터였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예정됐던 축제들을 취소했고, 대기업들은 각종 이벤트 등의 행사를 취소하거나 추모 기간 이후로 연기했다. 야구장과 축구장 등에서도 치어리더들이 흥겹게 이끄는 응원을 자제했다.

그런데 강릉단오제는 지난해 6월, 음력 5월 5일 단옷날을 전후해 7일간 꿋꿋하게(?) 난장을 벌였단다. 사단법인 강릉단오제위원회 김동찬 상임이사는 앞서 한 발언에 이어 이렇게 덧붙였다.

"단오제는 단순히 먹고 마시며 놀기만 하는 축제가 아닙니다. 단오제는 강릉시민 모두가 1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행사이며, 단오제 현장은 '신과 인간이 만나는 신성한 곳'입니다. 노 전 대통령께서도 이 점은 이해하셨을 거라고 봅니다. 단오제가 끝나고 나니까 <노사모> 회원들이 '분향소 설치 등 추모에 적극 동참해 줘서 고맙다'고 하더군요."

단오제 현장은 '신과 인간이 만나는 신성한 곳'

단오제의 난장에는 수많은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난다.
 단오제의 난장에는 수많은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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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제는 전국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숱한 축제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것으로 꼽힌다. 역사가 오래 되어서? 규모가 커서? 아니면 볼거리 등 즐길거리가 많아서? 직접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 결과, 강릉단오제는 이 모든 조건들을 충족하고 있었다. 아니, 그 밖에 여러 조건들을 추가해야 할 판이었다.

단옷날인 지난 6월 16일, 단오제가 열리는 강릉 남대천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천막들이 거대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오고 가는 인파 역시 발걸음을 내딛기 힘들만큼 북적거렸다. 다양한 먹을거리들을 비롯해 공연마당, 굿당, 씨름, 동춘 서커스, 품바 등 줄지어 늘어선 '난장'은 강릉단오제가 왜 유명한가를 그대로 보여줬다.

공연마당, 굿당, 씨름, 동춘 서커스, 품바... 흥겨운 난장

단오제에는 씨름대회, 투호대회, 신주맛보기, 동춘서커스 등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많다.
 단오제에는 씨름대회, 투호대회, 신주맛보기, 동춘서커스 등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많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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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천을 가운데 끼고 양쪽 편에 각각 자리한 난장은 한쪽에 1km 정도씩 족히 2km는 되어 보였다. 난장의 끝과 끝을 몇 차례 오가다 보니 남녀노소가 한데 어우러지는 장면이 계속 눈에 띄었다.

동춘서커스 천막 앞에서는 어르신들이 표를 사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그네타기와 투호대회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주머니들이 높이와 실력을 겨루고, 씨름판에서는 젊은 군인들이 단체전을 펼치고, 아리마당에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엄마와 아빠, 학생과 아이, 외국인이 한데 엉켜 관노가면극을 즐긴다.

창포 머리감기 체험장에서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머릿결을 다듬고, 솔방울공예 체험장과 가면 만들기 행사장에서는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손짓을 놀리고, 인형극단 공연과 중국 사천성 공연 등이 진행되는 단오문화관에서는 관객들이 한바탕 신바람에 일렁이고, 남대천 위에서는 연인들이 수상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애정전선을 확대시켜 나가고, 장터에서는 남대천을 벗 삼은 아저씨들이 밤인지 낮인지 모를 술판을 벌인다.

굿당에서는 단오제 기간 내내 굿이 벌어진다(사진은 심청굿의 한 장면). 단오제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것 중 하나인 강릉사투리 대회는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굿당에서는 단오제 기간 내내 굿이 벌어진다(사진은 심청굿의 한 장면). 단오제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것 중 하나인 강릉사투리 대회는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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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행사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각각 난장의 한 부분으로서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사람들이 자리에 앉으면 앉는 대로 떠나면 떠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둘 뿐, 누구 하나 불러 세우거나 보채는 법이 없다.

강원도 영월의 단종문화제와 전라남도 함평의 나비축제, 경기도 파주의 장단콩축제 등 유명한 지역축제 현장을 다녔던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이러한 광경은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천년의 어울림 강릉단오제'의 역사
김유신 장군은 죽은 뒤 산신령이 되어 대관령 자락 산신당에 모셔졌다.
 김유신 장군은 죽은 뒤 산신령이 되어 대관령 자락 산신당에 모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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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제'는 <고려사>, 허균의 <성소부부고>, 강릉의 역사서 <임영지> 등의 기록을 통해 천 년 이상 지속된 것으로 파악된다. 강릉단오제위원회가 '천년의 어울림'을 강릉단오제의 수식어로 내건 이유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고려사>에는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신검'을 토벌할 때 당시 명주(강릉) 지역의 호족이었던 '왕순식'에게 "꿈에 이상한 중이 갑옷을 입은 병사 3천을 거느리고 온 것을 보았는데 다음날 그대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도와주니 이상한 일이다"라고 말하자, 왕순식이 "제가 명주에서 출발할 때 대현에서 승사(僧祠)가 있어 제사를 지냈는데 대왕이 보신 꿈이 이것입니다"라고 답한 기록이 있다.

한편, 강릉단오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강릉출신 허균에 의해 쓰였다. 허균은 <성소부부고>에 강릉단오제를 직접 본 기록을 남겼는데 제사를 받는 대상이 김유신 장군이라고 적었다. 김유신은 어려서 명주에 유학하여 무술을 익혔고, 삼국을 통일한 뒤에는 죽어서 대관령산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승사 즉, 중에게 지낸 제사의 주인공은 실존인물인 '범일국사(810~889)'로 그는 현재 '대관령국사성황사'에 신위(神位)가 모셔져 있고, 허균이 기록이 김유신 장군(595~673)은 '대관령국사성황사'에서 불과 10m 정도 떨어진 '대관령산신당'에 신위가 모셔져 있다.

이는 대관령국사성황사와 대관령산신당의 오랜 역사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며, 강릉단오제는 음력 4월 15일 바로 이곳에서 제를 올리며 성대한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강릉시민에게 단오제는 해방구

강릉단오제에는 다른 지역 축제와 비교해, 특히 어린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행사들이 많았다. 단오제 타일을 그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진지하다.
 강릉단오제에는 다른 지역 축제와 비교해, 특히 어린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행사들이 많았다. 단오제 타일을 그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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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뜨거웠던 해가 저물면 난장에는 보이지 않는 흥겨움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술을 곁들여 난장 곳곳에서 흥을 돋우는 사람들의 모습은 남대천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오랜 시간 술자리가 이어져도 시끄러운 듯 잔잔한 분위기를 그 누구 하나 깨는 법이 없다. 현지인이든 객지 관광객이든. 그리고 다시 날이 밝으면, 단오제 현장은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일상의 분주함 속에 평온함을 되찾는다.

단오제위원회 측에 따르면 정확하게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단옷날을 전후해 일주일 정도 치러지는 단오제에는 약 100만명에서 150만명의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강릉시민들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단오장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일까.

"강릉시민에게 단오제는 해방구라고 보면 됩니다. 누구의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않아요. 그렇지만 신과 만나는 공간인 만큼, 비록 술판이 벌어지더라고 꼭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거예요. 만약 강릉시민이 단오장 안에서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한다면 그 사람은 미쳤거나 아니면 이후부터 강릉에서 완전히 따돌림을 당하게 됩니다."

단오문화관에서 만난 김동찬 상임이사가 들려준 말마따나 단오장 주위의 교통을 사람과 행사 위주로 통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단오제가 열리는 난장에는 특별히 단속을 하거나 뭔가 틀에 박힌 것처럼 사람들을 옥죄는 것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치 남대천이 자연의 순리대로 군말 없이 흘러가듯, 수백 개의 난장 사이사이에는 누구도 어기지 않는 신성한 질서가 존재한다. 단오제가 남대천을 끼고 천년을 흘러왔듯, 인류의 소중한 유산들은 모두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산의 가치는 자연과 사람 중심일 때 빛난다

관노가면극 공연이 진행되자, 학생들이 신기한 듯 휴대전화카메라로 양반광대를 찍고 있다. 관노가면극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관노가면극 공연이 진행되자, 학생들이 신기한 듯 휴대전화카메라로 양반광대를 찍고 있다. 관노가면극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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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일국사의 신위를 모신 '대관령국사성황사'(위)와 제를 올릴 때 신주를 빚고 각종 제사음식을 장만하는 '칠사당'의 사당.
 범일국사의 신위를 모신 '대관령국사성황사'(위)와 제를 올릴 때 신주를 빚고 각종 제사음식을 장만하는 '칠사당'의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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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유산은, 자연과 사람을 중심으로 이어왔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강릉단오제가 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인류 보편의 무형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애초 1박 2일 일정으로 강릉단오제를 찾았다. 그런데 강릉단오제에 맞춰 제를 올리는 '대관령산신당'과 '대관령국사성황사', 신주를 빚는 '칠사당', 신을 봉안하고 보내며 제를 드리는 '대관령국사여성황사' 등, 대관령 자락과 강릉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이들을 모두 둘러보는 데에는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남대천에 세워진 관노가면극의 '소매각시' 조형물이 눈웃음을 짓고 있다.
 남대천에 세워진 관노가면극의 '소매각시' 조형물이 눈웃음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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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저녁, 서울로 갈 것인가 강릉에서 하룻밤을 더 묵을 것인가 고민하다 결국, 8시 30분에 열리는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전 월드컵 축구경기를 난장에서 보기로 결정했다.

비록 경기도 지고 일정이 늦어진 탓에 다음날 서울에서 숨이 가쁘긴 했지만, 난장에 푹 안긴 덕분으로 남대천에 울려 퍼진 '대~한민국'은 단오제와 함께 멋진 추억으로 남았다.

'2011 강릉단오제'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남대천 가운데 세워진 관노가면극의 '소매각시' 조형물이 장난기 가득한 눈웃음으로 '빨리 오라'고 부르는 것 같다.

강릉단오제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개요
 * 등재 대상 : 강릉단오제

 * 등재 범위
1. 단오제례 - 대관령산신제, 대관령국사성황제, 구산서낭제, 학산서낭제, 봉안제, 영신제, 조전제, 송신제, 소제, 신주빚기 등
2. 단오굿 - 부정굿, 청좌굿, 화외동참굿, 세존굿, 천왕굿, 장군군웅굿, 심청굿 등
3. 단오행사 - 관노가면극, 그네, 씨름, 투호, 줄다리기 등 

 * 등재 사유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강릉단오제'는 천 년 이상 지속된 우리나라 최고(最古), 최대의 전통 축제이다. 강릉단오제는 단오제례와 단오굿, 관노가면극, 난장 등이 잘 보존돼 있어 인류의 무형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 등재 기준
'인류무형문화유산' 기준
(a)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체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b) 공연 예술
(c) 사회적 실행, 의식, 그리고 축제

 * 등재 연도
2005년 11월,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선정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은 2008년부터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격이 높아졌다.)

덧붙이는 글 | <세계유산 즐겨찾기> 연재기사 ‘강릉단오제’편은 ‘관노가면극 관람기’, ‘우즈베키스탄 및 아시아 각국의 단오행사 공연’, ‘강릉단오제위원회 최종설 위원장 인터뷰’ 등으로 이어집니다.



태그:#강릉단오제, #단오제, #인류무형문화유산,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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