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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뜨면 우리는 일어나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뒤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시간의 구조와 존재의 현실이 말해준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제 자리에 멈추거나 뒤로 물러서는 일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걷기를 통해 보다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날 시인과 모티길을 함께 걷기로 약속했음이 생각나 14일, 무작정 평촌리 시인산채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차창을 통해 스며드는 맑은 공기에 가슴이 트인다. 헌데 약속도 없는 무작정의 방문에 시인의 표정은 어떠할까 그것이 사뭇 궁금했다.

장현진 시인, 시인산채원에서 낚시에 열중하고 있다.
▲ 낚시 장현진 시인, 시인산채원에서 낚시에 열중하고 있다.
ⓒ 장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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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산채원에 도착했을 때 마침 시인은 원두막 앞 작은 연못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내가 방문한 줄도 모르고…….

시인은 무료할 때 이곳에서 낚시를 한다고 했다. 물론 물고기를 잡는 게 목적은 아니었다. 토종붕어와 메기 등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낚기기도 하지만, 그러나 강태공이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그가 낚고자 하는 것은 세월인지도 모르겠다.

나지막한 목소리의 인사에 시인이 의아해 했지만 이내 나의 방문 목적을 알아차렸다는 듯 그는 실웃음을 띠며 낚싯대를 접었다. 그리고는 "지난번보다 산나물들이 많이 컸지요?"하며 앞서 차량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했다. 그만큼 관심이 필요하다는 얘기겠지만 새삼 이곳에 오면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시인이 가꾸어 가는 산채원, 부부 시인은 그렇게 시를 쓰듯 한올한올 정성을 다하여 산나물을 돌본다.

수도리 주차장에서 만난 시화
▲ 시화 1 수도리 주차장에서 만난 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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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수도리 주차장에 도착하여 자동차를 막 주차했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증산 빛글문학회'의 시화들이다. 이 시화들은 오늘 모티길의 안내자인 장현진 시인님의 제자들 작품이다.

정경임 시인님의 시화
▲ 시화 2 정경임 시인님의 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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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 중 눈에 익은 이름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바로 장시인님의 아내인 정경임 시인님의 작품이었다. 하면 정시인님도 '증산 빛글문학회' 명예회원이란다.

수도리 모티길 알림 표지
▲ 팻말 수도리 모티길 알림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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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리 마을을 뒤로하고 십분 쯤 걸어 올라왔을까 휘어진 길가에 모티길 팻말이 시야에 들어온다. 모티길은 해발 800m 능선을 힘들이지 않고 트레킹 할 수 있는 여인의 나신을 닮은 길이다. 수도리와 황점리를 연결하는 15km 휘어진 길, 그러고 보면 모티란 경상도 사투리로서 모퉁이을 지칭하는 말인 듯하다.

모티길 입구에서 만난 산림청 안내소
▲ 안내소 모티길 입구에서 만난 산림청 안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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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웃음으로 대한다는 산림청 지킴이 권대수 처사의 근무처가 우리 앞을 막아선다. 여기서부터 모티길 트레킹은 시작되는 것이다.

자작나무 숲을 지나 만난 숲길
▲ 길 1 자작나무 숲을 지나 만난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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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이란, 천천히 걷는 것이라 했다. 힘이 들어서가 아니라, 기분이 좋아서, 볼거리가 많아서, 그리고 중요한 상태를 조금 더 지속하고 싶어서, 심신이 사색을 통한 즐거움을 맘껏 누리도록 배려하기 위해 느리게 걷는 것이라 했다. 

풍경이 아름다운 모티길
▲ 길 2 풍경이 아름다운 모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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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트레킹이란 말보다는 산책이란 말을 쓰고 싶다. 산책, 그래 산책과 걷기는 같은 말이다. 걷는 행위를 보다 낭만적으로 표현하면 산책이 되는 것이고, 산책을 사무적으로 표현하면 걷기다. 산책에 쉬어가는 삶의 여유가 있다면, 걷기는 다소 건조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걷기는 인간이 두 다리로 직립보행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생존을 위한 기초행위에 속하지 않았던가.

숲속에서 만난 아름다운 꽃송이
▲ 꽃 1 숲속에서 만난 아름다운 꽃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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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소로우의 수채화 같은 일기를 인용할 생각은 없지만,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송이들이 너무도 예쁘게 보였다.

꽃들이 즐비한 모티길
▲ 길 3 꽃들이 즐비한 모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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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적이고 복잡한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시인과 나는 산책을 통해 쉽고 가볍고 한가하고 느린 즐거움을 접한다. 걷기에 모든 걸 걸었던 남자, 직장생활을 마치고 유럽과 아시아의 실크로드까지 몇 만 킬로미터를 두 발로 걸었다는 베르나르 올리비에를 떠올려 본다.

아름들이 낙엽송이 있는 풍경
▲ 낙엽송 아름들이 낙엽송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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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보면 시인에게 산책은 어쩌다 생각나면 꺼내 보는 생경한 풍경이 아니라 자투리시간을 이용 틈틈이 그 속에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새로운 시상을 떠올리며 새 목적지 계획은 물론 지친심신을 의탁하고 부비는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모티길에서 바라 본 증산풍경
▲ 산촌 풍경 모티길에서 바라 본 증산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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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서 혼자 명상하듯 걷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 담소하는 사람, 딸기를 먹고 가라며 붙잡는 할머니,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는 할아버지, 어깨에 스웨터를 걸치고 팔짱을 낀 채 나란히 걷는 중년 부부의 조화롭고 여유로운 모습 따위를 찾아 볼 수는 없다지만 그래도 이 산책로에서 내가 만난 풍경들은 모든 것이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여인의 나신을 닮은 모티길
▲ 길 4 여인의 나신을 닮은 모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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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나신 같은 곡선미를 따라 걷는 길, 때마침 바람까지 솔솔 불어 더위를 식혀주는 길, 그 길의 한 가운데서 우리는 우거진 숲과 시냇물 소리 그리고 새소리 등등 아주 진하게 자연과 교감을 나누었다.

모티길에서 만난 풍경
▲ 민들레 모티길에서 만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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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자연과 사람 속으로 걸어들어 가고자 한다면 그 길은 세상에서 가장 사색적인 길이 아닐까. 따라서 소풍을 가듯 걸어가는 길, 그 길이 바로 모티길이었다.

모티길에서 바라본 산촌풍경
▲ 초동 모티길에서 바라본 산촌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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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그 자체가 산책이면 되는 것이다 라고 시인이 말했다. 글을 쓰거나 뭔가를 남기기 위해 굳이 산책을 선택한 것은 아니므로 그때그때 메모나 자료수집에는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평지로 이어지는 모티길
▲ 길 5 평지로 이어지는 모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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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중에도 그리고 산책이 끝나고 제 자리로 돌아오면 많은 것이 달라진단다. 산책에 취해 전혀 쓰고 싶은 욕구를 못 느끼다가 제 자리로 돌아와 눈을 감고 기억을 되새기는 순간 산책의 여운이 서서히 온몸으로 퍼져 구체적으로 뭔가 쓰고 싶다는 욕구가 발동되는데 이 과정이야말로 신을 받은 무당과 다르지 않단다.

황점리 모티길 끝부분
▲ 종점 황점리 모티길 끝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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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다만 자연에 순종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늘 뭔가에 쫓기는 생활이 현대인들의 일상이고 보면, 모든 것을 다 할 수도 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하는 휴식에 이젠 우리 모두 익숙해 질 필요가 있다.

시인의 집 입구에 그려진 동화 속의 그림
▲ 벽화 시인의 집 입구에 그려진 동화 속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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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에 걸쳐 걸었던 길, 그 모티길을 뒤로 하고 시인의 집으로 돌아오니 벽면에 그려진 동화 같은 벽화가 가장 먼저 시야에 와 닿는다.

풀을 뽑고 있는 정경임 시인님
▲ 마당정리 풀을 뽑고 있는 정경임 시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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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으로 들어서니 정 시인님이 마당을 정리하고 있었다. 풀을 뽑고 마당을 쓸고, 가벼운 나의 목례에 방긋 웃음으로 답하는 시인님을 보며 들린 김에 저녁식사를 하고 가야겠다는 욕심이 촉수를 높인다. 따라서 은근슬쩍 풀 뽑는 일을 거들어 본다.

시인의 집 마당에서 바라 본 채소의 방
▲ 텃밭 시인의 집 마당에서 바라 본 채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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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두화가 주렁주렁 매달린 가운데 텃밭 앞쪽을 지키고 있는 돌탑이 이색적이다. 오이도 지줏대로 세워놓은 대나무를 타고 오르고, 고추도 키를 높이고 있다.

구성진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안데스에 사는 인디오들의 악기로 알려진 팬 플루트(원래 볼리비아와 페루 사이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주변의 고원지대에 사는 갈대cane panpipe로 만들었으나 근래에는 페루 숲에서 나는 chuqui 라는 갈대나 대나무로 만드는데...)는 재질이 고원의 갈대나 대나무라 그런지 악기 중에서 가장 자연을 많이 닮고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소리가 이 집 어디에선가 들리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모티길은 해발 800m 높이에 존재하는 임도로서 그 길이가 장장 15km에 이르며, 이 곳을 통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안내소의 허락을 득해야 트레킹을 할 수 있다.



태그:#모티길, #시인산채원, #수도리, #증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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