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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만들기 첫째 날

 

사위는 백년지객이라 매번 어려운 손님이거늘 모처럼 처가에 온 귀한 사위가 썩어 부러지는 데크(deck) 상판에 빠져 상처를 입었다.

 

내가 당혹스러웠으니 집사람이야 오죽했겠나? 아들 혼사 일정이 대충 정리되는가 싶자, 집사람은 오늘 아침부터 당장 데크를 뜯어내고 새로 만들잔다. 전 주에 시랑헌에서 연장을 대충 챙겨와서 늘 대기하고 있었다. 아침산행, 참선, 백팔배 모두 뒷전으로 밀렸다. 오늘부터 아침에 두 시간 저녁에 두 시간 작업을 하여 데크를 만들 계획이다.

 

오늘은 그 첫째 날이다. 겉으로는 아직 멀쩡해 보였으나, 막상 뜯어보니 상판를 받치는 보가 군데군데 썩어있다. 더 큰 사고를 당하기 전에 다시 만들기로 한 결정이 현명했다.

 

 

지금 데크는 약 5년 전에 나와 집사람이 추운 날씨의 연속인 입춘 전후 약 일 주일간 아침저녁으로 작업하여 만든 것이다. 그때는 데크가 제대로 만들어 질지 자신이 없어 방부목이 아닌 값 싼 미송을 제재소에서 켜와 건조되지 않은 상태로 시공한 탓에 매년 봄 가을로 썩어가는 나무의 부패를 지연시키고자 도포했던 오일스테인 값도 만만치 않았다.

 

데크를 위에서 보면 아직은 쓸만해 보인다. 틈새에 쌓인 젖은 개털이 머금고 있는 습도와 유기물질이 문제다. 습기와 양분은 박테리아 생명활동의 필수요소다. 사위가 빠진 부위가 다른 곳 보다 낮아 그 곳은 항상 젖어 있었던 모양이다. 썩어 본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우리는 자주 이러한 우주 섭리를 부정한다.

 

박테리아의 생명활동은 궁극적으로 우주의 구성물질을 순환시키는 것이다. 20만년 전 생명활동을 중지한 화석 속의 박테리아가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충족되면 생명활동을 재개한다. 박테리아는 원칙적으로 죽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복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박테리아 덕분에 지구는 살아있는 행성이 되는 것이다.

 

 

시랑헌에서 가져온 장비들을 정리하고 작업대를 설치했다. 저녁부터는 이 작업대 위에서 데크의 기둥과 보 그리고 상판들이 다듬어 질 것이다.

 

5년 전, 낡은 데크를 만들 때와 비교하면 연장이나 나무 다루는 솜씨도 칼과 총 차이는 될 것이다. 솜씨를 십분 활용하고 목재를 재대로 사용하여 훗날 근심에 대비해야겠다. 그때는 지금 생각해 봐도 퍽 용감했던 것 같다. 아니 짝없이 무모했던 것 같다.

 

출근시간이 되어 첫째 날 아침일정을 마친다. 5년 전, 추웠던 입춘 때와 달리 마침 일하기 좋은 계절이다. 아침 산행하기는 더 좋은 날씨이지만…….

 

데크만들기 둘째, 세째날

 

나는 최근까지 집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거나, 요청하면 일이 다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은 다르다. 자기가 며느리도 있고 사위도 있는 사람이란다. 자기를 얕보거나 까불면 좋지 않다는 시위다.

 

아닌 게 아니라 집안 일이 모두 집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나는 아들이나 딸에게 일년 가봐야 한두 번 전화 받는다. 그것도 집사람이 전화를 받지 않을 때이다. 거의 매일 전화 통화를 하는 집사람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어느덧 이방인이다.  

 

이번 데크공사 일만 해도 그렇다. "힘든 일은 둘이서 하기 힘드니 인부 한 사람 얻어주소" 부탁 했지만 못들은 체 한다. '둘이서 했다'는 전리품을 얻기 위해서 이다. 물론 집사람은 자기가 할 수 일을 찾아 열심히 한다. 그러나 전동공구나 힘든 일은 맡길 수 없다. 바로 사고로 이어진다.

 

퇴근 길에 목조건축자재 도매상인 청원 *우드에서 주문한 목재를 트럭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랑헌을 지으면서 여러 차례 들리고, 얘기를 나눈 덕분에 정 이사와 친한 사이가 됐다. 일반 시중 소매상 절반가격이고 다른 도매상보다도 20~30% 정도 저렴하다. 주춧돌 외 7종 주문한 방부목의 재료비 총액은 98만5000원이었다.

 

사업자에게 시공견적을 받아보지 않아서 최근 공사비는 모르겠으나 5년 전 견적금액은 450만원 이었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생각에 직접 시공하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다. 자재비 100만원을 지불한 집사람은 계산서를 들여다보며 "정말로 이 자재로 데크를 만들 수 있어요?" 하면서 내심 크게 만족한 표정이다. 

 

낡은 데크를 완전히 뜯어내고 어제 저녁 늦게까지 방안지에 그린 설계도를 들어다 보며 일을 시작하려 하자 집사람 태클이 들어온다. 집 마당이 넓게 보이는 것이 추후 집을 팔 때에도 유리하단다. 새 데크는 높게 만들지 말고 될 수 있으면 마당과 연결시키는 것이 좋겠단다. 일꾼은 주인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뒷탈이 적다.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 날이다. 우리는 돌봐야 할 어린이가 없으니 새벽 6시부터 바닥 면적을 가로, 세로 40 cm, 80 cm 간격으로 보를 만들고 주춧돌을 묻거나 시멘트벽돌 받침을 대는 일을 했다. 25개 지점의 수평을 맞추어 주춧돌을 묻거나 받침대를 대는 일은 많은 정성이 들어가야 했으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점심 때 즈음에는 비몽사몽 상태가 되었다.

 

 

저녁 6시 가까이 돼서 겨우 두 판의 기초를 마감하고 상판을 올려봤다. 다음 공정은 현관으로 통하는 계단을 만드는 과정이다. 나에겐 고난도 기술이다. 매끄럽게 잘 될지 걱정이다.

 

저녁부터 내일 아침까지 비가 온다는 예보다. 다시 장비들을 비에 젖지 않게 정리하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마당 한 켠 소나무 밭 정원에 철쭉과 작약, 목련, 옥잠화가 이번 비에 기지개를 켤 것이다.

 

 

 

힘 드는 일을 혼자서 낑낑거리다 보면 입에서 쓰디 쓴 김이 올라온다.  허공의 메아리 같은 불평이지만 가끔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 대답이다. 반란 진압용이다.

 

퇴근 때 부족한 몇 가지 물건을 사 가지고 야간 작업을 하면, 원하던 데크가 대충 그 본 모습을 드려낼 것이다. 고생이야 재미로 생각하면 그만이고 적게 잡아도 500만원 공사를 나와 집사람이 4일 동안에 처리한다면 400만원 즉, 하루에 백 만원씩 벌었다는 계산이다.

 

'500만원 견적 데크공사를 둘이서 100만원으로 완공했다.' 집사람이 앞으로 두고두고 자랑거리로 사용할 핵심 내용이다. 그러니 여기에 나와 집사람만 등장해야 한다. 인부가 등장하면 그 맛이 영 아닌 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시랑헌 오두막도 마찬가지다.

 

사위가 당한 상처는 우리들에게 400만원짜리 선물로 돌아왔다. 나와 집사람은 이번 데크공사 이름을 '사위의 400만원짜리 선물'로 명명했다.


태그:#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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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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