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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바른교육국민연합을 통해 보수진영 단일후보로 선출된 이원희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왼쪽 두 번째)와 바른교육국민연합이 12일 오전 서울역 앞 선거사무실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재선에 도전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다른 교육감 후보 사무실을 방문하며 지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이상훈 애국단체총협의회 대표가 "사실 확인을 해본 뒤 문제가 있다면 엄중히 항의하고, 필요하면 법적 조치와 낙선운동도 벌일 수 있다"고 답변하고 있다.
▲ 보수 교육감 후보 측, '오세훈 낙선운동' 경고 바른교육국민연합을 통해 보수진영 단일후보로 선출된 이원희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왼쪽 두 번째)와 바른교육국민연합이 12일 오전 서울역 앞 선거사무실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재선에 도전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다른 교육감 후보 사무실을 방문하며 지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이상훈 애국단체총협의회 대표가 "사실 확인을 해본 뒤 문제가 있다면 엄중히 항의하고, 필요하면 법적 조치와 낙선운동도 벌일 수 있다"고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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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좌경 선동가가 서울교육을 장악하는 걸 그냥 볼 수 없다. 곽노현 후보는 1994년 '미국 회사법학과 한국 회사법학의 비교'라는 논문을 계기로 현실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체사상파와 밀접히 결합했다. 이 논문 이후 그는 대한민국의 질서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어젠다를 선점하고 이를 이슈로 만들어내는 '투쟁 이론의 지도자'가 됐다."

보수우익 진영의 서울시교육감 후보 단일화를 추진했던 '바른교육국민연합(바교련)'은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대한민국 질서를 타격하는 투쟁 이론의 지도자? 처음 듣는 '뉴스'였다.

바교련은 그 근거로 곽 후보가 쓴 논문의 몇몇 구절을 뚝 끊어서 제시했다. 그중 하나는 아래와 같다.

"한국 법학의 자주적 선진화... 법학의 탈종속 자주와... 주체적 문제의식... 자주화 시도."

내용을 갖춘 하나의 문단도, 말이 되는 문장도 아니다. 그저 몇 개의 단어를 열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바교련은 이런 해석을 덧붙였다.

"이제까지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용어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의 용어로 바뀌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 있음."

거세지는 보수우익의 색깔 공세... 곽노현 후보가 투쟁 이론 지도자?

아마도 바교련은 '탈종속'이란 단어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용어로, '주체적' '자주화'라는 단어는 김일성 주체사상의 용어로 연결 지은 듯하다. 바교련엔 유감스런 일이지만, 솔직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긴 논문에서 어휘 몇 개를 끄집어내 사상·이념 공세를 펼치는 게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런 바교련의 예에서 불 수 있는 것처럼 최근 보수우익은 교육감선거를 앞두고 색깔 공세를 강하게 펼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좌빨' 논란이 교육감 선거에서 차고 넘치고 있다.

서울에서 곽노현 후보가 단어 몇 개 사용만으로 "투쟁 이론의 지도자"가 됐다면, 경기도에서는 김상곤 후보가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하나로 '빨갱이'로 매도되고 있다.

최근 경기도민들에게는 김 후보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이메일에 실려 무차별 살포되고 있다. 보수우익 인터넷 매체 <뉴데일리>가 지난 8일 '김상곤 교육감 민중의례 영상 충격'이란 제목으로 보도한 이후부터다.

이 동영상은 2004년 12월 28일 사이버노동대학 2기 졸업식 모습을 담은 것이다. 사이버노동대학 총장을 지낸 김 후보는 이 졸업식에서 민중의례를 했다. 경기도교육감으로 당선된 2009년보다 훨씬 이전에 민중의례를 한 '교수 김상곤'이 보수우익의 눈에는 불편하게 보였나보다.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보수우익 강원춘(왼쪽)·정진곤(가운데)·문종철(오른쪽) 후보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단일화에 대한 기본 견해를 밝혔다(자료 사진).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보수우익 강원춘(왼쪽)·정진곤(가운데)·문종철(오른쪽) 후보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단일화에 대한 기본 견해를 밝혔다(자료 사진).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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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동영상 이전에도 무상급식을 주장한 김 후보는 늘 '좌빨' 공격을 받았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무상급식은 북한식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김 후보를 공격한 게 대표적이다.

또 김진춘 전 경기도교육감 등 보수우익 인사들은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전교조와 좌파 세력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김상곤 교육감은 반헌법적이고 비교육적인 행태로 경기교육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며 "교육이 좌파 정치의 선전선동의 장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주장을 하면 좌파 아닌가? 보편적 복지는 좌파 논리다"며 "김상곤 후보는 사이버 노동대학 총장도 했는데, 그럼 노동판으로 가야지!"라는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른 김상곤 후보, '좌빨'로 매도돼

보수우익 진영의 교육감 후보들도 앞 다퉈 좌파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원희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12일 바교련과 공동으로 연 기자회견에서 "좌파에게 교육감 자리를 내어 주면 대한민국의 뿌리가 흔들린다"고 주장했다.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나선 강원춘·정진곤 후보 등도 "좌파 김상곤이 진보교육감끼리 연대해서 정권 타도를 획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단어 몇 개와 노래 한 곡 등으로 '좌빨' 공세를 펼치는 보수우익에게 아래의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 이 사진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노동자들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2007년 11월 24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한국노총이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주최한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했다.

2007년 11월 24일 오후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이인제 민주당 후보가 이용득 위원장과 함께 민중가요에 맞춰 팔을 흔들고 있다.
 2007년 11월 24일 오후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이인제 민주당 후보가 이용득 위원장과 함께 민중가요에 맞춰 팔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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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명박 대통령은 민중의례에 참석했다. 그리고 사진이 보여주듯 '임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팔을 올렸다 내렸다. 이밖에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로 '민중의례 2MB'를 넣어 검색하면 이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 동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사진과 동영상을 근거로 이 대통령을 '좌빨'로 몰아갈 수 있을까? 이게 가능하다면 이 대통령은 무척 억울해 할 것 같다. 마찬가지로 '탈종속', '자주화'라는 단어를 쓰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고 '좌빨'이 되는 건 아니다. 그건 보수우익, 진보개혁 두 진영에 모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서울시교육청의 교육지표는 "실력과 인성을 갖춘 창의적 인재 육성"이다. 경기도교육청의 교육지표는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 육성"이다.

하지만 교육감이 되겠다는 보수우익 쪽의 철지난 억지 색깔 공세에서는 실력이나 창의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더불어 살아가려는 인간적 배려도 느낄 수 없다. 교육감 선거가 교육적으로 진행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태그:#교육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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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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