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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8일 오전 중앙대학교 학생 2명이 한강대교 남단 첫번째 아치에 올라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1시간 가량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지난 4월 8일 오전 중앙대학교 학생 2명이 한강대교 남단 첫번째 아치에 올라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1시간 가량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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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때 철학과에 재학 중이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왜 철학과에 갔어요?'라고 물었지요. 나는 시간이 흘러도 그 질문에 익숙해지지 못했답니다. 고백하건대 질문을 들을 때마다 참으로 당혹스러웠어요. 고 1때부터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했던 나는 '왜 철학과냐'는 사람들의 물음이 오히려 신기했어요.

그러나 학교에 들어와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이유로 철학과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철학과의 과방은 두 부류의 학생들로 나뉘었어요. 복수전공자와 철학 전공자. 경영, 경제를 복수 전공하는 선배들은 철학'만' 전공하는 학생들을 걱정해 주었죠. 종종 '졸업 후 진로 생각을 않는 속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나는 후자에 속했습니다.

철학과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철학과 안에서조차 이런데 철학과 밖이야 오죽할까. 내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 우리 학교도 많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중앙대보다 앞서 학제개편을 진행했었죠. 문과대 차원에서 거센 항의를 했으나 결국 독문과는 2010년부터 신입생을 뽑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폐과가 되었습니다.

최근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중앙대도 구조조정 합의를 끝내고 내년 1학기부터 18개 단과대학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학 46개 학과로 통폐합하기로 했다는군요. 역시나 인문대학, 사회대학, 예술대학의 규모가 줄고 자연과학과 경영경제대학은 소속학부와 학과가 는다고 합니다. 이에 중앙대는 "백화점식 교육단위를 가지고 선택과 집중을 통한 교육 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에 학문단위로 재조정을 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살벌한 구조조정 속에서 철학과는 간신히 살아 남았습니다. 그러나 철학과는 언제나 구조조정 대상 1순위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공대생들은 취업이 힘들다고 토로할 때 문과생은 과가 없어진다는 고민을 하지요. 네, 철학과는 한 마디로 돈이 안 되는 학과예요.

게다가 철학과 학생들은 돈에 큰 욕심이 없어요. 취업하려는 학생과 대학원에 가고 싶어 하는 학생 수가 아마 같을 거예요. 철학이라는 학문이 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죠. 더욱이 철학과 학생들은 토익 대신 도스토예프스키와 데카르트를 탐독하고 인턴 대신 <예술철학회>나 <논어읽기> 활동을 합니다. 그러니 '돈'을 향한 욕망이 요즘처럼 강한 세상에서 철학과는 이단인 셈입니다.

그런데 철학, 사학과 같은 인문학이 돈을 낭비하는 학과일까요? 인문학 대신 돈 되는 과에 투자하면 정말 대학은 더 발전할 수 있을까요? 나는 자신있게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대학과 사회가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반드시 '철학'이 필요해요.

사실 우리는 계속 '철학'을 해왔지요. 무슨 말이냐구요? 우리는 얼마 전까지 '집시법과 관련해 집회가 정말 불법인가?'라고 물었죠. 최근에는 '아이들의 두발규제는 인권을 침해하는가'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이 질문들은 모두 '공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철학적 고민이에요.

좀 더 고리타분한 철학을 꺼내보라고요? 그럼 '자유의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봐요. '안락사는 허락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건가요? 우리는 지금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사회문제와 연결시켜 생각한 거예요. 이런 질문들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나요? 돈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구요? 네, 돈 버는 질문은 아닙니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질문들입니다.

가야할 길을 두고 돈만 보고 가는 우리들

<철학-더 나은 삶을 위한 사유의 기술> 책 제목처럼 '철학'은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는 학문이 아니라 생각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철학과 학생들은 '철학함'을 배운다고 말한다.
 <철학-더 나은 삶을 위한 사유의 기술> 책 제목처럼 '철학'은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는 학문이 아니라 생각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철학과 학생들은 '철학함'을 배운다고 말한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것인지 어떤 '비전'을 가지고 가야할 것인지는 모두 '철학'의 문제랍니다. 100조 매출, 10조 영업이익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에 대한 '철학'이 없다면 말 그대로 많은 사회문제들로 씨름하게 될 거예요. 아니, 벌써 철학의 부재로 씨름 중입니다.

현재 우리는 '복지'와 '교육' '의료'를 경제, 효용성 문제로 환원시키려 합니다. 복지는 항상 예산 부족으로 뒷전입니다. 혹은 경제 발전에 방해되는 부분으로 취급받지요. 교육은 또 어떤가요?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나요?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경제적 논쟁이 언제나 1순위입니다. 대학 진학률을 높이는 것이 그 다음 문제인데 이건 '교육'과는 거리가 먼 고민이지요. 경제적 주체로 성장하는데 가장 적합한 경쟁형 인간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교육입니다. 의료부분이라고 다를 건 없습니다. 민영화가 되면 경제효과가 수천억에 이른다는 기사들이 이미 나왔습니다. 의료보험 제도가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 미국마저 의료 민영화에서 벗어나는데 우리는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어요.

이 쟁점들은 '철학적 고민'이 필요한 문제들입니다. '인간', '삶'에 대한 문제지만 우리는 그저 경제적 효용성만 따지려 하지요. 이게 다 '철학의 부재'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중앙대 문제가 가볍게 보이지 않아요. 한국사회에서 유일하게 '철학', '비전'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곳은 대학, 그 중에서도 인문학부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없애겠다고 합니다. 중앙대생의 저항은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마땅히 가야할 길을 버려두고 그저 돈만 보고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중앙대 학생들은 못 박히는 대신 삭발을 하고 퇴학을 당하며 우리에게 묻습니다. "Quo Vadis, Corea(한국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태그:#철학, #중앙대, #인문학부,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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