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금 중앙대 학생들은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학교 측의 일방적인 학과 구조조정 강행으로 불거진 '학내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 맞서, 한강대교에 오르고 정문 쪽 공사장 타워크레인에 올라 저항의 외침을 부르짖었던 학생들.

 

그 중 한 명은 교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단 이유 등으로 퇴학처분을 받았고, 고공시위를 벌인 학생은 징계에 더해 '공사 지연'을 이유로 2500여 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 받을 것이란 말이 들린다. 기업이 노동자들의 점거 농성에 대해 '손해배상 가압류' 수법을 들이대는 상황은 봤어도, 교육기관이라는 대학이 학생에게 앞뒤 볼 것 없이 '돈'부터 물리고 보겠단 발상. 뭐든지 '손익' 관점에서 따지고 드는 참으로 매정한 세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중앙대 학생들은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각종 언론에서는 지금 상황을 '학교본부와 학생들의 갈등과 내홍'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실상 싸움에 임하고 있는 학생들은 같은 학교 학우들의 무관심과 냉소, 심지어는 사실관계마저 불명확한 악의적인 비난(그들 행동이 '운동권 스펙 쌓기', 예컨대 민주노동당 공천 받기 위한 것이란 식의 저열한 내용들)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의 대부분은 "학교망신", "배후를 조져야한다", 심지어는 "탈레반"이란 비난 글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다. 이 대학 학보인 <중대신문>도 비난에 가세해 "돌출행동은 자충수를 둔 꼴"이라며 그들 행동을 폄하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중앙대를 졸업한 <한겨레> 허재현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저항하는 학생들을 외면해버리거나 혹은 뒤에서 비난하기 바쁜 학생들을 보면 또 조금 슬퍼집니다. 어쩌면 이 학교의 절망은 고공농성이 아니라, 시장의 노예를 자처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대학에 맞서지 못하는 죽어버린 학생들의 심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이 우리 학생들의 심장을 멎게 한 걸까요"란 말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우리 대학의 창피스런 현실에 맞선 중대생들

 

중앙대 학생들은 학교와 재단을 상대로 싸움을 벌여가고 있지만, 이는 일개 대학에 국한한 문제제기는 아닐 것이다. 최근 중앙대의 행보, 즉 총장직선제 폐지, 학내언론(교지) 예산 전액삭감, 일방적 구조조정 등으로 대변되는 학내 민주주의 붕괴, 그리고 인문대 축소·경영대 팽창 움직임, 등급을 매기는 교수평가제, 회계학 교양필수 지정 등으로 나타난 대학의 기업화 모습에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시각을 보이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의 이러한 변화가 과연 중앙대에만 국한한 것들일까? '투박한' 두산재단의 학교경영으로 인해, '대학의 기업부속화' 모습이 중대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측면이 있지만, 대학이 기업의 직속직업훈련기관처럼 변모한 현상은 우리 대학들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공동의 부끄러움이다. 이 창피스런 현실에 맞선 게 최근 중대생들의 외침이다.

 

우리의 젊은 친구들이 올라다보기에도 오싹한 30m 높이의 고공타워 위에 오르는 돌출행위를 한 건, 이 행동 하나로 대학의 기업화를 막고, 일방적 구조조정을 철회시킬 수 있다고 판단할 만큼 어리석어서가 아니었을 게다. 이미 장사꾼이 다 돼버린 대학에서, 무조건 손익계산으로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할 수도, 눈에 거슬리면 아예 퇴학을 시켜버릴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아서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처절한 투쟁에 부응해 학내외의 대학생들과 교수, 그리고 일반 대중들이 '기업화된 대학·자본화된 사회'에 맞서 '자각이 행동으로' 간단히 옮겨질 수도 있을 거란 안일한 상황인식을 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비단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기에

        

하지만 철저히 '기업맞춤형 인재'로 거듭날 것만을 강요하는 대학과 이를 가속화하는 구조조정에 직면한 상황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 친구들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꼭두새벽부터 혈혈단신으로 그 아찔한 고공타워에 올랐던 한 젊은이의 가슴 속은 절망만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김예슬씨가 붙인 대자보 하나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만큼 '대학의 무차별적 자본화'에 대한 사회적인 회의감이 형성돼가는 상황에서, 그들 몸부림은 이런 변화의 움직임이 여기서 맥없이 찢겨나가지 않게 하려는 대학과 사회를 향한 경종의 울림이었다.

 

중앙대생들은 오늘도 외롭게 싸움을 벌여나가고 있지만, 이는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영화 '배틀로얄'과 같은 잔혹한 입시경쟁에 내몰리고 있지만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청소년들, 배움과 진리를 꿈꾸고 추구하기에 앞서 현실에 대한 냉소와 좌절만을 깨달아야만 하는 젊은이들, 어렵사리 취업을 해도 여전히 무한경쟁의 시계는 계속 돌아가는 현실에서 숨 돌릴 틈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갈 수밖에 없는 기성세대들 모두 극단적으로 치달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시장경쟁력' 키우기를 최우선적으로 강요받으며 사는 이 시대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자발적인 '상품화'를 뿌리치고 인간의 영혼이 요구하는 '자존'을 지키겠다고 나선 중앙대 학생들의 싸움에 관심과 연대를 보내야 하는 이유다.


태그:#중앙대, #구조조정, #대학, #대학생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