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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첫날이자 노동자의 날이라고 하는 토요일, 모처럼 화창한 봄 날씨였습니다. 농민들은 농사 준비에 여념이 없을 테지만, 도시 노동자들에게는 모처럼 맞이하는 휴일인 것이지요. 날씨까지 화창했으니 올해 노동자들은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리라 짐작이 갑니다.

그런 봄날에 늦잠을 잔 나도 도심 속에 휴식처 삼아 만들어 둔 공원을 산책하러 나갔습니다. 오랜만에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지요. 언제나 무거운 쇠에 실려 다니는 이내 몸을 움직여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진주 시내를 가로지르는 남강을 따라 걸었습니다.

진주시를 흐르는 남강입니다. 자연의 강이 아닌 인공의 강이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진주시에 왔을때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요즘은 거의 없지요.
진주시 상평동에 사신다는 올해 일흔둘이신 할아버지입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고개까지 돌려 주셨습니다.
 진주시를 흐르는 남강입니다. 자연의 강이 아닌 인공의 강이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진주시에 왔을때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요즘은 거의 없지요. 진주시 상평동에 사신다는 올해 일흔둘이신 할아버지입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고개까지 돌려 주셨습니다.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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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역시 10여 년 전에 수중보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진주환경운동연합 등에서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하천의 가장자리를 모두 정비하였습니다. 도시 가운데 원시림 같은 숲이 있었는데, 정비를 한다는 명목으로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남아 있습니다. 남아 있는 곳에 보안등과 기타 조명등을 설치하고, 산책로도 만들었지요. 마치 어느부잣집의 정원마냥 만들어 두었지요. 그래서 연인들이 데이트 하기엔 딱 좋습니다.

하늘 한 번 올려다 보고, 흐르는 강물 한 번 쳐다보며 아무 생각없이 걸었습니다. 한 시간쯤이나 걸었을까요. '이제는 돌아가야지'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낚시를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보았습니다. 얼핏 봐서도 혼자 오신 것은 맞는데, 한참을 봐도 고기를 잡은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괜스레 할아버지 인생 얘기나 들어 보자고 곁으로 다가 갔습니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조용히 있고 싶었는데, 제가 와서 더 귀찮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원래 낚시에는 관심이 별로인 저는 낚시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하지만 더 모른체 하며 낚시 설명부터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조금씩 흥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건 붕어를 잡는 낚시고, 저건 눈치를 잡는 거고..."

낚시 이야기를 듣다가 은근히 궁금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조심스레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엉뚱한 대답만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은근히 기분 나빠 하시나 하며 인사를 하고 가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는 제 모습에 눈치를 챘는지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내가 젊어서 쐬 뚜디리는 공장에 이섰는디, 그때 한쪽 기가 나갔어. 그래서 먼 말인지 잘 안 들리"

그러시며 쇠 두드리는 자세를 잡고 두 손으로 흉내까지 내어 보이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삶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68년도부터 타일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할아버지가 담당한 일은 타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일 만드는 기계를 만지는 것이었다. 그때 쇠소리가 너무 시끄러 한쪽 귀가 나갔다. 지금은 일을 그만두고 할머니랑 둘이 산다. 자식은 1남 2녀인데, 다들 서울 산다. 월 40 여만원씩 받는 연금과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생활한다. 그리고 가끔씩 자전거를 타고 이렇게 낚시를 나온다. 집이 있고, 자식들 착하니 이렇게 사는게 좋다.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뒤 몰래 찍었습니다.
강물도 많고, 하늘도 맑지만 바람이 불어 낚시하기엔 좋지 않은 날씨라고 하네요.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뒤 몰래 찍었습니다. 강물도 많고, 하늘도 맑지만 바람이 불어 낚시하기엔 좋지 않은 날씨라고 하네요.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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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은근히 4대강 이야기를 꺼내어 보았습니다. 낚시를 하시니 강에 대하여 관심이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랬더니 할아버지 말씀이 참 오묘합니다.

"강? 그거 개발은 해야 허는디,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야. 그기 참 낭패지"
"할아버지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에이 내는 그런거 몰라. 그냥 신경 안 쓰고 사는기 편치. 왜 그런걸 신경써?"

4대강은 더 묻지도 못하게 하시며, 신경쓰지 마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4대강에 설치하는 수중보가 생각나 남강에 있는 수중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할아버지, 그럼 저기 있는 수중보는 어찌 생각하세요? 저것 때문에 강바닥이 많이 더러워져서 고기가 많이 없을 것 같은데요."
"그건 잘 모르것고, 외래종 물고기가 문제야. 외래종 때문에 붕어가 없어. 저거(수중보) 때문인지는 몰라도 물이 고이 있는디는 붕어가 없어. 전에는 많았는디"

그렇게 한 시간여를 앉아 있었지만 낚싯대는 전혀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앉아 계셨고요. 제가 오기 전에도 한 시간이 넘게 앉아 계셨던 할아버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간을 낚고 계셨습니다.

"그래도 전에는 팔뚝만헌 잉어가 잡힐때도 있었어."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려고 하자 제게 한마디 더 하십니다. 할아버지가 말 하시는 팔뚝만한 잉어가 잡히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태그:#세월, #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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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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