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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를 한 지 십년이 지났습니다. 낡은 고향집에서 시작한 시골살이는 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진돗개 한 마리와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봄부터 마당에 닭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닭이 알을 낳고, 달걀로 반찬을 만들어 먹는 것에 즐거움을 느낄 무렵 닭에게 주는 주인의 사랑을 시샘한 것인지 개가 닭을 물어 죽였습니다.

집에서 정을 주고 키운 죽은 닭들은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밭 한쪽에 묻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위로했습니다.

"개는 애완용이지만 닭은 가축으로 키우는 것이기에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그리고 다음해 봄에 다시 시장에서 병아리를 사 왔습니다. 좁은 집에서 개와 닭과 살다가 집을 짓고 넓은 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개집도 그럴듯하게 지었고, 닭장도 지었습니다. 키우는 닭도 늘었습니다. 알도 많이 낳아 주어서 나눠 먹을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집 개가 문제였습니다. 발정난 개이거나 유기견들이 놀이터인양 가끔 오더니 어느 날 닭장으로 침입하였습니다. 스무 마리의 닭을 사냥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면사무소와 파출소 등에 개를 잡아달라고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해결책이 없었습니다. 닭장을 튼튼히 하는 것이 유일한 대비책일 뿐이었습니다. 

평화로운 닭장에서 탈출하는 닭
 
닭장에서 나와 마당에서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닭들의 모습
▲ 마당에서 즐기는 닭들 닭장에서 나와 마당에서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닭들의 모습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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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은 닭들에게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닭장에만 갇혀 지내는 닭들에게 두세 시간씩 문을 열어 주기도 합니다. 마당과 풀밭으로 가서 신나게 풀을 뜯고, 개구리나 지렁이 등을 잡아 먹습니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잠을 자러 닭장으로 들어갑니다. 잠을 자는 닭장에 문을 닫아주고 다시 아침이 되면 먹이를 주고 문을 열어 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문을 열어 주지도 않았는데, 마당에서 놀고 있는 닭이 보였습니다. 다시 닭장으로 쫓아 넣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반복했습니다. 울타리를 어떻게 뚫고 나왔는지 아무리 둘러 봐도 나올 틈이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풀밭 쪽 울타리를 살피는데, 풀속에 닭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갓 부화하여 태어난 병아리 두 마리가 어미 앞에서 세상 구경을 하고 있다.
▲ 갓 태어난 병아리 갓 부화하여 태어난 병아리 두 마리가 어미 앞에서 세상 구경을 하고 있다.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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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보니 날마다 마당을 나오던 그 암탉이었습니다. 몰래 집 밖으로 나와서 알을 낳고, 알이 모이자 품고 있었습니다. 닭장 안에 낳은 알들은 주인이 가져가는 것을 보고 알을 뺏기지 않으려고 닭장 밖에서 알을 낳았나 봅니다.

햇살은 뜨겁고 비도 내리는데 알을 품고 있는 닭이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알을 품고 있는 닭도 먹이를 먹고 물도 마셔야 합니다. 섣불리 움직이다가 개나 산짐승에게 들킬 수도 있습니다.

사나흘에 한 번씩 물과 먹이를 닭 앞에 두었습니다. 비를 맞지 않고, 햇살을 피할 수 있게 우산을 씌워 주었습니다. 닭은 꼼짝도 하지 않고 알을 품은 채 먹이와 물을 먹었습니다.

3주 만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렇게 3주 가량이 지났습니다. 예전에도 닭들이 닭장 안에서 알을 품는다고 많이 시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또 실패하는가 해서 은근히 걱정도 되고, 조바심이 나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물과 먹이를 주러 갔더니 노랗고 조그만 병아리 한 마리가 어미 곁에 있었습니다. 드디어 병아리가 태어난 것입니다. 신이 났습니다. 아내에게 병아리가 태어났다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제 어미닭이 된 암탉은 아직도 부화시킬 알이 있다고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 병아리가 놀라지 않게 슬며시 먹이를 두고 나왔습니다.

다음날 닭에게 갔더니 병아리가 두 마리가 되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신이 났습니다. 어미닭은 아직도 부화시킬 알이 있는지 움직이질 않습니다. 20일이 넘게 꼼짝 않고 앉아 있었는데, 병아리를 보니 반가울 만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미닭에게는 남은 알도 소중했겠지요.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조금 뒤에 갔더니 두 마리의 병아리를 데리고 둥지를 떠났습니다. 부화되지 못한 알과 껍질만이 빈 둥지에 남아 있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임시 닭장에서 어미닭과 함께 있는 모습.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놀라는 모습
▲ 어린 병아리 나무로 만든 임시 닭장에서 어미닭과 함께 있는 모습.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놀라는 모습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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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닭과 병아리를 잡아서 나무로 만든 임시 닭장에 넣었습니다. 병아리 때문에 어미닭은 도망도 가지 않았습니다. 병아리를 데리고 마당을 돌아다니며 놀게 하고 싶은데, 고양이 때문에 못합니다. 어린 병아리는 고양이의 좋은 먹잇감입니다.

나무로 만든 임시 닭장에서 어미닭은 병아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먹이를 주면 '구구' 소리를 냅니다. 그 소리를 듣고 병아리가 달려옵니다. 잠을 잘 때는 두 날개를 움츠려서 작은 공간을 만듭니다. 그러면 병아리가 날개 속으로 들어갑니다. 위기가 닥쳐도 이렇게 합니다. 어미는 털을 곧게 세우고, 새끼들은 어미의 날개 속으로 숨습니다.

병아리가 태어난 지 2주 가량 되었습니다. 몸이 큰 어미닭이 작은 곳에서 살기가 좁습니다. 어미와 헤어져서 살아야 할 날이 점점 다가옵니다.

태그:#병아리, #자연부화, #어미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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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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