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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천연보호구역,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성산일출봉 응회구 등 3곳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 상징마크가 훈장처럼 빛나고 있다.
▲ 세계자연유산 제주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성산일출봉 응회구 등 3곳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 상징마크가 훈장처럼 빛나고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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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제주방언으로 '오름'이라고 부르는 360여 개의 화산체 등 신비한 자연 지형을 비롯해 오직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구상나무와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제주풍뎅이 등 희귀한 동식물의 서식처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성산일출봉 응회구' 등 3곳은 지난 2007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첫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지정되며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에 의해 용암동굴들이 생성됐다는 건 거짓말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정말 세계유산다운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지난 3월 28일부터 31일까지 3박 4일간 제주도를 둘러 본 결과, 만장굴의 일부 구간과 성산일출봉을 제외하고는 한라산 백록담이나 여러 동굴들은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왜 제주도는 세계유산의 모습을 온전하게 보여주지 않을까. 그만큼 자연보존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일까.

제주지질연구소 강순석 소장.
 제주지질연구소 강순석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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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을 지정하는 목적은 세계적으로 똑같이, 보편적인 방법으로 유산을 보전, 관리하는 데 있어요. 관광을 위해서는 아니지만 하롱베이(베트남)처럼 세계유산에 지정되면 관광객이 느는 건 공통적인 현상이에요. 전 세계에서 보지 못하는 세계유산은 없어요. 왜 용암동굴들을 비공개합니까? 한라산도. 자물쇠가 채워진 문만 보고 가라고요? 해외의 경우, 불빛도 없는 깜깜한 동굴을 탐방객이 손전등을 들고 탐사하듯 둘러보기도 합니다. 보전과 안전이 우선이지만 세계유산은 공개해야죠."

제주 답사 일정의 마지막 날, 제주시내 한 카페에서 만난 제주지질연구소 강순석 소장은 세계유산의 본질적인 가치를 강조했다. 강 소장은 제주 전역에 걸쳐 있는 368개의 오름과 비공개 용암동굴들을 두루 둘러본 경험과 해외의 여러 세계유산들을 직접 접했던 경험을 토대로 세계유산으로서 제주도가 지닌 문제를 속속들이 파헤쳤다.

강순석 소장
1963년 제주 출생. 제주대학교에서 해양학을 공부한 뒤, 일본 국립미가타대학교에서 지질학 전공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네스코 제주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제주교육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사단법인 제주지질연구소 소장과 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거문오름 같은 기생화산체는 단성화산(單成火山)으로서 한 번의 폭발로 길어야 몇 십 년 에 걸쳐 만들어집니다. 거문오름에서 나온 용암은 하류로 약 7km를 흘러 선흘 곶자왈 지대를 형성했어요. 용암동굴들은 이 선흘 곶자왈이 만들어지기 전에 존재하던 것으로 거문오름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요. 그런데 20만 년 동안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에 의해 만장굴을 비롯한 용암동굴들이 차례로 생성됐다고요? 도대체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지요."

강 소장은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로 묶여 세계유산에 등재된 '거문오름'과 '벵뒤굴·만장굴·김녕굴·용천동굴·당처물동굴' 등의 생성시기와 관련해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지질학을 전공한 학자의 양심을 걸고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세계유산 지정 내용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것이다.

현재 제주도청은 '세계자연유산 제주' 홈페이지에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동굴계는 해발 456m의 작은 화산인 거문오름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분출된 다량의 현무암질 용암류(熔岩流, lava flow)가 지표를 따라 북동 방향으로 약 13㎞ 떨어진 해안까지 흘러가는 동안 형성된 일련의 용암동굴들의 무리를 말하며, 형성 시기는 약 30만 년 전에서 10만 년 전 사이인 것으로 판단된다."

만장굴 매표소에 붙어 있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안내판. 만장굴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공개 동굴들이다.
 만장굴 매표소에 붙어 있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안내판. 만장굴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공개 동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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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에 화산지질학과가 없는 게 말이 됩니까?"

강 소장은 제주토박이로서 제주도에 대한 애증이 넘쳐나는 듯 거침없는 비판을 이어갔다. 그의 비판은 세계유산은 물론이고 정치와 학문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국립제주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척박한 땅에서 뒹굴어 다니던 현무암 돌멩이가 우리나라를 대표해 세계자연유산이 된 것 아니에요. 결국 화산지질학이잖아요. 그런데 제주대에는 과도 없고 강좌도 없고 교수도 없어요. 제주대가 서울대보다 물리학과 수학을 잘 할 수 있어요? 포항공대보다? 지역특성화가 뭡니까. 해양, 감귤, 관광… 세계유산 같은 화산지질학을 해야지. 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대학을 다녀도 세계유산이 뭔지 강의 못 받습니다. 말이 안 되는 거죠."

강 소장은 제주도가 세계유산에 등재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전했다. 화산섬이라는 독특한 지형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계유산을 추진한 탓이었다. 실제 제주도는 2000년부터 등재를 준비하며 제주도의 가치를 해외의 세계유산들과 비교,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2003년에 1억 원, 2005년에 2억 원의 예산을 이중으로 편성하는 등 혼선을 빚기도 했다.

"제주도가 세계유산에 등재되기 전에는 '지질'과 '화산'이 홀대받았어요. 2003년의 학술용역도 식물학, 자연경관, 민속학 등의 관점에서 이뤄졌어요. 그런데 세계자연유산인 미국의 하와이(1987년 등재)와 일본의 야쿠시마(1993년 등재) 등을 조사해 보니까 한라산의 식물다양성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와 포기해 버립니다. 이후 연구책임자가 동굴학 전문가로 교체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뒤 화산섬과 용암동굴로 다시 등재를 추진한 겁니다."

'물장오리 오름'은 제주의 창조신인 ‘설문대 할망’이 자신의 큰 키를 자랑하며 재 보다가 빠져죽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제주도 곳곳에는 이 같은 오름이 무려 360여 개가 존재한다.
 '물장오리 오름'은 제주의 창조신인 ‘설문대 할망’이 자신의 큰 키를 자랑하며 재 보다가 빠져죽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제주도 곳곳에는 이 같은 오름이 무려 360여 개가 존재한다.
ⓒ 강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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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유산 제주도'는 도지사의 정국 타개 위한 결과물?

어떤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정식으로 등재하기 위해서는 최소 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매년 2월 1일까지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 신청을 한 뒤, 향후 1년여간 잠정목록에 올린 유산에 대한 보고서의 수정, 보완과 유네스코 실사단의 현지 시찰 등을 거쳐야 세계유산 등재여부가 결정 나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2006년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린 뒤 2007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정식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제주도에게 2006년은 내외적으로 이래저래 중요한 시기였다.

"2006년 6월이었죠.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2년 전 보궐 선거에 이어 당선된 김태환 도지사가 선거법 위반으로 매일 언론에 오르내렸어요. 대법원까지 가서 결국 지사가 이기긴 했지만. 그 때 도지사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세계유산에 '올인'합니다. 문화재과에는 세계유산 일만 하라고 지시하고, 언론사 등을 동원해서는 세계유산 등재 100만명 서명운동을 벌였어요. 무슨 구명운동도 아니고. 지금이야 세계유산이 돼 좋은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 내막은 그랬어요."

제주도는 국가 간 협약에 의해 지정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자 유네스코가 진행하는 하나의 프로그램인 '생물권보전구역'이라는 명예로운 이름표를 달고 있다. 이에 더해 오는 10월경에는 역시 유네스코 프로그램인 '세계지질공원'으로도 지정될 전망이다. 여러 가지로 경사가 많아 보이는 제주도다. 하지만 강 소장의 비판은 계속 이어졌다.

"제주도청은 '세계유산본부'를 만들어 세계유산을 관리하고 있어요. 수십 년간 잘 지켜온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를 다른 곳과는 달리 본부에서 흡수해 버렸어요. 문화재를 보호하고 관리하려면 예산과 제도가 갖춰져야 하는데, 제대로 되겠어요? 수백 억원을 들여 한라산 자락에 건립하려는 '세계유산센터'도 마찬가지예요. 관 위주로 끌고 가는 건 문제가 많아요."

'당처물동굴'의 석회질 2차 생성물인 종유석. 안타깝게도 이러한 장관은 사진으로만 만날 수 있다.
 '당처물동굴'의 석회질 2차 생성물인 종유석. 안타깝게도 이러한 장관은 사진으로만 만날 수 있다.
ⓒ 강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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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케이블카? 새로운 도지사는 세계유산 개념부터 정리해야

강 소장은 인터뷰 내내 다소 심하다 싶을 정도의 비판으로 일관했다. 또한 그는 인터뷰를 위해 만나자 마자 "제주도를 일찍 떠났어야 했는데 이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고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하기도 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에야 비로소 그의 진짜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일련의 비판에 담긴 의미가 '제주도를 정말 사랑하기에, 지역전문가로서 제주도를 위해 진짜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었음을.

"지금 도청에서는 수십 년간 논란이 됐던 '한라산 케이블카'를 들고 나와요. 실제로 '비양도'에는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있고요.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유네스코에서 바로 권고 사항이 내려옵니다. 지역전문가와 도민들을 배제하고 가자는 건데, 6월 2일 지방선거가 끝나면 이 책임은 누가 지나요? 이렇게라도 비판하고 언급하지 않으면 저 역시 역사의 죄인이 되는 거잖아요."

강 소장은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위해 최근 제주 지역 내 지질, 동·식물, 역사·문화, 경관, 수자원, 민속, 관광 등 분야별 전문가와 법조계 인사 등으로 구성된 '제주 세계지질공원연구회(회장 권범)'를 조직했다. 더 이상 제주도를 '관(官)'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민(民)'이 주도해 바로잡아가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다.

강 소장은 "제주도가 지질공원까지 추가하면,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자연지역으로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 3관왕)'을 달성하는 것"이라며 "제주도는 근본적으로 지질을 테마로 한 생태 관광을 추구하는 등 관광시스템에 일대 변화를 꾀해야 한다"며 이렇게 호소했다.

"신구범, 우근민, 김태환 등 역대 도지사 중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제주도는 '특별자치도'로서 중앙정부에서 2조 7천억원 정도 예산을 특별지원 받고 있어요. 도지사는 세계유산에 대한 개념부터 새롭게 정리해야 합니다. 새로운 도지사는 화산지질과 관광, 선사유적, 민속문화, 동식물 등을 묶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어떻게 도민에게 돌려줄 수 있는지 그런 걸 연구해야 합니다."

성처럼 생긴 산이라서 이름이 붙은 ‘성산일출봉’. 비록 일출은 못 봤지만, 사진 왼 쪽 조그맣게 떠오르는 달이 색다른 감흥을 일으켰다.
 성처럼 생긴 산이라서 이름이 붙은 ‘성산일출봉’. 비록 일출은 못 봤지만, 사진 왼 쪽 조그맣게 떠오르는 달이 색다른 감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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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개요

* 등재 대상 :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 등재 범위
  1.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2. 거문오름 용암동굴계(거문오름,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3. 성산일출봉 응회구

* 등재 사유
제주도는 수많은 측화산(기생화산)과 세계적인 규모의 용암동굴, 다양한 희귀생물 및 멸종위기종의 서식지가 분포하고 있어 지구의 화산 생성과정 연구와 생태계 연구의 중요한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의 아름다운 경관과 생물, 지질 등은 세계적인 자연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 등재 기준
세계자연유산 기준
Ⅶ. 최상의 자연현상이나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을 포함하여야 한다.
Ⅷ. 생명의 기록, 지형의 발달에 있어 중요한 지질학적 진행 과정 또는 지형학이나 자연지리학적 측면의 중요 특징을 포함하여 지구 역사상의 주요 단계를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이어야 한다.

* 등재 연도
2007년 06월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정(세계유산위원회 제31차 회의)


태그:#세계유산, #강순석, #세계자연유산 제주, #한라산, #성산일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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