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인천에 있는 인천대학교가 선인재단에서 송도로 옮겨갔습니다. 인천시장이 송도 새도시를 키우려는 꿈에 따라 인천 뭍에 있는 학교는 하나둘 새 보금자리를 찾아서 갑니다. 마치 지난 1990년대 첫머리에 인천 중·동구에 있던 인천여고와 축현초등학교와 대건고등학교와 박문초등학교가 연수동 쪽으로 옮긴 일하고 마찬가지라 하겠는데, 학교를 옮기면 학교가 새로 깃든 곳은 '여러모로 좋아진다'고 할 터이나 학교가 떠난 곳은 '여러모로 나빠진다'는 생각을 안 하는 노릇입니다.

인천대학교가 송도로 떠나고 건물만 덩그러니 남은 자리 둘레에 자라고 있던 우람한 벚나무를 파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 19일 인천대학교 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찾아갔습니다. 송도 새도시는 이제 막 갯벌을 메우고 아파트를 올려세운 곳이기 때문에 변변한 나무 하나 없습니다. 새로 나무를 심는다 한들 언제 자라나겠습니까. 나무 한 그루야 돈으로 치면 얼마 안 되고, 우람하게 자란 나무를 파내어 옮겨심자면 돈이 많이 들 텐데, 새로 꾸미려는 도시를 좀더 보기 좋게 하자면 돈이 얼마가 들어도 나무를 옮겨심도록 하겠지요.

선인재단에 깃든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쓰러진 벚나무 옆을 그저 지나갑니다.
 선인재단에 깃든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쓰러진 벚나무 옆을 그저 지나갑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인천대학교 둘레 벚나무는 모조리 파내고 있습니다.
 인천대학교 둘레 벚나무는 모조리 파내고 있습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궁금합니다. 옛 인천대학교 자리 둘레에 있는 가게와 하숙집들은 모조리 무너졌습니다. 겨우 가게문을 연 곳도 가까스로 버티지, 가게 살림을 꾸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터만 옮기는 데에 그치지 않고 대학교 둘레에 자라던 우람한 나무까지 파내어 송도로 옮긴다면? 이 동네, 인천대학교 둘레 도화2동과 도화3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터전은 어찌 되나요? 모두 송도로 옮겨가야 하는 판이니 이곳에서 작은 집 작은 살림을 꾸리는 이들 모두 아파트를 빚 내어 장만해서 다 함께 옮겨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한창 꽃을 피우며 어여쁜 빛깔을 자랑하려던 벚나무들이 모조리 드러눕습니다. 선인재단에 깃든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나무들 옆을 지나갑니다. 옮겨심더라도 하얀 꽃을 다 뽐낸 다음에야 옮기지, 이렇게 한창 꽃을 뽐내고 있을 때 뿌리를 캐내어 옮긴다니. 너무한다 싶습니다. 그러나 옮겨심으려는 사람들 눈으로 보자면, 이렇게 한창 꽃을 피우고 있을 때 얼른 옮겨심어야 송도 새도시를 한껏 빛내며 아름다이 내보일 수 있겠지요.

자, 그러면 또다시 궁금합니다. 우람한 벚나무가 어여쁘게 꽃피우던 동네에서 이들 벚나무를 모조리 파내어 송도로 옮기면, 벚나무를 송두리째 빼앗긴 동네는 어떻게 되지요?

한창 꽃을 뽐낼 나무들이 모두 쓰러져 있습니다.
 한창 꽃을 뽐낼 나무들이 모두 쓰러져 있습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쓰러진 벚나무와 학교 운동장 사이에는 꽤 널따랗게 텃밭이 있습니다. 누가 일구는 텃밭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천대학교 둘레로 골목사람들이 텃밭을 일구고 있으며, 이 텃밭 둘레로 학교에서 심은 벚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학교 건물 둘레로도 벚나무를 꽤 많이 심어서 오래도록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봄철이면, 서울에서는 경희대학교로 벚꽃 구경을 가듯, 인천에서는 선인재단이나 인천대 둘레로 벚꽃 마실을 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학교 건물 부지는 어떻게 쓸지 아직 결정이 되지 않았고, 쓰러진 벚나무 앞쪽으로는 'ㅅ'아파트 회사에서 재개발을 한다며 터닦이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파트가 이곳 텃밭 자리까지 들어설는지 어떠할는지 또한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벚나무 파낸 자리하고 텃밭 자리까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이 앞을 지나다니는 아이들 학교길은 다른 자리에 낼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뽑힌 벚나무가 쌓여있다.
 뽑힌 벚나무가 쌓여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벚나무가 뽑힌 자리가 휑하다.
 벚나무가 뽑힌 자리가 휑하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넓은 선인재단을 자전거로 가로지르며 도화3동 오목골 쪽으로 나옵니다. 오목골 조그마한 골목동네를 지나 송림4동 아파트숲 앞으로 나오기 앞서 막다른 골목으로 빠져나올 즈음, 이곳에 깃든 구멍가게 앞에 닿습니다. 그야말로 골목동네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구나 싶은 구멍가게 앞에는 열 남짓 되는 꽃그릇이 놓여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한 군데 꽃그릇에서 하얗고 작은 꽃을 뽐내고 있습니다. 참 작으면서 어여쁜 꽃이구나 싶어 자전거를 옆에 세우고 허리를 숙이며 들여다봅니다. 한창 들여다보노라니 배추흰나비 한 마리가 꽃잎을 붙잡고 앉은 모습이 보입니다.

날은 꾸물꾸물하고 동네 둘레는 온통 재개발 바람으로 어수선하며 시끄러운데, 이곳 막다른 골목 한켠 구멍가게 앞 꽃그릇 하얀 꽃잎에 앉은 배추흰나비는 더없이 고요합니다. 10분 가까이 나비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비는 가만히 꽃잎을 붙잡고 있습니다. 이동안 동네 아저씨 한 분이 구멍가게로 찾아들며 막걸리 네 병을 사들고 당신 골목집으로 돌아갑니다. 날은 구지레해도 봄은 봄이라고 새삼스레 느끼면서 자전거를 돌립니다. 집에서 나올 때에는 옆지기와 아이가 모두 잠들어 있었지만 이제 막 깨어났을지 모르겠구나 싶어 길을 재촉합니다. 부지런히 페달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골목동네 구멍가게 앞 배추흰나비
 골목동네 구멍가게 앞 배추흰나비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가벼이 지나치는 눈길로는 이 작은 구멍가게 앞 작은 꽃그릇 작은 나비 한 마리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가벼이 지나치는 눈길로는 이 작은 구멍가게 앞 작은 꽃그릇 작은 나비 한 마리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벚나무와 나비

( 1 / 11 )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태그:#골목길, #골목마실, #인천골목길, #인천대, #나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