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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근처에 위치한 필리핀은 미세한 계절변화가 있지만, 1년 내내 더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당신이 만약 이푸가오 지역을 방문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발 2천미터를 넘나들며 하루가 멀다하고 비를 뿌려대는 이 지역 구멍가게에는 주력상품으로 털모자를 판매할 정도이니, 상대적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제법 쌀쌀한 것은 사실이다.

이른 새벽 열두 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온 뒤, 산 속에 위치한 '바이니난' 마을까지 이동해 계단식 논에 모내기를 하고 온 참가자들은 자고 있었다.

"넌 일찍 일어날 줄 알았어!"

말론 씨가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는 모습.
 말론 씨가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는 모습.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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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푸가오 계단식 논 지키기 운동'의 젊은 운영위원장 '말론'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불을 두른 채 내 곁으로 다가왔다.

"장시간 이동하고, 모내기로 피곤해서 우리가 고민했던 것들이 혹 전달되지 않진 않을까? 그렇게 다른 곳에서 서봄으로써, 이푸가오 지역의 현실을 이해하고 이곳이 보존되기 위해서 현재를 즐기는 여행자들 역시 일종의 행동을 해야된다는, 우리의 고민을 참가자들은 이해했을까?"
"글쎄. 우리가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겠지만 당장 답을 구할 수는 없겠는데."

미국, 영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의 젊은이들과 함께 '생태관광'의 모델을 고민했던 말론 씨지만, 처음 여행을 해본 한국의 젊은이들의 반응을 그는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지난 밤 가진 평가에서, 각자 생각이 다르면서도 '공정여행'의 모습을 무조건 좋게만은 바라보지 않는 일부 비판적인 의견이 도출될 때 그는 짐짓 놀라는 모습을 했다.

'이번 여행에서도 우린 결국 가진 자의 입장에서 지역의 볼거리를 보며, 볼거리를 파괴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가진 자만이 떠날 수 있는 여행에서, 지역에 대해 고민을 하며 내가 쓰는 돈의 일부나마 그 지역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공정여행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좋은 의도를 가지고 여행을 한들, 내가 밟는 논둑길은 무너져간다. 그렇다면 이것은 공정한 것일까?' - 곽수현(영남대 특수교육학과) 참가자의 에세이 중 일부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다보니, '공정여행'에 대해 처음 말론씨와 이야기 나누던 것이 생각났다.

지구를 반바퀴나 돌 수 있는 계단식 논을 자랑하는 이푸가오 지역의 세계문화유산은 이미 30%가 파괴한 상태, 이것을 더 이상 지킬 원주민도 없고 몰려드는 관광객을 막을 재간도 없는 상태에서 젊은 청년 말론은 '생태관광'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사람이 견문을 넓히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 막을 수 없다면 그 행위에 책임을 지워주자!'는 생각 아래, 계단식 논 농사 일정과 이푸가오 족 전통 행사 일정을 조합하여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는 주민들을 설득했던 것이다.

'이제 계단식 논은 우리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찾아오는 여행자들도 어느새 그 가치를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들을 깨우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저 와서 눈요기만 하고 가면 모든 것은 송두리째 무너지고, 여기 사는 사람들 역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요'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그의 그런 의도가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는 사실은 시간이 흐를 수록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쓰라린 500여 년의 식민지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지는 히틀러와 나치의 오만이 무너진 베를린만일까.

'이푸가오 계단식 논 지키기 운동'이 위치한 '키안간' 역시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지 중 하나이다. 그것은 다른 나라의 입맛에 맞추어 국토가 유린당한 쓰린 기억이기도 하다. '이푸가오 계단식 논 지키기 운동'의 생태관광 프로그램 자원봉사 가이드를 하고 있는 '조나단' 씨는 그 이야기를 잠시 풀어놨다.

"이곳은 연일 패전을 거듭하던 일본군의 잔당들이 숨어들었었고, 미군은 이푸가오 족과 연합하여 그 잔당들을 쫒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은 '키안간'에서 마지막 몸부림을 치다가 잡히게 되지요. 이 때 일본군을 이끌고 있던 사람은 '말레야의 호랑이'라 불렸던 야마시타이고, 그를 끝까지 추격했던 사람은 미군의 맥아더였는데 그 둘은 악연이 있었습니다. 야마시타의 필리핀 공격 당시, 맥아더는 필리핀에서 엄청난 사상자를 낳고 도망가는 형국이었거든요. 결국 야마시타는 동경전범재판에 회부도 되지 못한 채 맥아더에게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일본이나 미국이나 필리핀을 그저 도구로 이용했다고 밖에 보이질 않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본은 그랬을지 몰라도, 미국은 우리와 연합한 상태였죠. 그들은 지형을 이용하여 강력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던 이푸가오 족을 포섭하려 든 것이었죠."

일본군의 사령관 야마시타가 잡힌 곳에 들어선 이푸가오 박물관의 모습.
 일본군의 사령관 야마시타가 잡힌 곳에 들어선 이푸가오 박물관의 모습.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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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하게 말하면 '스페인 - 미국 - 일본 - 미국'으로 이어지는 500여 년 간의 식민지 기간동안 이푸가오 지역이 점령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지역의 험한 지형과 넓게 퍼져 있는 마을의 특성상 점령이 어렵자 종교를 이용해 자연스레 이 지역에 들어온 뒤 때론 무력으로, 때론 연합이란 이름을 빌러 이들은 이용당하곤 한다.

그렇기에 키안간, 본톡, 바나우에 등 이푸가오 지역의 주요 거점에는 서구 열강의 선교사가 지은 교회 혹은 박물관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자부심은 그런 사실들을 허용하지 않고, 자신들은 점령당하지 않은 채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누구나 강조하고 있었다.

"아직도 일본 놈들이 와서 총을 들이민 채 밥을 달라고 재촉할 때가 생각나. 우리는 직접 벼를 빻은 뒤에 밥을 짓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그 때 밥하던 생각을 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려."

어느 덧 칠십이라는 나이를 훌쩍 넘긴 할머니는 옆에서 이렇게 말을 보탰다. 옆에서 말을 듣던 '조나'의 얼굴이 자못 심각해졌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선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조나가 사는 마을, 바세코의 모습
 조나가 사는 마을, 바세코의 모습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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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건진 모르겠는데, 제가 사는 빈민촌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정부에서 나와서 철거를 한다고 난리를 쳐요. 총칼은 들지 않았는데 커다란 불도저가 서 있죠. 우리 말을 들어볼 새도 없이 집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버리는데, 그땐 저도 가슴이 떨려요."

식민지가 끝났다는 필리핀에는 관광지에는 다국적 기업의 호텔과 편의시설이, 도심에는 외국인과 상위 1%만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아직도 가슴이 떨린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쓰라린 역사는 그 곳에서 대물림되는 현실들을 참가자들을 목격했던 것이다.

키안간에서 바타드로 이동하는 길.
 키안간에서 바타드로 이동하는 길.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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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서린 눈초리를 뒤로 할 수 밖에는...

공정여행을 진행하면서 빌리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필리핀 사람이 원래 이런건 아니야!"였다. 급속한 관광화로 사람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 상황을 만나면 어김없이 그는 내 곁에 다가와서 그 말을 되풀이했다.

키안간에서 바타드로 이동하는 길, 그 초입인 '새들'에는 많은 이푸가오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러고는 밑도 끝도 없이 짐을 들어주겠다고 사람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공정여행을 준비할 때 회의에 참석했던 마을 농부 '길버트'씨가 소문을 낸 탓이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우리가 대단히 많은 돈을 쓰고 갈 거라는 헛소문이 더해져, 한 마디로 '짐을 들어줄테니 돈을 달라!'는 소리였다. 슬슬 걸어서 한 시간 정도 내려가면 도착할 거리, 평소 때 짐꾼이 이 곳에 있던 것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공정'이라는 단어가 그저 자신들을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라 오해했던 것이다.

"그러지 말고 사람들이 아까 전부터 기다렸으니까 (짐꾼으로)써죠!"
"지금 비오니까 한참 밭 정비하실 시간이자나요? 대여섯번 올 동안 한 번도 짐꾼 본적이 없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원망하는 눈초리로)외국인들 오면 다 써주는데…"

밭일을 모두 해야됨에도 이들은 소식을 듣고 온 것이다. 그 길까지 동행했던 조나단은 이런 상황에서 짐꾼을 쓰는 것은 이 곳 공동체를 파괴하는 길이라며, 그들을 달랬다.

바타드로 가기 전에 들린 바나우에 계단식 논의 모습.
 바타드로 가기 전에 들린 바나우에 계단식 논의 모습.
ⓒ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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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잘 일구셔야 외국인들도 오고 도와줄 마음도 생기지, 아무것도 몰라서 짐꾼쓰는 외국인은 무슨 죄예요. 이러면 안되요."

결국, 우리는 그들의 원망서린 눈초리를 뒤로하고 바타드로 발길을 향했다. 외국인들이 돈을 베풀듯이 이 지역에서 쓰고 간 것이 이런 광경을 낳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 있지 않아 알 수 있었다. 필리핀은 어딜가나 외국인이라는 존재가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참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연속되는 나라이다.

'공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이렇게 생각보다 크게 여행 전반에 배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SBS 유포터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공정여행, #필리핀, #아시안브릿지 필리핀, #세계문화유산, #공감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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