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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소망을 빌며 건배하는 모습. 가족·형제 모임은 하면 할수록 건강에 좋고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새해 소망을 빌며 건배하는 모습. 가족·형제 모임은 하면 할수록 건강에 좋고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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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만 참석자격이 있는 기축(己丑)년 송년회와 경인(庚寅)년 신년회를 우리 집 거실에서 하얗게 변한 세상을 가슴에 안으며 치렀다. 군산에 사는 형제들 외에 서울, 수원, 평택 등지에 사는 누님과 조카들이 함께 해서 의미를 더했다.

7남매 중 누님 두 분이 빠져 아쉬웠다. 하지만, 아쉬움 이상의 의미는 두지 않았다. 형제가 여럿이면 몸이 건강하고 잘 살아도 자리를 함께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오래 전부터 경험해오는 터이니까.

반가웠던 전화

지난해 성탄절에 막내 매형이 반가운 전화를 해왔다. 2009년 송년회를 우리 집에서 하기로 했다는 것. 술과 떡국 등 먹을거리는 알아서 준비해 갈 것이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 대신 집을 빌려주고 보일러나 빵빵하게 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축배도 들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면서 제야의 종소리도 듣고 2010년 1월1일 신년회는 떡국을 끓여 먹을 거라는 간단한 행사개요를 설명해주기에 대환영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올해가 칠순인 막내 매형은 매형 네 분 중에 세 분이 돌아가시고 혼자 남아 더욱 소중하고 애틋한 정이 느껴지는데, 싫어하는 내색 하나 없이 투병 중인 막내 누님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고 있어서 더한지도 모르겠다.

가슴 졸이며 손님을 기다리다 

2009년 12월31일 아침, 우리 마을 풍경. 눈길을 걸어가는 할머니 목적지가 어디인지 무척 궁금했다.
 2009년 12월31일 아침, 우리 마을 풍경. 눈길을 걸어가는 할머니 목적지가 어디인지 무척 궁금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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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년 마지막 12월31일 아침에 눈을 뜨니까, 기상청의 대설주의보 예보대로 많은 눈이 내렸는데, 세상이 온통 흰색 화장품으로 화장한 것 같았고, 테라스에는 발이 빠질 정도로 쌓여 있었다.

화창한 날씨에 가시거리가 길어 평소보다 더욱 또렷하게 보이는 산야는 한 폭의 동양화처럼 다가왔는데 설경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점심때 도착하는 손님들을 맞이하려면 청소도 하고, 실내 공기도 환기시키고, 테라스와 계단에 쌓인 눈도 치워야 했기 때문.

곧바로 창문을 모두 열어 젖히고, 청소를 시작했고, 테라스와 계단에 쌓인 눈도 치웠다. 다섯 살 때 맹장수술을 하면서 척추에 주사를 놓는 바람에 허리를 오래 구부리거나 무리가 가는 일은 못한다. 하지만, 상쾌한 마음으로 청소도 하고 눈도 치웠다.

눈을 치우면서도 12시쯤 도착한다는 막내 누님과 매형이 못 올까 봐 걱정되었다. 전날 내린 폭설로 도로가 빙판길이 되어 아내가 퇴근하지 못해 혼자 지냈기 때문이었다. 해서 평택 부근은 도로 사정이 어떠한지 전화해보고 싶었으나 "길이 너무 미끄러워 통행이 어려우니까 다음으로 미루자!"고 할까 봐 궁금하지만,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정오가 넘었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어 불안감이 밀려왔다. 셋째 누님이나 동생에게서라도 어떻게 되는 거냐며 전화가 와야 되는데 아무 연락이 없어 더 답답했다. 막내 누님이 오면 함께 먹으려고 밥도 먹지 않고 기다렸는데 1시가 되어가도록 연락이 없어 혼자 먹을 수밖에 없었다.

밥을 거의 먹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가웠다. 올 사람은 누님들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밥을 먹다 말고 뛰어나갔더니, 셋째 누님과 막내 누님, 형수가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들어왔다. 차 청소를 하는 막내 매형에게 다가가 고생하셨다고 하니까 눈이 많이 내려서 시속 30km로 왔다고 했다.

건강과 새해 소망을 빌었던 송년회

누님들이 음식을 만드는 동안 나는 연말에 모이면 먹으려고 남겨놓았던 알밤을 구워 나눠주었더니 맛있다며 모두 먹어 치웠다. 조금 있으니까 형님과 동생이 도착했다. 동생은 연말 모임이 여섯 곳이나 되는데 여기로 왔다면서 형제애를 과시했다.

이어 조카 부부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왔고, 이어 2009년 가족 송년회가 시작되었다. 술을 한 잔씩 따라 높이 들고 형님의 선창에 따라 "잘 먹고 잘 살자!"를 외쳤는데, 형제가 모이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형제의 소중함을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조카며느리는 "저는 처음엔 삼촌들이 자주 모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차츰 형제들 모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쟤네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쟤들이 크면 보고 배우고 느낀 대로 하지 않겠어요"라며 '형제들 모임'의 중요성을 에둘러 표출했다.

홍어회 무침, 찌개, 육회 등이 올라온 송년회 술상. 형님이 셋째 누님에게 소주를 권하고 있다.
 홍어회 무침, 찌개, 육회 등이 올라온 송년회 술상. 형님이 셋째 누님에게 소주를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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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는 아내와 누님, 조카·조카며느리들. 이러한 자리가 평생 몇 번이나 만들어지는지 따지다보면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우치게 된다.
 거실에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는 아내와 누님, 조카·조카며느리들. 이러한 자리가 평생 몇 번이나 만들어지는지 따지다보면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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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누님이 새해 소망을 비는 건배를 다시 하자며 손을 들더니 "내년도 올해처럼!"이라고 했다. 순간, 한 달 전에 돌아가신 셋째 매형이 생각나 "올해처럼 하면 한 양반이 돌아가시니까, '재작년처럼'이라고 허야지!"라고 해서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혼자 먹으면 맛이 떨어지지만, 술처럼 대화도 하고 권하면서 먹으면 맛도 더하고 소화도 잘 된다. '대화는 소화액을 분비한다!', '화기애애한 이야기꽃은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 '먹자판 속으로 스며드는 가족애'를 외치고 싶은 마음이다.

11시 조금 넘으니까 아내가 왔고, 서울과 수원에 사는 조카(큰 누님 아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몇 시에 술자리가 끝나느냐고 묻는 것이 오고 싶은 모양이었다. 해서 군산에 들렀다가 어머니(큰 누님) 면회를 하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새벽 1시가 되어 도착했다.

70년대 초 집에 놀러 올 때면 골목 끝에서부터 "향토 해비군··"을 부르며 들어오던 귀염둥이 조카도 함께 와서 반가웠다. 당연히 술상이 다시 차려졌고, 방에서 주무시던 형님과 막내 매형이 나와 안부를 물으며 술친구가 되어주었다.

조카가 필자에게 "삼촌은 올해가 환갑이시네요!"라고 하자 "부부가 금강산이나 다녀와라", "환갑 기념으로 외국 여행을 가야 할 것 아니냐!" 는 등 의견이 분분하기에 "아무래도 환갑 기념으로 이를 두 개는 빼야 할 것 같다"고 해서 또다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상에 올라온 주요 음식은 야채샐러드, 돼지고기 볶음, 육회 무침, 홍어회 무침, 홍어 내장찌개 등이었는데, 홍어회 무침과 찌개 인기가 가장 좋았다. 술과 안주, 웃음과 덕담이 오가는 송년회는 날을 새도 부족하겠지만, 다음날을 위해 새벽 3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경인(庚寅)년 가족 신년회

호랑이해인 경인(庚寅)년 1월1일 해 뜨는 시각이 7시45분이라고 했는데, 우리 마을에서는 구름이 하늘을 가려 떠오르는 호랑이의 해 첫날 아침 해를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9시가 되면서 해가 뜨고 날씨도 푸근해 길이 얼지 않아 운전하기에도 좋았다.

떡국으로 차린 2010년 1월1일 아침상. 덕담과 정담이 오가는 정겨운 자리였다.
 떡국으로 차린 2010년 1월1일 아침상. 덕담과 정담이 오가는 정겨운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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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은 하얗게 펼쳐지는 바깥 풍경을 감상하면서 떡국을 먹었는데, 꼭 해를 보고 소망을 빌어야 이루어진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떡국을 먹으며 지나간 영겁의 기축(己丑)년을 보내고 경인(庚寅)년에 이루어질 소망을 빌었다.

이번 가족 송년회와 신년회에 모인 수는 모두 17명이었는데 젊은 조카·조카며느리들까지 참석해서 분위기가 더욱 활기차고 화기애애했다. 우리 형제는 옛날부터 모이는 것을 좋아하는데, 신혼 시절에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아내와 티격태격했다. 그런데 지금은 협조도 잘하고 먼저 챙길 때도 있어 '사람은 열 번 변한다'는 옛 어른들 말을 떠올리게 한다.

서울과 수원, 논산에서 온 조카와 조카며느리들은 꼭 콘도에 온 기분이라며 떡국을 맛있게 먹고 덕담을 나누며 놀다 오전 10시쯤 부산을 향해 출발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큰 누님)를 면회하고 내일 올라간다고 했다.

돼지고기를 썰어 넣은 콩나물 볶음밥. 옛날 어머니 손맛을 그대로 이어받은 셋째 누님과 막내 누님 음식솜씨는 여느 최고급 호텔 식당 주방장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돼지고기를 썰어 넣은 콩나물 볶음밥. 옛날 어머니 손맛을 그대로 이어받은 셋째 누님과 막내 누님 음식솜씨는 여느 최고급 호텔 식당 주방장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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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는 돼지고기를 썰어 넣고 콩나물 볶음밥을 해먹었는데, 서로 맛있다며 너도 한 그릇, 나도 한 그릇 더 먹으라고 권하며 퍼먹는 바람에 모자랐다. 특히 동생은 어머니, 조카는 외할머니가 해주던 맛이라며 좋아했다.

점심 후에는 조카가 최근에 사들인 아파트를 둘러보고 왔는데, 2009년 송년회와 2010년 신년회 참석자가 대부분 50대-60대여서, 다음부터는 아이들 때문에 귀찮더라도 아들·딸 가족을 모두 데리고 참석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조카가 최근에 사들인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눈 쌓인 옥구들녘, 가로지르는 농수로는 은파 유원지에서 발원한다.
 조카가 최근에 사들인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눈 쌓인 옥구들녘, 가로지르는 농수로는 은파 유원지에서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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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가족송년회, #신년회, #기축년, #병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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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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