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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기른 채소들은 크진 않아도, 소변거름 먹고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 소변 먹고 잘 컸네! 텃밭에서 기른 채소들은 크진 않아도, 소변거름 먹고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 인수동텃밭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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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춘분(3월 21일)부터 텃밭에서 농사를 짓던 우리 마을(인수동) 주민들이 손수 키운 배추로 함께 모여 김장을 담갔다.

눈꽃이 살짝 흩뿌리던 지난 11월 21일 공동텃밭에서 갓 뽑아온 배추며, 무·순무·갓·파·쪽파·양파 등이 마당에 수북이 쌓인다. 이만하면 김장채소 대부분을 돈 들여 사지 않고, 농사지은 밭에서 마련한 셈이다. 생강과 마늘도 심었지만 양이 넉넉지 않아 내년에 쓸 씨앗을 얻으려고 먹지 않고 남겨 놨다. 매년 모종으로 사서 심었던 배추는 올해 처음 씨앗부터 모종으로 키워봤다. 이번 김장 양은 배추 50포기. 심은 모종은 100개 남짓이었는데, 아쉽게도 절반 정도가 끝까지 살아남아 도시농군들 품에 안겼다.

"파는 것보다 보잘 것 없지만, 소변거름 주면서 튼튼히 키웠죠"

배추를 천일염에 절이고, 흙 묻은 채소들 씻고 다듬는 작업이 밤늦게까지 이어진다. 김장 담그는 전 과정을 처음 해본 한 총각은 소금에 절인 '배추 뒤집기'가 뭔지 처음 알았다며, 힘든 줄도 모른다.

이튿날 점심 먹고 모여든 텃밭 사람들. 둘러 앉아 무를 썰기 시작한다. 마늘과 생강도 껍질 까서 갈고, 부엌 냄비에서는 배추 시래기가 구수하게 지져지고 있다. 텃밭모임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마을 처녀총각 몇몇도 품 팔아서 김장김치 좀 얻어가겠다며 고무장갑 끼고 도마질에 나선다.

"이 무, 감자튀김처럼 굵게 써는 도련님은 누구셔?"

남정네들은 아낙네 칼질 솜씨에 뒤질세라 자세를 잡고 무 썰기에 집중한다.

손수 농사지은 채소들로 김장재료들이 대부분 마련됐습니다.
▲ 김장 비용 줄였네 손수 농사지은 채소들로 김장재료들이 대부분 마련됐습니다.
ⓒ 최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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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친구 텃밭 농사를 같이 하다가 올해 처음 개인 텃밭을 분양받은 기인씨는 직장 다니면서 주말마다 부인과 같이 텃밭 돌보는 시간이 삶의 활력이 되었다고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제철에 나는 작물들을 다양하게 먹어봤어요. 텃밭에서 바로 따먹는 재미도 쏠쏠하지요."

시형씨 부부는 식재료 지출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실제로 한 달에 네 번 장 보던 게 두 번으로 줄었다고. 올해 처음 신기한 마음으로 농사를 지어봤다는 병이씨는 작은 무들을 바라보며 아쉬운 마음을 털어놓는다.

"심을 때와 거둘 때 마음이 참 달랐어요. 심을 땐 아주 잘 자랄 줄 알고 기대했는데, 막상 거둘 때 보니 배추들이 다 싱싱한 게 아니고, 너무 작게 자란 것도 있고, 많이 죽고…. 무척 아쉬웠어요. 포도원에 일찍 온 일꾼과 늦게 온 일꾼이 똑같은 품삯을 받는다는 이야기처럼, 농사란 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자연의 힘도 크고, 하늘에 빌면서 겸손하게 농사짓던 옛 농부들의 정신을 배웠어요."

아무래도 농약과 화학비료를 뿌린 시중 배추만큼 키우기가 녹록치 않았을 터. 처음부터 유기농을 고집해온 이 도시농부들은 대신 요소비료(소변)를 열심히 웃거름으로 줬다. 각자 집 화장실에서 소변을 페트병에 모아 15일씩 발효시킨 것. 많지 않지만 건강하게 쑥쑥 자라 속이 노랗고 알찬 배추를 이들은 대견스럽다는 듯 바라본다.

이 모임에서 특히 텃밭에 정성을 많이 기울인 농부로 인정 받는 호율씨는 "텃밭 채소들이 다 자식 같아서 내가 얘네들을 먹어야 한다는 게 가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라며 쑥스럽게 웃는다. 그런데 얼마 전 지인이 쓴 글에서 "난 누구의 밥이 될까?"란 대목을 보고서, 자신에게 '밥'이 되어준 작물들처럼 자신도 누군가의 밥이 되는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고.

남정네들도 아낙네 칼질 솜씨에 뒤질세라 무썰기에 집중합니다.
▲ 김장은 남녀 함께 남정네들도 아낙네 칼질 솜씨에 뒤질세라 무썰기에 집중합니다.
ⓒ 최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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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짓는 틈틈이 집에서 슥슥 김치 담가 먹던 실력으로 배추와 양념을 돌돌 말아냅니다
▲ 김장 품앗이 농사 짓는 틈틈이 집에서 슥슥 김치 담가 먹던 실력으로 배추와 양념을 돌돌 말아냅니다
ⓒ 최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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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재료 다듬기가 마무리됐다. 양념을 무치기 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와 아삭아삭한 야콘이 참으로 나오자 환호가 터진다. 둘 다 역시 텃밭 표다. 이제 커다란 고무대야에 고춧가루, 다시마가루 섞은 찹쌀풀, 젓갈 등을 붓고 양 팔을 휘저어가며 무친다.

텃밭 채소들로 이미 깍두기며 겉절이, 물김치 등 제 손으로 김치 한두 번쯤 담가본 이들이기에, 남녀 할 것 없이 능숙하게 배추에 양념을 골고루 발라 동그랗게 만다. 기인씨는 집에서 부인에 의존하지 않고 더 맛나게 담글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인다. 시형씨는 일반적으로 남성들이 밭일을 하고 여성들이 주로 김장하는데, 농사도, 살림도 남녀 같이 하는 게 좋다고 덧붙인다. 병이씨는 올 여름 건강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둔 친구에게 자기 텃밭을 같이 일구자고 제안했단다. 처녀, 총각이 한 밭을 같이 일구는 것도 괜찮은 상부상조가 되는 듯 싶다.

멀리서부터 온 채소 사먹기만 하는 무심함에서 벗어나야

김장을 마무리하고 겉절이와 시래기 지짐으로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니, 슬슬 내년에는 어떻게 텃밭을 이어갈지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다들, 도시 사는 사람 누구든 자기 집 앞이나 분양 받은 텃밭에서 먹거리를 자급하고 생태적 삶을 살 수 있다며, 내년에도 계속 텃밭을 일구자고 뜻을 모은다.

한 마을에 살면서도 다른 직업을 갖고 있어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는데 같이 텃밭을 일구고 김장도 품앗이하면서 서로 살리는 관계가 되는 것 같단다. 더구나 텃밭을 시작할 때 분양가나 씨앗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함께 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부담이 줄어든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시골로 농사지으러 가는 이들도 있다. 호율씨와 용우씨는 홍성에 있는 농업전문학교인 풀무학교 전공부에 들어간다. 시형씨는 이제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귀농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귀농하면 그곳서 생산공동체를 이루어서 이곳 인수동 마을과 직거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더불어 직거래를 매개하는 생협 매장도 언젠가 이 마을에 들어서길 꿈꾸고 있다.

강화도에서만 자라는 순무인데, 올해 처음 씨를 받아 텃밭에 심었더니, 잘 자랐습니다. 알싸한 맛이 일품이지요.
▲ 순무 강화도에서만 자라는 순무인데, 올해 처음 씨를 받아 텃밭에 심었더니, 잘 자랐습니다. 알싸한 맛이 일품이지요.
ⓒ 인수동텃밭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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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건강 때문에 채소를 많이 사먹는다는 한영씨는 "비닐에 포장되어 파는 채소를 먹으면서 이렇게 먹는 게 과연 건강한 건가?"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유기농도 비닐하우스에서 자라서 비닐 포장해서 유통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직접 밭에서 길러서 갓 따온 채소가 제 건강과 기를 살려주지 않을까요?"

한영씨 몸에 필요한 약재가 적상추·더덕·도라지·머위 따위라 내년에는 자기 '약재'를 직접 재배하고 달여 먹어 자연의 신선한 기운을 얻고 싶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이론의 달인'으로 불리는 서원씨는 앞으로 텃밭에 허브와 딸기 등도 심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볼 의욕이 넘친다. 종자시장이 외국계 대기업으로 넘어가 토종이 거의 없는 상황에, 조선오이·강낭콩·순무 등 토종 재배도 늘려볼 계획이다.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든, 약재든, 씨앗이든 그저 마트에서 파는 대로, 싸면 싼 대로, 비싸면 비싼 대로, 맛없으면 없는 대로, 몸에 나쁘면 나쁜 대로 그렇게 '되는 대로' 사먹는 도시 삶이 현실적이어도, 어찌 보면 무기력하게 여겨진다. "자기 먹거리를 스스로 농사지을 수 있으면 배짱이 생긴다"고 어느 농업대가가 말씀하셨다고 한다. 우리 건강과 자연을 위협하는 이 시대에, 함께 텃밭 일구는 곳에서 생명력과 배짱이 회복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북한산 자락 인수동 마을신문인 <아름다운마을>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김장, #텃밭, #유기농, #품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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