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일 열린 충청권 지도층 간담회 자리에서 발언대에 오른 김명숙 청양군의원
 지난 1일 열린 충청권 지도층 간담회 자리에서 발언대에 오른 김명숙 청양군의원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저는 청양군의회 의원 김명숙입니다. 지난 11월 27일 이완구 충청남도 도지사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최근, 수도권 과밀해소와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범국가적으로 추진하여온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대한 정부 측의 수정론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충청지역의 최대 현안인 행복도시 문제와 관련하여 지역원로 지도층 여러분들을 모시고 고견과 지혜를 모으고자 합니다. 부디 참석하시어 지역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보다 앞선 11월 26일 저녁에는 청양군의회 차원에서 긴급사항이라며 도지사와 간담회 개최건을 논의했고 참석하자는 의견이 다수결로 채택돼 행정사무감사 일정을 조정하게 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의회사무과 담당이 "도지사님이 12월 1일 행복도시 문제로 지도층 인사들 500명을 모시고 간담회를 개최하려고 하는데 시간이 없어 의회별로 참석 여부를 파악해달라고 도청으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의원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청양군의회는 행정사무감사를 하다가 도청에 다녀오고 나서 계속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12월 1일 12시 40분쯤 청양을 출발했습니다.

기초의회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부르지요.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기초의회는 제2차 정례회 중입니다. 내년도 예산을 심의하고 행정사무감사를 하고 업무 실적보고 등을 받는 등 1년 간의 의정활동 중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기초의원의 본연의 임무인 행정사무감사를 진행해야 하는 정례회 중이지만, 충남도의 운명이 걸린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중지를 모으는 자리에 함께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고 이완구 지사가 초청한 자리에 갔습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문제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 생각으로 행사에 참석한 것이지요.

세종시에 힘 보태기 위해 군의회 일정조정하고 참석했건만...

간담회가 열리기 5일 전 알아본 바로는 '지도층 인사 초청 간담회 계획'에서 초청 대상은 521명으로 선거직 261명(시장, 군수, 의회의원), 종교계와 문화예술계 대표 33명(천주교, 불교, 기독교, 문화원장, 예총회장), 언론계 대표 67명(언론사 보도·편집국장, 목요언론인클럽 원로 언론인 등), 학계대표 50명(정책자문 교수단 등 대학교수), 시민단체 대표 110명(미래충남사회단체협의회, 정책 서포터즈) 등이었습니다. 

1일 오후 2시에 열린 지도층 간담회는 권경득씨의 사회로 시작되고 이완구 지사의 인사말이 이어졌습니다. 그 후 의견 개진 청취 시간에 강태봉 도의회 의장을 비롯해 천주교대전교구장, 상이군경 도지부장, 충남발전연구원장, 충남도버스운송조합, 충남노인회장 등 모두 18명이 발언대에 섰습니다.

하지만 2~3명을 제외하고는 발언자들은 한결같이 "도지사 사퇴가 웬 말이냐 끝까지 지키셔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계속했습니다. 한 발언자는 "충청도 발전을 위해 200만 도민이 이 지사의 보호자가 될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발언자들도 2~3명을 빼고는 모두 사회자가 지목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치 도지사의 치적을 홍보하고 지사직 사퇴를 막기 위해 동원된 정치적 간담회 같았습니다.

이완구지사 초청 충청권 지도층인사 간담회.
 이완구지사 초청 충청권 지도층인사 간담회.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지사직 사퇴 막기 위해 동원된 정치적 간담회?

보다 못한 제가 발언을 신청해 15번째로 발언대에 섰습니다. 제 발언 요지는 이렇습니다. 

"이 자리가 행복도시 원안 추진을 지키자는 자리인지, 도지사의 지사직 사퇴냐 존속이냐를 논의하는 자리인지 분간이 안 된다. 본 의원은 도지사직 사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들은 바가 없는데 사퇴를 만류하는 발언들만 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을 탄핵하고 도의 예산이라도 써서라도 행복도시를 지켜내자는 등의 논의를 하는 것이 먼저라고 본다. 도지사는 진정으로 충남을 생각한다면 도지사직을 그만둘 것이 아니고, 임기를 채우면서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자유로운 몸으로 행복도시를 지켜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저는 이 지사의 지지자들로부터 야유를 받았습니다. 이 지사 또한 제 발언이 끝나자마자 발언대로 나가 "지금 말한 사람은 민주당 소속 김명숙 의원"이라고 소속 당을 굳이 밝혔고, 이에 대한 제 항의에 "많은 어르신들 앞에서 무례한 것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제 발언 이후에도 한결같이 "지사님이 왜 사퇴하느냐 자리를 꿋꿋이 지키라"는 발언만 이어졌고, 행복도시 원안 추진을 위해 참석자들이 서명한 결의문이라도 채택해 대통령에게 보내자는 의견이라도 나올 줄 알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18명의 발언자 중 그나마 가장 주목을 끈 의견은 김준배 시군의회의장단 회장의 "위법행위를 하고 있는 정운찬 총리의 사표를 받고 법을 무시하는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야 한다"는 말씀 정도였습니다.

이완구 충남지사
 이완구 충남지사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지도층 인사 700여 명의 토론회... 결론은 "금주 중 거취 표명하겠다"

결국 오후 3시에 끝날 예정이던 간담회는 두 시간을 훌쩍 넘겨 오후 4시가 넘어 끝났으나, 이날 결론은 이 지사의 "오늘 나온 얘기를 참고로 삼아 금주 중에 거취를 표명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허탈했습니다. 이런 소리 들으려고 점심을 20분 만에 허겁지겁 먹고 의원 전원이 행정사무감사를 하다 말고 달려와 2시간 이상을 앉아있어야 했나. 그리고 다시 청양으로 달려가서 다 마치지 못한 행정사무감사를 해야 하고…….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이런 간담회를 왜 해야 합니까? 도에서는 정례회기 중임에도 불구하고 시군의회별로 몇 명이나 오느냐고 재차 확인했고, 도의회 역시 회기 중임에도 이날은 개회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행복도시 원안 추진에 대한 의견과 지혜를 모으는 자리가 아니라, 행복도시 문제를 빌미로 이완구 도지사가 자신의 거취 결정을 위해 도내 각계각층의 인사 700여 명을 불러 모았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거취문제가 급했다면 도지사 스스로 각계각층의 의견을 물어 결정하면 될 것입니다. 꼭 이렇게 수백 명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도지사직을 사퇴하려고 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냐'는 식으로 행동해야 했을까요?

그리고 진정으로 충남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그동안 한 번도 행복도시 원안 추진을 위해 충남의 대표 인사들을 초청한 적이 없으니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지혜를 모으자'는 쪽으로  간담회를 이끌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지도층 인사인 참석자들이 대부분이 말 한마디 없이 앉아있다 가는 모습도 서글펐습니다. 제가 발언을 하기에 앞서 누군가 연륜이 높으신 지도층 인사가 나서 "도지사 치적과  사퇴 만류에만 치중하는 발언은 그만하면 됐으니 행복도시 원안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자"고 말씀해주시길 간절히 원했었습니다.

2일에는 한나라당 소속 도의원님들이 지사직 사퇴를 막는다며 머리띠를 두르고 결의문을 낭독했습니다. 옳지 않습니다. 도지사직 사퇴에 머리띠를 두를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으로 행복도시 원안추진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도의원 역할을 다하는 길이며 뽑아준 도민에게 보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한 욕설과 손찌검... 모 도의원, 계단에서 폭언에 떠밀기까지 

개인적으로 이완구 도지사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때에 지사직을 그만둔다는 것은 책임회피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도민들이 지사직을  내놓으라고 해도 "지사직을 내놔야 하는 게 도리이지만, 지사직을 지키면서 임기를 마칠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행복도시 원안 추진에 매진하겠다"고 하는 것이 큰 정치인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은 탈당하지 않고 지사직만 그만두겠다는 것은, 앞으로 정치는 계속하겠지만 충남의 현안 문제는 손을 놓겠다는 행동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본말이 전도됐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간담회가 있던 날 공식석상에서 이완구 지사에게 쓴 소리를 했다고 회의장 문을 나서자마자 이 지사의 지지자들로 보이는 사람들 4~5명에게 둘러싸여 심한 욕설과 손찌검을 당해야 했습니다. 한나라당 소속 모 도의원은 제게 폭언을 하며 제 몸을 밀쳤고, 그래서 저는 계단으로 굴러 떨어지는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다. 또 천안에서 온 어떤 지지자는 제 발언 이후에 제 옆자리로 쫒아와 "남의 행사 망치지 마라"고 서너 차례 윽박지르기도 했습니다.

충남의 지도층이 모였다는 자리에서 다른 의견을 제시한 소수를 향해 떼로 몰려들어 막가는 행동으로 기초의회 의원을 대하는 행태……. 주위의 어느 누구도 이들의 행태를 저지하지 않는 충남의 지도층 인사들……. 40대인 젊은 저는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이완구 충남지사
 이완구 충남지사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태그:#이완구, #세종시, #행정도시, #간담회, #충남현안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에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과 우리들이 알아야 할 정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오마이의 전문기자가 아닌 산과 들에 살고 있는 무수한 나무와 풀들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정성껏 글을 쓰며 공유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 필요한 것을 다른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글을 쓰는 시민기자들의 고마움에 저도 작은 힘이나마 동참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