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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장기나 취미생활 없이 12년간 입시라는 목표만을 향해 달려온 대학생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예체능을 하거나 예술을 하는 사람에 대한 경외감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미술을 전공하고 있다고 하면 예술적이라며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홍대 앞 인디 밴드의 보컬에게 무한한 동경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비롯해 유수한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감독이라면? 만드는 작품마다 세계의 집중을 받는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는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가 십상이다.

이러한 간극을 조금이나마 없애기 위하여 현대 하이스코가 후원하고 연세대 총학생회가 함께 한 '영하이스코 컬처클래스'가 25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날의 명사는 앞서 말한 소개글 주인공인 영화감독 박찬욱이었다. 대학생들이 뽑은 가장 만나고 싶은 예술인으로 뽑힌 박찬욱 감독은 오랜만에 대학생들과 만나는 기회라고 밝히며 기대감을 나타내었다.

학생들과 대화하는 영화감독 박찬욱.
 학생들과 대화하는 영화감독 박찬욱.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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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신청을 통해 접수한 800여 명의 학생들이 자리한 이 자리는 연세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현악 4중주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에 등장한 음악들을 연주하면서 시작되었다.

행사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세계 전체를 돌아보는 것과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대표적인 복수 3부작(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를 돌아보는 것과 함께 미리 인터넷을 통해 접수받은 질문에 감독이 직접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박찬욱 감독에게 던져진 질문은 다양했지만 학생들의 질문의 공통적 핵심은 바로 그의 독특한 시선에 대한 호기심과 어떠한 대학시절을 보냈기에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는가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박찬욱 감독 같은 거장은 무엇인가 특별하게 보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동경이 질문 속에서 느껴졌다. 또한 그의 신작과 봉준호 감독과의 작품에 대한 질문도 많아 대학생들이 얼마나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 대해 관심이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복수 3부작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시작으로 자신의 시선에 대해 대학생들에게 설명해주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20대 초반, 혹은 10대에 남몰래 보았을 학생들에게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지점이 있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담긴 의도와 장면의 연출 효과에 대해 설명해주어 이전에 이해할 수 없던 장면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게 했다.

박찬욱 감독 자신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영화는 이전까지 극장에서 쉽사리 볼 수 없었던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학생들은 과제를 적어가는 것처럼 제목 하나하나를 꼼꼼히 적어 내려가는 모습이었다.

또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에서 느껴질 수 있는 독특한 미장센과 그만의 고유한 분위기의 원천에 대한 질문에는 다양한 인문학적 소양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런 소양을 키우는 과정은 결국 대학에서 이루어져야한다고 박찬욱 감독은 말했다. 그는 자신의 대학시절을 언급하면서 영화 감상 동아리에서 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이라는 영화가 자신을 영화감독의 길로 이끌었다고 했다. 그는 고전 예술을 읽고 보고 듣지 않는 요즘의 학생들에게 고전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이후 감독과의 질문 시간에서 박찬욱 감독은 유명 영화감독이 아닌 한 선배로서 직접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예술을 하고 싶은데 현실의 제약이 있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는 마치 동아리 방에 있는 고학번 선배의 말처럼 혹은 아이를 가진 한 부모의 입장으로서 그 일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를 해주었다.

학생들과 인사하는 박찬욱 감독.
 학생들과 인사하는 박찬욱 감독.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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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시작되기 전 박찬욱 감독이 굉장히 특이하고 약간은 기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지보경(숙명여대, 22)씨는 이번 대화를 통해 그가 나와 많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러한 자리를 통해 자신의 길을 찾는 사람이 생겼으면, 이라는 거창한 바람은 말하지 않겠다. 다만 저런 거장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더 자주 마련되었으면 한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과도하게 인문학적, 예술적인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예술 명사들이 한 발자국 먼저 다가와준다면 우리나라의 예술적 풍토는 더욱 두텁고 다양해지지 않을까.


태그:#박찬욱, #영하이스코, #컬쳐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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