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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친구들이 날 많이 좋아했어요. 그 철없던 시기에 전 욕을 잘 안했거든요. 근데 그날 난 평생 할 욕을 그 두 시간동안 다 한 것 같습니다."

 

선해 보이는 얼굴에 푸근한 목소리, 사람 좋아 보이는 그가 왜 그랬을까. 그날이 어떤 날일까, 그는 누구일까.

 

지난 25일,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대구MBC에서 '언론 자유와 권력의 방송장악'을 주제로 대구 시민들에게 강연을 했다. 그의 외모는 '언론악법 저지'를 외치는데 앞장서는 사람이라기보단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할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나 마이크를 든 순간부터 약 2시간가량 그의 입에서는 단호하면서도 굳은 의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 위원장은 아직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미디어법 날치기를 위해 한나라당의 불법투표행위가 성행했던 그 때를 목격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지금은 웃으면서 강연을 하고 있지만 "평생 할 욕을 그 2시간에 다 한 것 같다"는 그의 말은 그가 그 당시 얼마나 분개했었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그는 "한나라당은 165명이 투표하는데 약 1분 46초가 걸릴 정도로 철저했던 반면, 야당은 그에 비해 준비가 소홀했다"고 비판했다. 헌재의 판결에 대해서도 "재판관 9명 중 3.5명 정도만이 객관적인 판단을 하려 노력했다"며 용기가 없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 사이, 시민들은 반대 서명 운동을 실시했고 짧은 시간 동안 200만명에 달하는 서명부가 작성되었다고 한다. 시민들의 열의에 대한 놀라움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한 층 높아져 있었다.

 

최 위원장은 권력이 방송사를 점점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아래의 두 가지 예로 보여주었다.

 

첫째로 KBS는 시청률이 꽤 높을법한 축구 중계를 도중에 끊고 4대강 시공식을 내보냈다. KBS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움직인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 얘기를 꺼내며 대통령이 움직일 때마다 방송을 해야 하냐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어, 이 사실은 권력이 실질적으로 방송 편성에 미칠 힘까지 확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둘째로는 YTN의 돌발영상을 예로 들었다. YTN의 임장혁 피디는 공권력으로 무장한 경찰이 저항을 포기한 노동자를 폭행하는 장면을 돌발영상으로 내보내었다가 편파적이란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도 아니지만, YTN도 역시 상층부가 권력에 장악됐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의 강연을 듣는 내내 필자는 교과서로만 배웠던 유신헌법시절이 계속 떠올랐다.

 

그에게 시민이란 존재는 무엇일까.

 

"수년 동안 외쳤던 언론개혁에는 무관심했던 국민들이 광우병 파동을 겪으며 조중동 폐간을 외치는 모습을 보고 희열을 느꼈습니다."

 

최 위원장은 권력으로부터 언론을 지켜 내기 위한 전투를 벌이는데 필요한 것은 시민의 힘이라고 거듭 말했다. 또 그는 국민 개개인이 관심을 가지고 미디어법 재논의를 촉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언론계의 큰 인물답게 잘못하고 있을 땐 호되게 야단쳐달라는 부탁도 빠뜨리지 않았다.

 

"언론도 역시 권력이다. 언론에게 권력을 준 이유는 공정하게 보도하고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를 감시하라는 것이다. 비판 없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그는 강의를 마쳤다.

 

그는 참가자들과 질의 응답 시간을 보낸 뒤 기념촬영을 하였다. 현수막을 들고 참가자들과 주먹을 불끈 쥔 채 사진기를 향해 웃는 그의 모습은 그가 당당한 한국 언론인이란 사실을 한 번 더 상기시켜주었다.

덧붙이는 글 | 최상재 : 현 전국언론노조의 위원장.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반대하는 전국언론노조의 총파업을 주도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미디어법 원천무효를 위해 헌법재판소 앞에서 일만배를 올리는 등 한국 언론을 위해 힘쓰고 있다. 


태그:#최상재, #미디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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