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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보기싫어!

3년전엔 이랬잖아
▲ 유빈 3년전엔 이랬잖아
ⓒ 문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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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빠 싫어!
▲ 에이~ 그러지 마 난 아빠 싫어!
ⓒ 문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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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둘도 없이 친한 친구같았던 부녀 사이에 냉전이 시작된 것은 작년 12월부터입니다. 야단 칠 일이 있어도 언제나 웃는 얼굴로 온유하고 부드럽게 가만가만 타이르던 아빠가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고 회사에 복잡한 일이 생기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닥치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이중삼중으로 겹치자 사소한 일에도 그만 벌컥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자주 보이게 되었고 난생 처음 본 아빠의 모습에 딸은 그만 크게 충격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아빠가 보기 싫어!"

태어나서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천정벽력같은 말을 쫑알거리며 방문을 꽝 닫아걸었습니다. 아빠의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며 이해는 하지만 자기에게까지 언성을 높이는 아빠가 사춘기 딸의 눈에는 자기를 미워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만 것입니다. 남편의 힘든 심사를 포근히 보듬어 주지 못한 제 잘못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토라진 딸을 붙들고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지내는지, 그동안 네게 얼마나 정성을 쏟아가며 사랑을 베풀었는지 이러저러했던 참으로 감동적이었던 지난 일들을 손을 꼽아가며 들려줘봐도 흥! 코방귀를 날리며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졌다'고 마치 친한 친구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듯이 샐쭉한 얼굴은 풀어질 가망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남편은 언제나 그랬듯이 실내화를 손수 빨아 뽀송뽀송 마르면 실내화 주머니에 넣어주고 운동화를 씻어 신발끈까지 매서 방문 앞에 곱게 놓아두고 아이스크림을 사다 놓고 용돈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아무리 딸의 맘을 풀어보려 노력을 해도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는 아빠한테 '다녀오셨어요' 인사 한마디 하고는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태가 이렇게 매우 심각해지자 남편은 딸이 왜 저리 토라졌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또 알려고도 하질 않고 한다는 말이,

"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어!"

마치 부부 사이 나빠진 것이 시어미탓이라 원망하는 며느리처럼 남편은 화살을 제게 돌렸습니다. 딸이 엄마하고만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못내 서운해서 하는 소리거니 여기면서 저 또한 괴로운 마음은 혼자 달래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찌해야 둘 사이를 풀어줄 것인지 날마다 가슴을 졸였습니다.

그렇게 온 가족이 속앓이를 하면서 차가운 겨울을 보내고 싸늘한 봄을 보내고 여름이 왔습니다. 딸은 아빠 여름휴가 일정이 잡혀지기도 전에 아빠하고는 절대로 휴가 같이 안간다고 노래를 했습니다. 아빠는 아빠대로 언제쯤 휴가를 잡아야 딸내미 공부에 지장이 없을 것인지 제게 수시로 물어보고 또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혼자 냉가슴을 앓으며 전혀 휴가를 갈만한 여유가 없는 통장잔고를 들여다보고 가계부를 들여다보고 계산기만 두드리고 또 두드렸습니다.

딸이 방학을 하고 남편의 휴가 일정이 잡혔습니다.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기분좋게 일어난 어느 날 딸에게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해서 맛있게 먹이고 뒷산으로 산책을 갔습니다. 푸르른 나뭇잎, 신선한 바람, 반짝이는 햇살 아래 딸은 몹시도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유빈아, 산에 오니 너무 좋지? 우리 휴가 안 갈래? 지금 우리 휴가갈 만한 여유는 없지만 말이야 엄마는 우리 가족이 이렇게 지내는 게 너무 힘들어. 집을 떠나 보면 우리집, 우리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될 거야. 엄마는 아빠랑 유빈이랑 엄마랑 우리 셋이 함께 휴가 너무 가고 싶어..."

처음에는 완강하게 싫다던 딸이 결국에는 마지못해 억지로 동의를 했습니다. 장소는 3년 전에 갔던 유명산 휴양림. 엄마가 암수술을 하고 1년 동안 항암치료를 끝낸 후 머리카락이 제법 자랐을 무렵 갔던 곳이라 유빈이에게도 감회가 남다른 곳입니다.

그때 초등학교 5학년이던 유빈이는 아픈 엄마가 몸이 나아 함께 손을 잡고 휴양림 솔향기를 맡았던 그곳을 자주 떠올리며 꼭 한 번 다시 가자고 수시로 얘기하곤 했습니다. 이제 3년이 흘러 유빈이는 중학교 2학년 사춘기소녀가 되었습니다.

그때 사진을 찍었던 그 장소에서 다시 사진 찍어보자고, 그때 아빠랑 뒹굴며 깔깔 웃고 놀았던 넓은 잔디밭에서 다시 뛰어놀고 예쁜 꽃밭에 다시 가보자고, 흔들그네도 다시 타보고 계곡에서 물놀이도 하자고 달래면서 맘 속으로 애타게 속삭였습니다.

'딸~ 아빠를 부탁해 제발~' 

그 유명한 유명산으로

7월 22일 아침 10시경 느긋하게 출발해서 점심 무렵 도착했습니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라 길이 막히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은 집에서 먹던 마른 반찬 몇 가지와 냉동실에 있던 고기를 가지고 가서 먹기로 했습니다.

휴가비로 지출한 돈이라고는 이박삼일 동안 하루에 휴양림 나무평상 사용료 4000원과 주차비 3000원. 그래서 2일 사용요금 1만4000원과 쓰레기 봉투값 3800원이 전부입니다.

열심히 설거지도 하고
▲ 내 남편 열심히 설거지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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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자마자 저는 작심을 하고 '나는 여기저기 아파서 아무 일도 못하겠으니 둘이서 알아서 하라'고 나무 그늘에 좌정을 하고 앉아 꼼짝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는지 둘이서 손발을 맞추어 텐트를 치고 늦은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부리나케 설거지를 끝내고 산책을 가자는 남편에게 또다시 '나는 다리가 아파 못가겠으니 둘이 다녀오라'고 엄살을 부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에는 아빠랑 눈도 맞추지 않던 딸이 끊임없이 애타게 들이대는(?) 아빠를 마지못해 조금씩 받아들이겠지요. 나란히 푸른 잔디밭을 함께 거닐고, 울창한 휴양림 숲길을 거닐고, 맑고 고운 계곡물에 나란히 앉아 발을 담그고... 그러더니 예전의 모습을 비로소 되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이 한없이 고맙고 예뻤습니다. 티없이 소리치며 장난을 치고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던 예전의 다정했던 부녀 사이로 어서 빨리 돌아가기를 맘 속으로 간절히 빌었습니다.

웃으니 좀 좋아?
▲ 유빈 웃으니 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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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아빠의 화해

돌아오기 전 날 밤, 계곡물 소리와 산새소리가 아늑하게 들려오는 한 밤 중 셋이 나란히 누워 그동안 아팠던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는 방문을 꼭 닫아걸었던 딸이 좁은 텐트 안에서 옹기종기 함께 눕고 보니 서로의 애틋한 사랑이 전해진 것입니다.

유빈이는 아빠 때문에 얼마나 외롭고 슬펐는지, 또 아빠는 유빈이가 토라져서 얼마나 외롭고 슬펐는지, 엄마는 엄마대로 얼마나 혼자서 외롭고 슬펐는지... 두런두런 밤을 지새며 속마음을 털어놓다 어느 사이 잠이 들어 참으로 오랜만에 셋이 평안한 잠을 잤습니다.

2009년 우리 집 여름휴가. 2박 3일 동안 2만원으로 그 수십억배의 값진 것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우리 세 식구의 맘 속에 먹구름처럼 뒤덮였던 응어리를 시원하게 날려보내고, 다시 찾은 행복과 평안이 더없이 소중하고 고맙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준 유명산 휴양림. 울울창창 우거진 나무숲속에서 신선한 숲향을 맡으며 쓰레기 한 점 없이 깨끗하게 보존된 맑은 계곡물을 맘껏 누릴 수 있게 해 주신 아름다운 그 곳 모든 분들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3년 전에는 이랬잖아
▲ 딸 3년 전에는 이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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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니 좀 좋아?
▲ 유빈 웃으니 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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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09년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기사입니다.

(디카에 사진 일자를 조절하지 못해서 2005년으로 잘못나왔습니다. 실제로는 2009년 7월 22일~24일에 찍은 사진입니다.)



태그:#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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