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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어울리는 모습의 두 사람이 나란히 거리를 두고 앉는다. 인디언과 노인이 나란히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다. 아니, 한명은 쭈그려 앉았나? 폭폭한 삶에 자신의 몸을 건사하기 힘에 겨운 그런 모습이다.


과거의 지긋지긋한 삶에 대한 반복. 이어서 아버지와 자식인 내가 닮아 있고, 여전히 어머니와 누이의 삶이 겹쳐지는 -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이자 폭력에 대한 변변한 대항조차 힘든 위치의 삶, 그저 자신을 희생해서 남자를 위하는 삶- 오늘에 이르면 자괴감이 들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만화를 읽으며 아름다운 사랑, 가슴 시리도록 아픔이나 애틋함,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쿨하게 웃으며 유쾌한 남성 무인의 방랑기, 고독하고 외로운 주인공이 성공을 향해 고군분투하여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등의 상투적인 줄거리를 은근히 기대한다.


그러나 여태껏 지켜봐온 최규석의 만화는 우리가 기대하는 그것과는 꽤 거리가 있다.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삶을 관찰하여 예리하고 날카롭게 아프고 가렵고 불편한 것들을 잘도 끄집어낸다. 그게 우리네 삶이다. 그것은 지금 대한민국의 한 쪽에서 여전히 그대로 지겹게도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외면하고 싶어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 삼촌, 이모의 삶인 것처럼, 내가 꼭 아니더라도 나와 연결된 삶이 나의 자아를 슬쩍슬쩍 건드리는 느낌이랄까. 아프지 않아. 이건 남들의 이야기인걸 이라고 해봐야 소용없다. 많은 부분이 달라지고 발전했다고 해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 내가 활짝 펴고 싶은 날개의 한쪽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가 항상 아프고 가렵고 불편한 것들을 떨치지 못하고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30대 중반을 넘긴 나보다 어리다. 하지만 더 '옛날 사람' 같다. 그가 저자후기에서 지칭한 '이 사람들'이 나와 내 가족이 아닐까 생각해보고 가볍게 머리를 저었다. 아버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가 느끼는 느낌을 내가 완전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부러워졌다. 아픈 과거의 경험과 그만큼의 세상을 이해할 것이라는, 그렇지 못한 나의 질투인가.

 


나에게 세상은 늘 새롭고 낯선 것이었다. 무엇도 익숙한 것은 없었다. 나는 그것이 그저 이 사회가 너무나 빨리 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일제 강점기에 쓰인 소설에서 성탄절에 유치원생들이 연극을 하는 대목을 읽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후반에 태어난 나조차 텔레비전에서나 친구들의 이야기로만 듣고 보았던 어색한 풍습이 그 까마득한 시절에도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 사람들에게 세상은 언제나 익숙한 곳이었겠구나. 이들에게 내일은 예상 가능한 것이었고 세상의 변화란 그저 가구나 옷의 변화와 다를 것이 없었겠구나.'


그들의 반대편에는 전통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다가 느닷없이 닥쳐온 파도에 밀려 끝없이 떠돌아야만 했던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그리고 너무 늦게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마치 물 마른 강바닥에서 소용도 없는 아가미를 꿈벅대는 물고기처럼 미처 제 삶의 방식을 손볼 겨를도 없이 허우적대야 했던 사람들. 그들을 키웠던 곳은 흔적을 찾을 수 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그들의 일상이었던 것들은 이제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되어버린 사람들. 나는 그들을 '대한민국 원주민'이라고 이름 붙였다 ('아메리카 원주민' 혹은 '호주 원주민'을 칭할 때의 어감으로 불러주시길!).


아메리카 인디언이 바다건너 넘어온 백인들의 침략에 모든 것을 잃고 내려앉은 원주민이었다면, '대한민국 원주민'은 사리사욕을 지상 최대의 가치로 섬기고 이외 모든 것들을 과감히 물리치고 결코 주변을 돌아볼 줄 모르는 뚝심 있는 일부 '잘사는 사람들'에 의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것'들과 '더불어 사는 것'등의 인간 본연의 공동체 문화를 빼앗긴 사람들이다.


쫓겨서 도시로, 그 한구석으로 피곤한 몸을 누이고, 단순 반복의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수십 년을 밥을 벌어먹고도 결국 남는 것은 깊숙한 상처와 가지지 못한 피해의식의 대물림뿐이다. 어린 시절을 돌아봐도 도무지 '행복'과 연결 지어 볼만한 '추억'을 찾을 수 없다는 사람들과 공감하려 한다. 내 삶이 비록 남루하나 희망과 꿈을 잃지 않고 살아 갈 것이라는 이들에게 반항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어찌해도 별로 변하지 않는, 몸에 완전히 익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익숙한 '촌스러움'이 바로 '대한민국 원주민'들이 가진 몸과 마음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대한민국 원주민/최규석/창비/11000원


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창비(2008)


태그:#최규석, #대한민국원주민, #최규석, #창비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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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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