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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향재는 변신중

모티프원의 앞집 청향재는 지금 변신중입니다. 송효섭교수님 부부는 1년전부터 정원가꾸기에 흥미를 붙였고, 올해 봄이 시작할 때부터는 두 분의 하루일과 중 정원돌보는 일에 할애하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습니다.

모티프원앞 청향재와 참나무골의 밤
 모티프원앞 청향재와 참나무골의 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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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의 이런 변화를 촉발한 이는 크레타의 김기호 선생님입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 청향재 정원을 방문하여 송 교수님께 거반 과제에 가까운 격려를 했지요.

정원에 관심과 조예가 깊은 임거 선생님과 송준 선생님과의 하룻밤 토론 후 정원 설계를 다시 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송준선생님의 신간 '게으른 자의 정원', 탈고 기념으로 청향재에 모여 한 잔을 나누는 자리에서 정원에 관한 다양한 담론이 안주로 올랐고, 청향재의 정원을 바꾸어 보자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송준선생님의 신간 '게으른 자의 정원', 탈고 기념으로 청향재에 모여 한 잔을 나누는 자리에서 정원에 관한 다양한 담론이 안주로 올랐고, 청향재의 정원을 바꾸어 보자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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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화의 첫 단계로 이웃들이 모여 즐거움을 나누는 회화나무 아래에 데크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7월 10일부터 8일간 몽골을 방문키로 되어있고 비자대행사로부터 제 사진과 여권을 보내달라는 독촉을 받고 있었습니다. 협박에 가까운 이 요구에 답하기 위해서 어찌하였건 제가 카메라 앞에 서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거 선생님이 DSLR카메라를 소지한 것으로 보아 사진실력이 범상치 않을 것으로 짐작한 저는 임거 선생님께서 데크작업을 하고 계신 청향재로 갔습니다.

청향재 정원에 데크를 설치하는 일에 임거 선생님을 비롯해 이철영 시인과 박웅준 전한국식물원협회사무국장 등 이즘 정원 일에 '필이 꽂힌' 분들이 함께 했습니다. 데크의 하부에 기초 나무의 틀을 짜고 그 사이에 수생식물을 키울 돌확과 회화나무를 배치하였습니다.
 청향재 정원에 데크를 설치하는 일에 임거 선생님을 비롯해 이철영 시인과 박웅준 전한국식물원협회사무국장 등 이즘 정원 일에 '필이 꽂힌' 분들이 함께 했습니다. 데크의 하부에 기초 나무의 틀을 짜고 그 사이에 수생식물을 키울 돌확과 회화나무를 배치하였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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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밀경찰이다!

사모님께서 마침 사이 참을 내오셨습니다. 함께 일손을 놓고 잠깐 참을 즐겼습니다.

"주한 몽골 대사관 영사과의 비자심사관이 수염에 대해 혐오하는 감정을 가진 자라면 비자발급을 유보하는 방식으로 저를 핍박할 것이 분명합니다. 임거 선생님의 사진솜씨를 빌리고 싶습니다."

저는 찐 감자와 구운 베이컨에 맥주를 들이키는 즐거움에 빠져 잠시 잊었던, 이곳에 온 이유를 실없는 농담을 곁들여 임거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말을 송교수님께서 받았습니다.

"옛 프랑스에서는 콧수염을 기르면 우파이고 턱수염을 기르면 좌파의 상징이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턱수염이 더 길므로 좌파에 가깝군요. 제가 검정한 사실은 아니지만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친구의 얘기니까 사실에 근거한 얘기일 수 있습니다."

송 교수님의 말을 자리를 함께하신 이철영 시인이 받았습니다.

"리비아에서는 위엄을 유지하기 위해 콧수염을 기르는 공무원들에게 콧수염 수당이 지급된다고 합니다."

임거 선생님이 다시 말을 받았습니다.

"나치 체제하에 게슈타포 요원들은 그 신분의 상징으로 콧수염을 기르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한 반체제 인사가 게슈타포를 자처하는 사람으로부터 길거리에서 불신검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인사는 항의를 하였습니다. '당신은 콧수염이 없지않은가? 그러므로 당신의 검문에 임할 수 없다.' 이 항의에 검문요원은 바지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는 비밀경찰이다!"

우리는 이 짬 시간의 수염에 관한 픽션과 넌픽션의 아포리즘aphorism에 파안破顔할 수 있었습니다.
공무원의 콧수염 수당이란 발상의 전환을 말한 것은 이철영시인입니다.
 공무원의 콧수염 수당이란 발상의 전환을 말한 것은 이철영시인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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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염에 전혀 공을 들이지 않습니다. 특별하게 길이를 조절하거나 모양을 다듬는 일도 전혀 없습니다. 단지 수염을 깎는 것조차 귀찮아 기른 수염이므로 더욱 그렇습니다. 왜 수염을 기르느냐, 는 질문을 받게 되면 단지 게으름의 소치인 수염을 저는 카스트로의 말을 빌려 미화시켜 답하곤 합니다.

"쿠바의 한 혁명가는 '면도를 하지 않음으로써 얻게 되는 매년 열흘의 시간을 혁명을 구상하는 데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수염을 방치함으로서 매년 열흘의 시간을 더 사람들과의 수다에 할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의도와 관계없이 저와 함께하는 일행들에게 수염에 관한 논쟁을 유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의 긴 수염은 저의 의도와 관계없이 수염논쟁을 유발하곤 합니다. _
 저의 긴 수염은 저의 의도와 관계없이 수염논쟁을 유발하곤 합니다. _
ⓒ 이두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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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단 여왕

지난 1월 아프리카 여행 중의 일입니다. 남아공에서 레소토 왕국으로 입국할 때였습니다. 국경의 비자 심사관 아주머니가 제 수염을 보고 황홀해했습니다. 그녀는 제 비자서류를 보는 대신 제 수염만 보고 비자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반면 헤이리 리앤박 갤러리의 박옥희 여사께서는 콧수염 일부를 잘랐으면 하는 의견을 말합니다.

송 교수님께서는 2년 전 안식년에 저의 종용에 의해 용기를 얻어 수염을 기르게 되셨고 소누스의 서현석 지휘자께서는 저의 강요에 의해 기르고 자르기를 반복하고 계십니다. 언덕위의 그림자 전희천 선생님은 사모님의 강력한 반발에 시도와 포기를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하지만 수염을 패션의 일부로 여긴다면 아무나 기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미지를 조악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서예가 소엽 신정균 선생님은 수염을 기른 남자들을 편애하곤 합니다. 이 분은 수염을 기른 남자의 최고는 다음 세 가지를 충족하는 사람이라는 기준을 가진 분입니다.

첫째는 구레나룻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반백斑白이고 머리숱이 적어야 한다.
셋째는 예술을 해야 한다.

'털 : 수염과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본 체모의 문화사(작가정신, 다니엘라 마이어, 클라우스 마이어 공저)'를 보면 '털은 왕의 신성한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염은 왕만이 기를 수 있는 것이었지요. 면도날의 제작 시기는 2만여 년 전으로 유추하는데 왕을 알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털을 밀어야 했을 사정에 맞추기 위한 발명으로 여깁니다.

이 왕의 권위의 상징이었던 것이 근대에 오면서 점점 저항의 상징으로 바뀌게 됩니다. 체 게바라나 칼 마르크스의 경우를 본다면 '수염이 좌파의 상징'이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겠습니다. 레닌, 호치민, 프리드리히 엥겔스, 피델 카스트로, 레오 트로츠키 등 그 외에도 적지 않습니다. 이 인물들의 면면만으로도 수염은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구제도)에 대한 저항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가 캐나다를 여행할 당시에 만난, 아프리카에서 오신 의사. 이 분은 정치적 박해를 피해 자신의 나라를 탈출한 다음 난민의 직위로 캐나다에서 포장마차를 하고 계셨습니다. 좌파인 이 분은 수염뿐만 아니라 레게머리도 썩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캐나다를 여행할 당시에 만난, 아프리카에서 오신 의사. 이 분은 정치적 박해를 피해 자신의 나라를 탈출한 다음 난민의 직위로 캐나다에서 포장마차를 하고 계셨습니다. 좌파인 이 분은 수염뿐만 아니라 레게머리도 썩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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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최초의 외과의사는 '털을 손질하는 면도사들'이었다고 말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수염을 기르는 것이 국법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탈레반 정권은 수염을 기르지 않을 경우 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습니다. 수염을 자른 이슬람교도 남자를 상상하기 어렵듯 현대문명을 배척하면서 18세기의 삶을 지키고 있는 제가 만난 기독교의 한 종파인 아미쉬Amish 마을의 남자들도 모두 수염이 나무의 나뭇잎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캐나다를 여행할 당시 만나 아미쉬 마을의 가장. 아미쉬 남자들은 대부분 수염을 기르고 있습니다.
 캐나다를 여행할 당시 만나 아미쉬 마을의 가장. 아미쉬 남자들은 대부분 수염을 기르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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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에서는 여왕들조차 권위의 확보를 위해 가수염假鬚髥을 붙였으며, 우리 조상님들에게도 수염은 위엄이었고 자신의 몸에 난 털 하나 상하지 않는 것이 효도이기도 했습니다.

리비아의 콧수염 장려금과 달리 러시아의 차르 표트르1세는 수염에 과세를 했다고 합니다. 이 표트르 대제가 수염을 깎도록 명했던 것은 구한말의 단발령처럼 정치적, 문화적, 사상적 전환을 의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어에는 수염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대신 'mustache콧수염'와 beard턱수염, whiskers구레나룻처럼 세분된 용어가 있을 뿐입니다.

청향재, 무대를 갖다

단지 좀 더 게으르기 위해 기른 저의 수염이 매 시대 이처럼 정치적, 사회적으로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었음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은 청향재의 데크 작업 때문입니다.

이 작업을 위해 주인인 송효섭 교수님과 이 정원의 사부인 김기호 선생님, '게으른 자의 정원'이란 책의 출간을 앞둔 송준 선생님, 건축가 김효만 선생님이 1998년에 설계한 임거당林居堂의 주인이었으며 부인(영국에서 가든 디자인을 공부하며 '소박한 정원 : 꿈꾸는 정원사의 사계'를 내신 오경아작가)과 함께 정원 일에 푹 빠져버린 임거 임종기선생님, 그리고 청향재의 이웃인 저와 함께 하루 밤과 낮을 토론한 뒤에 결정한 데크작업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터치아트진영희 사장님께서 화초 몇 포기 옮겨가는 어부지리가 있었습니다.

다음날 임거 선생님은 지금까지의 삶에서 전환을 도모하고 계신 이철영 시인과 박웅준 전 한국식물원협회사무국장을 모셔서 바로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산바치이신 김금자 선생님께서 다시 식물을 재배치하실 계획입니다.

작업을 마치고 보니, 아담한 무대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보니, 아담한 무대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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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 아래 멋진 로즈마리라는 별칭을 가진 남미산 천연방부목 마사란두바Massaranduba 데크위에서 한미란 사모님의 벨리댄스 그룹 공연을 끝까지 사양한다면 헤이리 수염클럽 발대식을 이곳에서 치러야겠습니다. 이 데크가 늘 공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파라솔 있는 테이블의 받침으로만 쓰일 수는 없습니다.

참나무골의 9월 문화공연도, 이웃 간에 함께하는 강연과 정원음악회도 부족함 없이 쓰일 수 있겠습니다. 9월에 있을 '2009 헤이리 판 페스티벌'에서 계획 중인 버스킹 공연장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필요하면 객석은 청향재의 마당뿐만 아니라 이웃집 빈우당의 마당과 모티프원의 정원까지도 연장될 수 있겠습니다. 수염은 이렇게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합니다.

이 로즈마리 데크에 몇개의 촛불을 밝히는 것만으로 여름밤의 파티준비는 끝입니다. 이 촛불에 몇병의 맥주와 수다가 곁들여지면 밤 깊어지는 줄 모릅니다.
 이 로즈마리 데크에 몇개의 촛불을 밝히는 것만으로 여름밤의 파티준비는 끝입니다. 이 촛불에 몇병의 맥주와 수다가 곁들여지면 밤 깊어지는 줄 모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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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과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수염, #정원, #청향재,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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