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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17+i, 사진의 발견

- 글ㆍ사진 : 김윤수

- 펴낸곳 : 바람구두 (2007.1.2.)

- 책값 : 16000원

 

 (1) 삶이 없는 사진이란

 

 제가 2007년 4월부터 꾸리는 '사진책 도서관'이 깃든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으로 '사진 찍으러' 찾아오는 바깥 손님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동네 한복판을 가로지르게 될 산업도로 공사를 밀어붙이는 인천시 개발계획에 맞서는 동네사람 싸움이 여러 해째 이어지는 가운데, '곧 사라질는지 모를 골목길' 모습이라 하면서 사진을 찍으러 옵니다.

 

 사진을 찍으러 오는 이들은 사진을 수없이 찍습니다. 쉬지 않고 사진을 찍습니다. 제가 일하는 도서관에 와서도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기는 하여도, 스스로 찍는 골목길을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사진기에 눈을 박느라 바쁘고, 맨눈으로 골목집과 골목꽃과 골목사람과 골목풀과 골목나무를 살피고 맨손으로 어루만져 보고 말마디를 나누려는 몸짓은 거의 어느 누구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제가 열어 놓은 '사진책 도서관'에서도 '촘촘히 꽂힌 사진책'을 한 권쯤이나마 끄집어 내어 펼쳐 보려는 손길은 매우 드뭅니다. 그저 사진찍기에 바쁩니다.

 

 보다 못해 사진만 찍어대는 사람을 '다른 사람 책 보기에 걸리적거리니 나가 주셔요' 하고 내쫓았고, 도서관 문간에 쪽지를 하나 붙였습니다. '책을 읽으라고 마련한 도서관에서 정신없이 사진만 찍으려고 하는 분은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 한 그릇 잡수시고 집으로 돌아가 주셔요'라 적어 놓은.

 

.. 정말이지 선생님은 모르는 풀과 꽃과 나무가 없는 것 같았다.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많은 풀과 나무들의 이름을 다 알아요?" 선생님은 동그래진 내 눈을 바라보며 특유의 눈꼬리가 올라간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 풀과 나무들과 같이 자랐으니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거든." ..  (14쪽)

 

 사진은 '적바림'입니다. '새겨 놓음'입니다. 한자말로 바꾸면 '기록'입니다. '각인'입니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적바림하거나 새겨 놓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 내가 부대끼거나 스친 사람들을 적바림하거나 새겨 놓는 일입니다. 내가 발디디는 동네 모습을 적바림하고, 내가 어울리는 동네 삶터를 고스란히 새겨 놓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모습을 찍든 저런 모습을 찍든, 사진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찍는 셈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 삶 찍기"가 사진찍기요, "삶을 적어 놓기"가 사진찍기입니다.

 

 

.. 어떤 공간은 나의 과거 속 기억을 일깨워 주기도 하고, 어떤 공간은 자꾸만 탐험하고 싶도록 호기심을 자극하며, 어떤 공간은 불편하고 답답한 기운이 숨을 죄어 오기도 한다. 이것은 허름하거나 고급스럽다의 문제는 전혀 아니다. 허름해도 진짜가 많고, 화려할수록 두려운 가짜가 많은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  (51쪽)

 

 사진을 찍는 사람은 '나 아닌 다른 사람 삶'을 찍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내 모습 찍기'가 아닌 '남 모습 찍기'일 테니까요. 그런데, 남 모습을 '내 눈길에 따라' 찍습니다. '내 눈높이에 따라' 찍습니다. '내 마음그릇에 따라' 찍고, '내 생각줄기에 따라' 찍습니다. '내 나름대로' 찍는 사진이요, '내 깜냥껏' 찍는 사진이며, '내 솜씨만큼' 찍는 사진입니다.

 

 언뜻 보기로는 '나 아닌 삶'을 찍는 듯한 사진이지만, 알고 보면 '다름아닌 내 삶'을 찍는 사진입니다. '내가 들여다본 대로 찍는다'는 소리는, '나한테 보여지는 대로 찍는다'는 소리이며,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만큼 나한테는 이렇게 보이니 이대로 찍는다'입니다. 이리하여 내 사진에 찍힌 세상사람 모습은 바로 '나 사는 모습'이며 '내 삶'입니다.

 

 속깊이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는 사람은, 그이 삶이 바로 속깊이 사랑스럽다는 뜻입니다. 겉으로만 예쁘장한 사진을 찍는 사람은, 그이 삶이 겉으로만 예쁘장해 보이도록 꾸민다는 뜻입니다. 머나먼 딴 동네에서 그럴듯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당신 곁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보듬는 가슴이 없이 겉치레 해바라기에 매여 있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돈 되는 사진만 찍는 사람은, 그 사람 마음에 돈벌기만 들어차 있다는 뜻입니다.

 

.. 그러면 스타일은 무엇일가? 내가 본 대로, 느낀 대로, 경험한 대로 뒤죽박죽 정의를 내리자면 스타일은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오감을 통해 자극되어진 모든 행위의 집합체이다. 무엇을 먹고, 입고, 듣고, 읽고, 느끼고, 웃고, 분노하고, 울고, 찡그리고, 만나고, 헤어지고, 걷고, 달렸는가가 고스란히 내 몸에 축적되어진 결과물이다. 그래서 스타일은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고 재생되는 훈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어느 날 세계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의 마법의 손길로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  (67쪽)

 

 그래서 저는 사진을 보면서 그 사람 삶을 읽습니다. 글을 읽으면서도 그 사람 삶을 읽습니다. 글과 삶과 사람은 다르다고들 하지만, 제가 겪고 느끼고 생각하고 돌아보고 부대끼기로는, '글과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글과 다른 삶' 또한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있어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쓴 글하고 삶은 똑같지만, 옷입히기 잘하는 사람들 손놀림(글재주)에 빠져들면서 참모습을 못 보기도 합니다. 어리석은 읽는이가 되면 글쓴이 속내를 못 읽어요. 저부터 이와 같았고, 저부터 이런 길을 걸었습니다.

 

 어쩌면, 아니 마땅히, 저 스스로 아직 슬기로운 읽는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조금씩 갈고닦으며 거듭나는 읽는이라고 느낍니다. 잘못 읽거나 어설피 읽거나 어리석게 읽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저를 믿습니다. 잘 읽으면 잘 읽은 대로 믿고, 잘못 읽으면 잘못 읽은 대로 믿습니다. 잘 읽어 흐뭇한 사람하고 사귀는 삶은 흐뭇함 그대로 즐기고, 잘못 읽어 뒷통수를 맞거나 쓴맛을 보게 되면 뒷통수 맞기와 쓴맛 보기를 달게 받아들입니다.

 

 

.. 가정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가? 그 도서관에는 얼마나 자주 새 책이 투입되는가? 당신은 이 도서관의 성실한 열림자인가? 책들의 호흡주기를 파악하고 있고, 가지런히 꽂힌 책들이 뿜어내는 광채가 온 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면 당신은 부자이다 … 2000년, 오사카에 있는 안도 타다오의 작업실에서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를 만나러 3층으로 올라가기까지 내 눈에 비친 지하부터 지상까지 그의 작업실은 건축사무소라기보다는 하얀색 도서관이었다. 그가 얼마나 많이 책과 대화하고 살았는지, 또 살고 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첫 인상이었다. 나는 책장 가득 빽빽이 꽂힌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권위적이지 않은 대화법과 아주 쉬운 단어로 안도 타다오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쉼 없이 과묵하게 일하는 자기 자신에게 아주 솔직한 건축가였다 ..  (104, 115쪽)

 

 올해 2009년에 접어들면서, 인천으로 골목길 사진을 찍는다며 마실 오는 사진쟁이들을 많이 만납니다. 2010년이 되고 2011년이 되면 훨씬 더 늘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에서는 웬만한 골목길이 재빨리 사라지는 탓인데, 웬만한 서울 골목길이 수없이 사라지고 있다고는 하여도, 사랑스레 살아남아 고스란히 이어가는 골목길 참모습을 옳게 읽어내는 눈썰미가 없는 탓이기도 하다고 느낍니다.

 

 이 사진쟁이들은 '골목길은 이래야 하거든' 하면서 '어떤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앞선 다른 이들이 찍은 골목길 사진만 똑같이, 또는 비슷하게, 때로는 잔뜩 멋과 예술감각(?)을 불어넣으며 찍습니다. 50만 원짜리 사진기로, 100만 원짜리 사진기로, 200만 원짜리 사진기로, 1000만 원짜리 사진기로, 두어 시간 '전철역 둘레 1km 안팎을 오가며' 찍습니다.

 

 옆에서 이분들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참으로 멋스럽게 찍으려 하는구나 싶은데, 이분들 사진을 곰곰이 들여다보노라면, 이분들은 '골목길을 찍으려고 인천에 오지는 않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골목길이라 이름붙은 유행을 찍으려고 잠깐 서울 밖으로 나와 보았다'는 느낌만 짙습니다.

 

 골목길을 다루는 글도, 사진도, 그림도, 영상도 매한가지입니다. 헌책방을 다루는 글 사진 그림 영상 또한 매한가지였습니다. 아기를 다루어도, 연예인을 다루어도, 문화재를 다루어도, 섬마을을 다루어도 매한가지일는지 모릅니다.

 

 스스로 먼저 삶을 일구면서 사진기를 들지 않으니까요. 스스로 당신들 삶을 알차게 가꾸는 가운데 사진기를 들지 않으니까요. 사진기를 너무 일찍 들고 마니까요. 사진기만 뻘쭘하게 들고 있을 뿐이니까요. 어떤 사진기가 좋으냐 따질 줄은 알아도, 당신 삶을 어떻게 꾸려야 아름다운가를 돌아볼 줄은 모르니까요. 사진기 장만하려고 카드를 긁을 줄은 알아도, 당신 삶을 아름다이 가꾸는 길을 찾고 생각하며 품과 땀과 시간을 들일 줄은 모르니까요.

 

 

 (2) 삶을 말할 줄 알면 사진을 말할 수 있다

 

 '사진가 열일곱 사람'을 말하는 사진비평 《17+i, 사진의 발견》을 읽습니다. 이 책은 틀림없는 사진비평입니다. 그러나 글쓴이 김윤수 님은 '아무개 사진은 이렇고 저무개 사진은 저렇다'는 말을 토씨도 내비치지 않습니다. 딴소리라고 할는지, 엉뚱한 소리라고 할는지 모를 이야기만 길게 늘어붙입니다.

 

 그런데 이런 딴소리 늘어뜨리기가 외려 '아무개 사진은 아무개가 이런 흐름으로 당신 삶을 가꾸기 때문에 이런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은 어떻게 찍는가? 어떻게 담아야 좋은 사진인가?' 하는 소리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삶이란 무엇인가? 삶은 어떻게 꾸리는가?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가?' 하는 소리만 잔뜩 늘어놓는데, 이런 소리가 고스란히 '삶 = 사진'이라는 흐름과 맞아떨어지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해 줍니다.

 

.. 나는 서울을 대놓고 비난할 수도, 또 아주 예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편파적일 수 없는 것은 서울은 어쩌면 내 모습의 일부이고 나를 가장 편안히 감싸 안을 수 있는 공기이기 때문이다 … 나는 서울의 지도를 펼쳐 놓고 서울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복잡한 지도 속의 동네 이름들을 보면서 서울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서울에서는 한가로운 멋을 찾을 수도, 즐길 수도 없다. 이른 아침 까페나 공원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색하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시간이 한가하면 돈이 없고, 돈이 없으면 시간이 없다는 논리가 지배적인 이곳에서 한가한 사람은 할 일 없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돈이 있어야 비로소 사색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갖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온종일 학원으로 과외로 내몬다. (나 또한 그런 엄마가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 13년 동안 기자로 일하면서 나의 일상은 다이어리의 칸이 넘치도록 이어지는 스케줄의 연속이었다 ..  (165쪽)

 

 책을 손에 쥐고 나서 한 시간 만에 훌떡 읽어치웠습니다. 말 그대로 읽어치웠습니다. 가볍고 밝고 싱그럽게 쓴 글입니다. 꾸미지 않고 내세우지 않으며 우쭐거리지 않습니다.

 

 사진비평을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놀라고, 우리 나라에도 이만한 사진비평이 하나쯤 나왔다는 데에서 반갑고 기쁩니다. 이 나라 사진쟁이 숫자는 열일곱 사람만이 아니기 때문에 두 번째 《17+i, 사진의 발견》도 나옴직하지만, 아직까지는 새로운 책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고 가슴 설레며 기다려야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 서울에서 할 수 없는 또다른 일은 보석이 되는 것이다. 나는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한다. 예측할 수 없는 돌출 행동과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언어의 조합이 언제나 기막히게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여섯 번째 감각은 특별한 영혼을 가진 아이를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 서울이라는 곳은 여리고 순수한 영혼을 돌보아 주지 않는다. 이 무궁무진한 원석을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으로 다듬지 못하고, 둥글게 멋없이 깎아 돌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선 '돌이 되어야 살기 편하지'라며 위로하곤 한다. 세상은 보석들이 많아야 정교하게 빛나는데, 서울은 점점 더 돌들만 가득해지고 있다. 그것도 애교 넘치는 자갈돌이 아닌 울퉁불퉁한 바윗둘로만 가득 차 있어 발을 다칠까 멍이 들까 늘 두렵다. 서울에서 할 수 없는 마지막 일은 대화를 하는 것이다 ..  (169쪽)

 

 다만, 글쓴이 김윤수 님이 만난 사진쟁이 열일곱 사람이 '이래저래 비슷한 사진길을 걷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상선, 배병우, 양현모, 윤석무, 박경일, 김지양, 구본창, 이윤진, 조정환, 김현성, K.T.KIM, 오형근, 최민호, 박기호, 문형민, 박지혁, 천경우, 이렇게 열일곱 사람 가운데 K.T.KIM이라는 분 사진만 살며시 다르다는 느낌일 뿐, 다른 열여섯 사람은 어슷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틀림없이 이 열여섯 분 사진은 다 다른 갈래 다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사진 매무새와 사진 생각은 한동아리가 아닌가 싶어요.

 

 좀더 테두리를 넓혀 더 많은 사진쟁이를 만나 보았다면, 아주 배고프게 사진일을 붙잡는 사진쟁이도 만나 보았다면, 오래오래 사진끈을 붙잡던 사진쟁이도 만나 보았다면, 도시나 도시와 가까운 데에서 사는 사진쟁이 말고 도시와 먼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진쟁이도 만났더라면, 서울 테두리를 넘어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로도 나가 보았다면, 하다 못해 수도권이라는 틀에서 사람들과 만나 보기라도 했다면, 또한, '만드는' 사진이 아니라 '꾸밈없는' 사진을 조용히 찍는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 보았다면, 이 책 《17+i, 사진의 발견》은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한껏 뽐내거나 빛낼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두 번째 사진비평을 더 기다립니다.

 

.. 많은 사람들은 돈을 잃으면 몇 날 며칠을, 길게는 수 년을 애통해 하고 술을 벗 삼아 지내면서도, 자신의 기록을 잃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기록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소중한 선물이다 ..  (193쪽)

 

 이제 겨우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이제 겨우, 우리 사진밭에 발맞춤하는 사진비평 걸음마를 밟았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멉니다. 머나먼 갈 길을 앞두고 지쳐서 그만둘 수 있다지만,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기보다는, 좀더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고 걸려넘어지기까지 하면서 새로운 사진비평 발자국을 아로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삶을 말하면서 사진을 말하는 이음고리를 사랑하고, 삶을 밝히면서 사진을 밝히는 이음쇠를 믿으며, 삶을 가꾸며 사진을 가꾸는 이음마당을 아끼는 길찾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진리는 여행에도 적용된다.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자, 카페에서 우유크림이 수북한 카푸치노 한 잔 마실 여유도 없는 숨가쁜 일정을 짜곤 한다. 그리고는 피곤에 지쳐 뭘 얻었는지 모르는 채,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관광지 사진만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 여행은 정신 수양을 위한 것도, 이야깃거리를 만들러 가는 것도 아니다. 가장 편안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의 나로 돌아가서 자연의 나와 만나고 오는 시간이다 ..  (203쪽)

 

 저는 오늘 하루도 아기 사진 스무 장 남짓, 골목길 사진 서른 장 남짓 찍었습니다. 조금 뒤 낮밥을 느즈막히 먹은 다음, 또는 낮밥을 거른 다음 아기를 안고 동네 마실을 나가면 쉰 장이나 일흔 장쯤 골목길 사진을 더 찍으리라 봅니다. 내일쯤 서울마실을 나가면 헌책방에도 들러 헌책방 사진 서른 장 남짓 찍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대로 사진을 찍으니 날마다 즐겁고, 날마다 즐겁게 사진을 찍으니 내 사진을 내가 보면서도 웃음이 나고 눈물이 핑 돕니다.

 

 제 사진을 마음에 들어하는 동네 이웃한테는 거저로 주고, 제 사진을 좋아해 주는 도서관 손님한테는 사진 한 장에 천 원에 팔곤 합니다(조금 큰 판은 종이값이 드니까 이천 원이나 사천 원을 받곤 합니다). 누군가는 '작품사진을 고작 천 원에 파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못해도 10만 원은 받아야지요?' 하고 도움말씀을 해 주시는데, 저로서는 '작품사진이라면 더더욱 천 원만 받으며 팔고' 싶어요. 싸구려로 넘기는 사진이라기보다, 나도 천 원에 팔고 당신도 천 원에 팔면서, 서로 홀가분하게 수많은 사진을 언제나 듬뿍듬뿍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사진삶이 즐겁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17 + i 사진의 발견 - 'i' 김윤수와 함께 17人 17色 사진의 정원을 거닐다

김윤수 지음, 바람구두(2007)


태그:#사진, #사진책, #사진찍기, #책읽기,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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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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