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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 저녁, 우리는 특별한 밥상을 받았습니다. 손님으로 오신 할아버지 한 분이 소고기를 사 오셔서 직접 끓이신 국으로 맛있는 저녁을 먹었지요. 소고기국 제대로 끓이는 법을 가르쳐 주시겠다며 아내를 옆에 세우고 세 시간 쯤 정성들여 끓인 소고기국을 함께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소고기에 양파와 무 그리고 버섯과 다시마를 넣고 끓이면서 위에 뜨는 붉은 색 국물을 모두 걷어 내는데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고깃덩어리를 건져내 살결대로 쭉쭉 찢어서 따로 국에 얹어 먹는 소고기국은 주부 경력 20년인 아내가 감탄할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손수 국을 끓이시는 선생님
 손수 국을 끓이시는 선생님
ⓒ 공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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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대접만 하다가 손님이 끓인 국에 밥상을 받으니 아내는 신이 난 모양입니다. 그것도 일흔 일곱 연세의 할아버지께서 세 시간을 끓인 국을 감사한 마음 없이 어찌 먹겠습니까? 제법 큰 국솥에 가득 끓여서 남는 것은 '공학생'한테 몇 끼 먹이라시며 우리 부부를 격려해 주시니 고맙고 고마울 수밖에요.

선생님께서 끓이신 국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끓이신 국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 공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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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걸어서 열 바퀴

2007년 12월 16일에 남상범 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우리나라를 걸어서 열 바퀴 돌아 보시겠다 뜻을 정하시고 다섯 바퀴째 걷는 중 우리 집에 오셨습니다.  일흔 다섯 연세의 할아버지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건강해 뵈었습니다. 특히 종아리는 청년들보다 더 굵고 단단해 보여 만나는 사람들이 일부러 만져 보기도 한답니다.

걸어서 우리나라를 10바퀴 돈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쉽겠습니까? 더욱이 일흔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20kg 가까운 배낭을 지고 하루도 쉬지 않고 걷는 일은, 삼보일배나 오체투지에 버금가는 고행일 수 있을겁니다. 저도 20대 시절에, 무전 도보 여행을 해 본 경험이 있는 탓에 짐을 지고 혼자 걷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잘 압니다. 그래서 하룻 밤 묵으시고 길을 떠나시는 할아버지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선생님, 우리 집에 빈 방이 많으니 가까이 오시면 다른 데 숙소 정하지 말고 오십시오. 여섯 번 째, 일곱 번 째… 늘 오셔서 하루 쉬어 가세요. 다른 건 몰라도 잠자리와 식사는 대접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맺은 인연을 잊지 않고 이어 주시는 선생님이 고마와서 선생님께서 오시면 오랜 시간 함께 차를 마시며 선생님의 이야기에 빠져 우리도 전국을 한 바퀴 돕니다. 한 번은 동해 쪽으로, 한 번은 서해 쪽으로 방향을 정해 땅과 바다가 만나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만 걷는데 걸리는 기간이 서너 달, 거리로는 대략  2500km, 그리고 일년에 두 바퀴를 도신다고 합니다. 올 가을에 한 바퀴 더 도시고 내년에 마지막 열 바퀴째를 도실 계획이랍니다.

"10바퀴 돌고 나서 책을 쓸거야"

올해 일흔 일곱이신데 우리나라를 여덟 바퀴 째 걷고 있습니다.
▲ 남상범 선생님 올해 일흔 일곱이신데 우리나라를 여덟 바퀴 째 걷고 있습니다.
ⓒ 공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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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면 말이야, 우리나라 곳곳을 다 망쳐 놓았어. 그 좋은 비경을 가만 두지 못하고 다 파헤쳤단 말이야. 도로 공사는 어찌 그리도 많이 하는지, 도로 더 내자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혼을 내야 해."

서울대 병원에서 의사와 교수로 재직하시다가 퇴임하신 뒤, 병든 우리 국토를 진단하고픈 마음에서 걷기 시작하셨다는 선생님께서는, 전국을 돌며 본 개발의 현장들을 개탄하시며 우리 사전에서 '개발'이라는 단어를 빼버려야 한다는 격한 말씀도 하셨습니다.

걷는 가운데 만난 좋은 사람들 이야기와 신음하는 우리 땅 이야기를 함께 들으니, 사람과 우리 땅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선생님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시골 사람들의 딱한 이야기를 들으면 후배 의사에게 부탁해서 도움을 받도록 주선하는 모습을 보고, 책을 통해 읽은 슈바이처 박사나 장기려 박사를 직접 만나는 듯 했습니다.

"아, 시골 사람들 말이야, 평생 농사 지어서 도시 사람들 먹여 살렸는데,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 안되겠어?"

어제도 전화로 후배 의사한테 어려운 환자를 부탁하고, 너털웃음을 웃으시는 선생님을 뵙자니 어떤 삶이 가치가 있고 잘 사는 것인지 알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동안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책으로 엮어 내실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사람 몸을 진단하고 치료하던 의사의 눈으로 우리 강산 곳곳을 걸으며 진단한 결과가 어떨지 모르지만 '신음하는 한반도'라는 선생님 말씀으로 볼 때, 심한 중병에 걸린 것은 사실인가 봅니다.

선생님, 9바퀴, 10바퀴 째도 또 오십시오

저희 집에 이틀을 묵으시고 길을 떠나시기 전 신발끈을 묶으시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저희 집에 이틀을 묵으시고 길을 떠나시기 전 신발끈을 묶으시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 공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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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어른이 없다'고 이야기 하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내로라하는 저명한 인사들이나 정치인들이 많지만 모두 이름값을 제대로 못 하는 탓에 듣는 말이겠지요. 정치와 경제가 여러가지로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요즈음,  곁에서 정신적으로 힘이 되어 줄 어른을 우리는 갈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길을 떠나시려고 신발끈을 매시는 선생님의 뒷 모습을 보며, 우리 땅과 사람을 아끼시는 선생님이야말로 시골에서 내가 만난  큰 어른이라 생각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선생님께서는 다음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걷는 중에 만난 좋은 사람이 대신 운영을 해 주신다 합니다
다음 카페 "남상범 대한민국 25000km를 걷는다 " http://cafe.daum.net/mi5267



태그:#남상범, #섬진강 , #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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