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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 책과 소리 :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손전화를 함부로 받으면,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준다. 때로는 쫓겨나게 된다. 새책방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손전화를 함부로 받으면, 그리 눈치를 주지 않고 쫓아내지도 않으나 영 볼꼴사납다. 헌책방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손전화를 함부로 받으면, 따로 눈치를 주는 사람이 없고 내버려 두기는 하지만 더없이 볼썽사납다.

우리가 책을 만나고 읽고 새기는 자리는 아주 조용해야만 하지는 않다. 책은 소리내어 읽을 수 있고, 소리내어 읽는 책이 한결 나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읽어 나한테만 좋은 책일 때라면 어찌 될까나. 다른 이는 그리 좋아하지 않거나 마땅히 여기지 않는 책을 나한테만 좋다고 소리내어 읽는다면 어찌 되나. 우리한테는 우리가 좋아하는 책을 찾고 살피는 자유와 권리가 틀림없이 있다만, 우리 아닌 다른 사람 또한 그이들 나름대로 그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찾고 살피는 자유와 권리가 버젓이 있지 않을까. 두 자유와 권리가 부딪히거나 한쪽이 눌리지 않게끔, 도서관에서든 새책방에서든 헌책방에서든, 우리는 말소리를 낮추고 손전화는 되도록 밖에 나가서 받으며, 어쩔 수 없이 안에서 받아야 한다면 아주 소리를 낮추는 가운데 둘레 사람한테 마음을 쏟아 주어야지 싶은데.

누구나 책을 조용하고 아늑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저희가 좋아하는 책에 온몸과 온마음을 쏟아부으며 빠져들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느긋하게 살피고 넉넉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도서관에서는, 또 새책방에서는 없는 일인데, 헌책방에서는 곧잘 아주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에다가, 담배 태우는 사람까지 보게 된다. 헌책방 헌책을 깔볼 뿐 아니라, 둘레 다른 책손을 얕보기 때문에 이렇게 된다고 본다. 나 스스로 나조차 제대로 볼 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구나 싶다. 나를 모르니 내 이웃을 모르고, 나를 살피지 못하니 내 둘레를 못 살피게 되지 싶다.

때로는 조금 넉넉하게 비어 있다가도, 어느 때 빽빽하게 꽂히게 되는 헌책방 책시렁.
▲ 헌책방 책시렁 때로는 조금 넉넉하게 비어 있다가도, 어느 때 빽빽하게 꽂히게 되는 헌책방 책시렁.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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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 기다리기와 찾아나서기 1 : 판이 끊어진 책을 찾으려면 도서관에 갈 수 없다. 우리 나라 도서관은 나날이 새로 쏟아지는 책을 갖추려고 살림을 꾸준히 늘리지 않기 때문에. 드물거나 보배 같은 책을 챙기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오래도록 학문 한길을 파던 이가 저승사람이 되고 나서 쏟아지는 책을 간수할 자리를 따로 마련해 놓지 않기 때문에.

판이 끊어진 책을 찾으려면 헌책방을 찾아나서야 한다. 바라는 그날 그곳에 그 책이 있기는 어렵지만, 하늘이 돕는다면 반가이 만날 수 있다. 누군가 찾을 만한 사람이 있다고 믿으면서, 헌책방 일꾼은 책을 함부로 버리지 않으니까. 이리하여, 판이 끊어진 책을 찾고자 헌책방에 찾아오는 분들은, 헌책방 일꾼한테 쪽지를 남기며 찾아 달라는 말을 하곤 했다. 다만, 요사이는 따로 쪽지를 안 남긴다. 요사이에도 쪽지를 남기는 이들이 있으나, 하루하루 새로 생겨나는 '인터넷 헌책방' 게시판을 뒤지면서 집구석에서 셈틀 앞에 앉아 있을 뿐이다.

인터넷을 또닥거리면서 살펴본다면, 틀림없이 훨씬 짧은 동안 더 많은 곳을 살필 수 있다. 품이며 돈이며 덜 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참말 품이며 돈이며 덜 들었을까.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책 하나만 찾으면 되었을 뿐일까. 우리는 왜 책 하나를 찾으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판이 끊어진 다음 무엇하러 그렇게 땀흘려 책 하나 찾으려고 했을까. 책 하나에 무엇이 담겨 있기에? 책 하나가 무어 그리 대단하기에?

(039) 어버이와 스승과 책 : 어버이는 우리한테 좋은 밥을 차려 주는 분. 그러나 차려 준 밥을 떠먹이지는 않는 분. 스승은 우리한테 옳고 바른 길을 보여주는 분. 그렇지만 하나하나 가르치며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일러 주지는 않는 분. 책은 우리한테 참살길과 즐거움과 보람을 알려주는 길잡이. 그런데 무엇이 참살길이며 어떤 즐거움이 값지고 보람이란 언제 느끼게 되는지는 낱낱이 적어 놓지는 않는 조용한 마음벗.

(040) 일본사람이 쓴 책 읽기 : 철이 없던 한동안(아직도 철은 제대로 들지 않았다고 느끼지만), 일본사람이 쓴 책은 읽지 않았다. 아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문학이든 어린이책이든 인문학이든 사진책이든 헤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일본사람 책 하나를 만나면서 내 어리석은 울타리를 내 손으로 허물었다. 내가 읽어야 할 책과 내가 안 읽어도 되는 책이란 무엇인가를 새로 헤아려야 한다고 느끼면서.

마음에 어설피 세웠던 울타리를 허물던 지난 철없던 날, 내가 손사래를 쳐야 할 책이라면, 우리를 억누르고 못살게 굴었던 '일본'사람이 쓴 책이 아니라, '우리를 억누르고 못살게 구는' 사람이 쓴 책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를 억누르고 못살게 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직 내가 이런 사람보다도 못나거나 모자라거나 어리석은 대목이 있으면 눈물을 머금고 고개숙이며 배워야 한다고 느꼈다.

내가 가까이하면서 고마이 배우면서 삭여내어야 할 책이란, 어느 갈래를 다루든 옳고 바르고 슬기롭게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책이다. 내가 꺼리면서 멀리해야 할 책이란, 내가 아주 좋아하는 갈래를 다루었다 하여도 돈과 이름과 힘에 끄달리는 겉발림과 껍데기 눈속임으로 떡발린 책이다.

가을날, 은행잎이 금가루처럼 흩뿌린 길가 앞에 서 있게 된 헌책방. 아니, 가을마다 헌책방 앞마당은 금빛으로 물들게 되는 모습.
▲ 가을날 헌책방 가을날, 은행잎이 금가루처럼 흩뿌린 길가 앞에 서 있게 된 헌책방. 아니, 가을마다 헌책방 앞마당은 금빛으로 물들게 되는 모습.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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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책 만드는 사람과 책 읽는 사람 : 책을 만드는 사람은 스스로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 자기가 만들고 싶지 않으나 돈 때문에, 끈과 줄 때문에, 어쩌는 수 없이, 정치권력 힘에 밀려서 만든다면, 제 마음에도 안 들 테지만 우리 삶터를 비틀거나 망가뜨리는 종이쓰레기를 쏟아낼 뿐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 한다. 처음부터 저한테 알맞으면서 참말로 좋은 책을 헤아리거나 찾기란 어렵겠지. 그래도 스스로 어떤 책을 읽고 싶어하는지를 뚜렷하게 생각하고 갈피를 잡으며 하나하나 찾아서 읽어야 한다. 그러면 된다. 괜히, 남들이 좋다고 하는 책, 억지로 손에 쥐어 읽어야 하는 책, 독후감 쓰기나 숙제나 시험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 선물 받아서 이냥저냥 읽어야 하는 책, 겉멋을 키우는 책, 독재정권에서 사람들을 짓누르고자 억지로 읽히려던 책을 가까이 하다 보면, 저 스스로한테도 도움이 안 되지만 우리 삶터를 알뜰히 가꾸거나 돌보는 데에서도 걸림돌이 될 뿐이다.

(042) 책장사꾼 : 어떠한 출판사이든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장사를 생각하지 않기란 어렵다. 품삯을 많이 치러야 하니, 이 품삯을 뽑으려면 팔리는 책을 내야겠고, 팔리는 책을 내자니 이 땅과 이 터전에 빛이 되지 않더라도 돈이 될 수 있으면 가까이하게 된다. 이러면서 차츰차츰 빛이 되는 책보다 돈이 되는 책으로 빠져들고 길들고 찌들어 버린다. 돈에 눈이 먼 장사꾼 수렁에 풍덩 빠져 버린다. 좋은 책을 널리 팔아 즐겁게 돈을 벌어 알뜰살뜰 살림을 꾸리고 더 좋은 책을 만들려는 '일'은 어느새 잊고, '그저 돈 많이 버는 장사'를 멈추지 못하게 된다.

(043) 어느 책이든 : 어느 책이든 허투로 만들 수 없고, 어느 책이든 그냥 살 수 없으며, 어느 책이든 대충 읽을 수 없는 가운데, 어느 책이든 아무한테나 읽으라 할 수 없다.

엄마가 잠든 사이 아기가 몰래 깨어나 책 뜯기 놀이를 합니다. 책이라고 느껴서 뜯는다기보다 오래되어 헐어 버린 책 꼬투리를 잡아당기는 놀이가 재미있다고 느낀 듯합니다. 그러나, 아빠한테 들켰습니다.
▲ 책 뜯기 놀이 엄마가 잠든 사이 아기가 몰래 깨어나 책 뜯기 놀이를 합니다. 책이라고 느껴서 뜯는다기보다 오래되어 헐어 버린 책 꼬투리를 잡아당기는 놀이가 재미있다고 느낀 듯합니다. 그러나, 아빠한테 들켰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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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 삼성전자에서 일하면 냉장고 줘야 하느냐? : 어느 출판사 편집장이 당신 동무하고 부대낀 일을 술자리에서 푸념으로 내뱉는 한 마디. "너(그 출판사 편집장 동무)는 삼성전자에 가서, 거기서 일한다고 냉장고 달라고 하느냐?" 당신을 안다는 사람을 만날 때면, "책 좀 한 권 줘."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데, 당신이 피와 땀으로 만든 책을 거저로 받아먹기만 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밉고 괴로워 못 견디겠다고. 당신 동무도 동무이지만, 기자란 놈들도 툭하면 책 달라 하지 않나, 거래처에서도 심심하면 책 달라 하지 않나 하는데, "책 한 권 준다고 뭐 어때서?"라는 말이 덧달리면 꼭지가 돌아 버린다고.

아무렴. 빵집에서 일하는 동무한테 빵 거저 달라 할 수 있나. 농사짓는 동무한테 쌀 거저 달라 할 수 있나. 신집 동무한테 신 한 켤레 거저 달라 할 수 있나. 택시 모는 동무한테 택시삯 받지 말라 할 수 있나. 옷집에서 일하는 동무는 옷 한 벌 거저 주어야 하나.

우리한테 조금이나마 넉넉하게 있는 무엇이라면 얼마든지 나누어야 하고, 나누는 일이란 아름답다. 그러나, 우리가 흘린 땀을 얌체가 되어 거저로 울궈먹으려고 하는 짓은 아름답지 않다. 아니, 아름다움을 깨 버린다. 땀에는 마땅한 땀값을 치러야 한다. 땀값을 치르지 않고 얻어 읽는 책으로 무슨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는가. 좋은 책을 만들어 준 일꾼뿐 아니라, 좋은 책을 써낸 사람한테 땀값이 즐거운 보람으로 돌아가도록 떳떳이 책값을 치러야 하지 않는가.

(045) 좋다고 느끼는 책 : 좋다고 느끼는 책을 가만히 살펴보면 으레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모두들 한결같이 '세상사람이 작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지나치거나 얕보는 자리'를 그지없는 사랑으로 차분하고도 따뜻하게 바라보곤 한다. '세상사람이 보잘것없다며 내치거나 등돌리는 자리'를 더없는 믿음으로 포근히 감싸고 넉넉하게 껴안곤 한다.

책을 펼쳐 넘기는 손을 보면, 언제나 싱그럽고 풋풋한 냄새가 번져 난다는 느낌입니다.
▲ 책 넘기는 손 책을 펼쳐 넘기는 손을 보면, 언제나 싱그럽고 풋풋한 냄새가 번져 난다는 느낌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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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 날림 : 빨리빨리 휘갈겨 쓰는 글씨는 날림이 되기 쉽다. 차근차근 올리지 않고 후다닥 올려세우는 집은 튼튼하기 어렵다. 부랴부랴 서두르기만 하면서 엮어낸 책은 어설프기 쉽다. 그러면, 책을 사서 읽는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우리 마음에 드는 책 하나를 찾아내려고 얼마나 품을 들이고 땀을 빼고 손다리를 팔고 있을까. 우리는 책방 나들이를 얼마나 오래, 얼마나 자주 하고 있을까. 고작 한 주에 한 시간도 책방 나들이를 하지 않으면서 '좋은 책 찾기 너무 어려워.' 하고 투덜거리고 있지는 않는가. 기껏 한 달에 한 번조차 책방 나들이를 하지 않으면서 '내 가슴을 찡하게 울릴 책은 잘 안 보인다.' 하면서 스스로 얼간이가 되어 버리지는 않는가. 아니, 아예 책을 볼 생각이 없는지도 모를 노릇이지. 스스로 '날림 사람'이 되어 가는 줄 모르는 가운데.

(047) 좋은 책 하나 찾아서 읽었다면 : 좋은 책을 찾아서 읽는 일은 참으로 아름답다. 다만, 좋은 책을 찾아서 읽는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이 아름다움이라는 씨앗에 물을 주어야 한다. 씨앗은 심어 놓고 물을 안 주거나 햇볕을 쬐게 하지 않거나 싱그러운 바람을 베풀지 않으면 어찌 되겠나. 씨앗은 땅속에서 말라비틀어지거나 썩어문드러질 테지.

좋은 책 하나 찾아서 읽었다면, 이 좋은 책으로 나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좋은 책을 읽어 넉넉해진 마음그릇이 얹히지 않는다. 좋은 밥을 먹고 그저 방바닥에 드러눕기만 한다면 비계만 잔뜩 늘게 되듯, 좋은 책을 읽고 아무런 움직임이나 몸짓이 보이지 않는다면 머리와 마음은 껍데기와 겉발림이 흘러넘치게 된다. 입만 살아 있는 떠벌이가 된다. 오순도순 이웃과 어울리며 기쁨을 나누는 제대로 된 아름다움을 맛보지 못한다.

(048) 참을 말하는 책 : "사람들 가운데 아직 때묻지 않은 이도 있는데, 참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다.(석가모니)"는 말을 책으로 읽는다. 이 말은 언제 적 말일까. 언제 적 펼쳐진 말인데 아직까지도 싱싱하게 살아숨쉬면서 이렇게 바로 오늘 나한테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을까. 앞으로도 이 말은 고이고이 살아남으면서 이어갈까. 내 아이한테도 이어지고 내 아이가 낳아 기를 아이한테도 이어질까.

나는 무엇을 즐기면서 어떤 목소리를 내 아이한테 남길 수 있을까. 내가 내 아이한테 이을 참된 목소리란 무엇일까. 나는 참된 목소리 한 마디라도 남길 수 있을까. 아니, 나 스스로 참된 목소리를 남긴다는 부질없는 꿈에 사로잡히지 말고, 참된 목소리를 남긴 숱한 어르신들 이야기책을 조촐히 간수하여 내 아이한테 남길 수 있으면, 내 아이며 내 아이가 낳아 기를 아이며 나와 마찬가지로 참된 목소리 한 마디로 온삶을 기쁨으로 채울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책말, #책이야기, #책삶, #책,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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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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