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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책이름을 마무리짓지 못했지만, 다가오는 2009년 5월 첫 주에, 그동안 제가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적바림해 놓은 이야기를 묶어 《자전거와 함께 살기》(임시 이름)라는 책을 하나 내놓기로 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마무리 편집과 교정을 보고 나서 곧 인쇄에 들어갑니다. 어줍잖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자전거를 즐기고 아끼는 분들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한편, 함께 자전거로 온누리를 달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아직 나오지도 않은 책임에도, 또 제가 이 책을 쓴 사람임에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책끝에 붙이는 맺음말 한 토막을 좀더 널리 나누어 보고픈 마음에 옮겨적어 봅니다. 자전거와 책과 우리 누리를 고루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다른 사람보다도 저부터 튼튼하게 가꾸어 보고 싶습니다. - 글쓴이 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자전거와 함께 살아온 발자국"을 마무리짓게 되니 홀가분하면서 쓸쓸합니다. 제가 달린 그 길은 저 혼자한테만 즐거웠던 길은 아닌가 싶으면서, 제 깜냥껏 자전거를 사랑했다고 하나 이제는 모두 망가져서 더는 타기 어려운 제 자전거들이 되어 그렇습니다. 몇 만 킬로미터를 달렸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제 자전거들은 바퀴를 여러 번 갈았습니다. 스트라이다는 지지지난해부터 벨트를 세 번째로 갈아야 하지만 벨트값 2만 원이 아쉬워 더는 못 갈고 살살 타고 있기도 하지만, 처음 헌것으로 살 때부터 손잡이와 뼈대가 망가져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버티기 어렵기도 하고 크랭크도 언제 부서질까 조마조마하기도 합니다. 허머 자전거는 요모조모 손을 많이 보았으나 벌써 자전거값만큼 돈이 들어갔고, 앞으로 더 손을 보아야 할 곳 또한, 새 자전거를 장만하는 값 못지않게 돈을 들여야 비로소 다시 탈 만하기도 합니다. 소설쓰는 김훈 님이 '자전거를 많이 타서 버려야 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아무리 많이 타도 그렇지, 어떻게 버리지?' 하고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그러한 자리에 놓이고 보니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깨닫습니다. 알지 못하는 가운데 섣불리 말하기는 쉽지만, 알고 난 다음에는 사람이 달라지게 됨을. 아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 '자전거 출퇴근'이나 '자전거 통학'을 망설이는 분이 많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신문 받아보면 거저로 주기도 하는 자전거를 왜 20만 원이니 200만 원이니 하면서 장만해서 타는지'를 못 헤아리지 않을까요?

 

 자전거 값이란 5만 원이기도 하고 50만 원이기도 하고 500만 원이기도 하며 5천만 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자전거이든 자전거일 뿐입니다. 저마다 제 몸과 마음과 살림과 길과 일터와 집과 마을에 걸맞는 자전거를 타면 하나같이 똑같은 자전거일 뿐입니다.

 

 어릴 적, 어머니를 졸라 자전거를 처음 장만하게 된 다음 아주 즐겁게 탔습니다만, 얼마 뒤 '손잡이 3자'가 아닌 '손잡이 1자' 자전거가 유행처럼 퍼진 다음부터 우리 집 자전거가 창피하다고 느껴 안 타고 내버려 두다가 썩어서 버려진 적 있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그 자전거가 얼마나 소담스럽고 아름답고 튼튼하고 멋진 녀석인데, 참으로 못난 저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저 스스로 자전거를 제대로 아끼거나 사랑할 줄 모르던 철부지를 거쳤기 때문에, 이렇게 "자전거와 함께 살아온 발자국"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책으로 내자고 다짐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신문배달을 하면서 짐자전거로 서울 시내를 누비며 헌책방 나들이를 했고, 이렇게 다리힘을 기르게 되어 나중에 출판사에 들어가 한 달 일삯 62만 원을 받게 되었을 때(1999년), 그때 돈으로 33만 원을 들여 제 자전거를 처음으로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처음으로 제 손으로 산 자전거였기 때문에 33만 원이란 대단히 큰 돈이었어도 저한테 알맞는 자전거로 장만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리하여 이 자전거는 선배한테 거저로 주었습니다. 선배는 자전거 값을 받으라며 십오만 원을 흰 봉투에 넣어 술자리에서 제 가방에 넣었는데, 저는 이 봉투에서 5만 원만 빼내어 다시 선배 책상에 몰래 넣었고, 그 돈 5만 원도 그날 술값으로 다 썼습니다. 그런 뒤 56만 원짜리 자전거를 장만했습니다. 이 자전거를 만든 회사는 몇 해 앞서 문을 닫았는데, 값도 값이었지만 성능이 퍽 좋아 그야말로 온 길을 누비듯 다니면서 많이 넘어지고 부딪히고 하면서 자전거를 비로소 제대로 알아갔습니다.

 

 

 누구든 마찬가지일 텐데요, 자전거를 타면서 넘어져 보지 않고는 자전거를 배우지 못합니다. 전봇대에도 부딪히고 세워진 차에도 부딪히며 배워야 합니다. 때로는 길 가는 애꿎은 사람을 치면서 부끄러운 줄 느끼기도 해야 합니다. 이렇게 모자람과 부끄러움을 배우는 가운데 '어떻게 자전거랑 함께 살지?' 하는 길을 저마다 스스로 익힐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면서, 저는 신문배달을 할 때에는 한겨울 눈이 펑펑 내려도 새벽 두 시 반에 일어나 신문을 돌려야 했기에, 거의 맨손과 다를 바 없이 신문을 돌리던 일을 떠올리며 한겨울에도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고, 충북 충주에서 일할 때에는 헌책방 나들이를 하고자 충주에서 서울로, 또 충주에서 부산으로 자전거 나들이를 했습니다. 하동에서 혼인잔치를 하는 선배한테 찾아가려고 신나게 자전거를 몰고 사흘에 걸쳐 나들이를 하기도 했고요.

 

 지난달에는 그나마 제 자전거 가운데 '망가지지 않은 딱 하나' 있던 삼천리 R-7을 처남한테 중학교 입학 선물로 주었습니다. 망가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잘 나가고 괜찮은 녀석이라서 선물했습니다. 제 손때며 발품이며 고스란히 담긴 자전거인 한편, 제가 '자전거를 어떻게 사랑하며 함께 살까?' 하는 꿈을 조금씩 이루게 해 준 자전거였기에, 비록 좀 헐기는 했어도 기꺼이 이 녀석을 선물했습니다. 새 자전거 선물도 나쁘지 않으나, 길이 잘 든 헌 자전거가 어린 처남한테는 한결 반갑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또한 저 혼자만 하는 생각이라 할 텐데, 제가 철이 없던 국민학생 때,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가 '새 자전거를 사 주시기'보다 '당신이 즐겨타던 자전거를 물려주었'다면, 저 스스로 자전거를 보는 눈이 좀더 오랜 옛날부터 튼튼하고 싱그러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자전거도 물건이지만, 우리 손때가 타게 되는 자전거는 물건임을 넘어 내 몸과 같이 되고 내 벗과 같이 되거든요.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을 때에는 내 온몸이 땅과 바람과 하늘과 햇볕하고 하나가 되고, 자전거로 싱싱 달릴 때에는 내 온몸에다가 자전거가 꼭 붙으면서 땅과 바람과 하늘과 햇볕이 하나가 됩니다.

 

 자전거와 살아온 지난날, 그리고 자전거와 살고 있는 오늘, 여기에 자전거와 살아갈 앞날 모두, 어느 하루도 기쁨이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뺑소니 사고를 입어 두 손목과 두 무릎과 두 발목과 왼어깨와 오른팔꿈치가 맛이 가고 말아, 이 글 몇 줄을 적으면서도 지릿지릿 아픕니다만, 이렇게 뺑소니 사고를 입으면서도 세상을 배우고 사람을 만나고 이 땅을 느낍니다. 긁히고 망가지고 깨진 자전거이지만, 언제나 고이 쓰다듬게 되고 늘 한 집에서 오래도록 함께 살고 싶어집니다.

 

 자전거 좋아하는 분들 사이에는 일본 만화가 미야오 가쿠 님이 그린 《내 마음속의 자전거》가 몹시 사랑받습니다. 저 또한 이 만화를 아주 좋아하는데, 뒷 권은 더 옮겨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자전거 즐김이가 몇 만은 헤아릴 텐데, 모든 사람이 이 만화를 다 사랑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은 '자전거를 즐기는 나만큼 자전거를 즐기는 이웃이 있음'을 들여다보면서 어깨동무를 하지 못하는 우리 터전이기 때문에, 만화책 출판사에서도 부지런히 옮겨내지 않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똑같은 일꾼이지만, 정규직이 먼저 비정규직한테 손을 내밀면서 울타리를 걷어내지 못하는 흐름하고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돈 많은 사람이나 모두 아름다운 목숨 하나인데 즐거이 밥숟가락 나누기를 하면서 얼싸안고 웃지 못하는 우리 터전하고 매한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아직 배우는 사람입니다. 자전거와 함께 산 지 좀 되기는 했어도 아직 자전거와 함께 살 날은 길고 기며 멀고 멉니다. 어줍잖은 가운데 어설픈 《자전거와 함께 살기》를 내놓게 되었습니다. 두근두근 떨리고 조마조마 두렵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설레입니다. 이 땅에서 자전거를 사랑하고 아끼는 또다른 한 사람 목소리가 이렇게 책으로 묶여 나올 수 있어 더없이 고맙고 반갑습니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는데, 저는 많이 못나고 모자란 사람입니다. 어수룩하고 어리석기까지 한 '헌책방에 푹 빠진 바보로 살아가는', 그리고 '이제 여덟 달을 맞이하는 어린 딸아이를 옆지기와 함께 키우며 인천 골목길 한켠에서 가난한 밥그릇 겨우 버티는' 여느 자전거꾼입니다. 그저 고개숙여 한 말씀을 풀어 보이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속의 자전거》 13권 20쪽에 나오는 한 마디를 옮기며 책을 마무리짓습니다.

 

 "자전거는 기계라, 마음 따윈 없아. 하지만 자전거한테도 마음이 있다면 나한테 이렇게 말했을 거야. 날마다 타 줘서 고맙다고. 더러워져도, 흠집이 나도, 아마 자전거에게는 그게 가장 기쁜 일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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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자전거, #자전거와 함께 살기, #최종규, #자전거여행,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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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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