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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도 수그러들고 이제 완연한 봄이다. 성급한 봄꽃들이 하나 둘 꽃망울을 터뜨리며 상춘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 하지만 마땅한 나들이 장소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우리 가까이 있는 숨은 여행지를 찾아보자. 늘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동안 잘 몰랐던 양산지역의 빛나는 여행지를 소개한다.

 

 

점점 상업화돼 가는 관광지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면,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의 참맛을 느끼고 싶다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찰을 추천한다. 하지만 이게 웬걸? 이름난 사찰은 날마다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이런 이유로 유명 사찰에서 사색과 명상을 즐기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더구나 일부 사찰은 지나치게 상업화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큰 사찰에 딸린 '암자'는 숨은 보석 같은 여행지다. 관광객들의 관심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지만 본 사찰보다 더 큰 매력을 숨기고 있다. 엄마 등 뒤에 숨어 머리만 쏙 빼고 있는 어린아이 같이 숨어 있지만 오히려 시선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나 할까. 

 

해인사, 송광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의 으뜸인 불보종찰 통도사. 경남, 부산, 울산 등 인근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봤을 법한 통도사지만 참모습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웅장한 대웅전과 국보인 금강계단만 둘러보는 것은 1300년 동안 법등이 꺼진 적 없는 천년고찰 통도사의 한쪽 면만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암자 곳곳에 숨겨진 설화를 따라가며 풍광을 감상하다 보면 심오한 불교문화를 접할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이 될 수 있다.

 

통도사에 현존하는 산내 암자는 모두 19곳이다. 암자들은 통도사를 중심으로 서북산과 남산 쪽으로 나누어져 있다. 통도사에서 가까운 서북쪽 암자부터 열거해 보면 안양암, 자장암, 극락암, 비로암, 백운암, 축서암이 있고, 남산쪽에는 보타암, 취운암, 수도암, 서운암, 사명암, 백련암, 옥련암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백운암을 제외하면 모두 2km내외의 거리에 있어 가벼운 주말여행으로 알맞다.

 

게다가 도로까지 잘 닦여 있어 도보여행이 싫다면 차량을 이용해도 불편함이 없다. 암자와 가는 길의 분위기를 흠뻑 느끼기 위해서는 도보여행을 추천하지만 걸어서 모든 암자를 다 보기는 무리다. 이에 필자는 통도사 암자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산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보타암과 취운암, 들꽃 향기 가득한 서운암, 사명대사의 정신이 살아 있는 사명암, 은행나무가 일품인 백련암과 약수로 유명한 옥련암을 만나보자.

 

참! 본격적인 암자여행을 떠나기 전, 통도사 산문을 지나면 곧바로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한 길은 무풍교를 지나는 차도고, 다른 한 길은 통도팔경의 하나인 무풍한솔길이다. 천년의 세월을 이겨온 수많은 노송의 가지와 잎새의 신성스러움에 흠뻑 취해 솔향 가득한 이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보타암과 취운암

 

 

 

통도사 주차장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암자가 보타암과 취운암이다.

보타암은 일주문 밖에서 삼성반월교를 건너 300여m 지점에 있는데, 마을집 모양으로 낮게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통도사 암자 가운데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건물로, 1927년 비구니 재덕과 호전 두 스님이 원동의 토굴에서 이건했다.

 

보타암을 지나 불과 200여m 가면 곧바로 취운암이 나온다. 취운암 입구에는 웅장한 현대식(?)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건물을 지나 들어가면 발소리 내기조차 조심스러운 정적이 감돈다. 취운암은 서기 1650년 운우대사가 초창했고, 정조 19년(1795년) 명운대사가 중건했으며, 1969년 테일화상이 중수했다. 법당 뒤쪽에는 역대 고승들의 사리부도가 즐비하게 서 있다. 이로 미뤄 취운암은 규모가 크고 역대 고승들이 이곳에서 많이 주석했음을 알 수 있다.

서운암

 

취운암을 지나 길을 가다보면 다시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여기서 먼저 왼쪽 길로 들어가자. 그러면 다시 길이 갈라지고 서운암 가는 길과 사명암, 옥련암, 백련암 가는 길로 나뉜다. 우선 서운암부터 들러본다.

 

서운암은 해마다 4월께 열리는 들꽃축제와 서운암 된장으로 유명하다. 이른 봄이라 아직 들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먼저 꽃망울을 틔운 매화와 입구 가득 펼쳐져 있는 장독이 반겨준다. 넓은 들판에는 이제 곧 화려한 자신의 존재를 알릴 들꽃들이 푸른 새싹을 힘겹게 밀어올리고 있다.

 

서운암은 관광객들은 물론 사진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풍경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나지막한 동산으로 이뤄진 산책로는 가족과 연인들의 손을 잡고 봄볕을 맞으며 산책하기도 그만이다.

 

통도사 암자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암자임에도 정작 서운암은 관심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너무 뛰어난 주변 풍경 때문이다. 서운암은 주변에 죽림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충목왕 2년(1346년) 충현대사에 의해 초창됐고, 철종 10년(1859년) 남봉대사에 의해 중건됐다. 서운암의 명칭은 어느 해에 상서로운 구름이 암자 주위를 감돌아 서운암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사명암

 

사명암은 서운암에서 서쪽으로 400여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이곳에 모옥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 금강계단 불사리를 수도한 곳으로 유명하다. 선조 6년(1573년) 이기, 신백 두 대사가 사명대사의 자취를 흠모, 창건해 수행했다고 한다.

 

사명암의 내력을 알고 사명암을 둘러보면 왠지 모를 힘이 느껴진다. 그 규모도 작은 사찰 정도고 크고, 매우 잘 정돈돼 있다. 암자 내에 핀 매화나무와 암자가 어우러져 묘한 풍취를 자랑한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암자가 아닌 하나의 성(城)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웅장한 멋을 가지고 있다.

 

백련암

 

백련암은 사명암에서 남쪽 숲으로 500m 되는 지점에 있다. 주위는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백련암으로 가는 길에 벼락 맞은 나무가 눈에 띄는데, 150여 년 된 전나무로 1996년 7월 26일 오후 2시에 벼락을 맞아 밑동만 남아 있다.

 

백련암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성인 남자 다섯 명이 팔을 뻗어야 겨우 두를 수 있는 은행나무다. 은행나무는 목조불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기 때문에 사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백련암은 공민왕 23년(1374년) 월화대사에 의해 지어졌고, 300여 년이 지나 인조 12년(1634년) 현암대사가 중건했다. 지금의 건물이 당시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상당 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본전 법당은 다른 암자와 같이 '암'이라고 하지 않고, 백련사라고 불리며, 부처님 당시 죽림정사나 지원정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백련사가 이름을 높이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다. 당시 유명한 선객치고 백련사에서 한 철씩 지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층층이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광명전이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일품이다.

 

 옥련암

 

옥련암은 공민왕 23년(1374년) 쌍옥대사에 의해 창건됐다. 이후 철종 8년(1857년) 호곡과 청진 두 스님이 중건했다. 현재 당시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상당히 오래된 느낌이 든다. 지금은 법당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옆에 새로 건물을 지어 사용하고 있으며, 스님들의 거처로 사용하고 있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어 멀리 북쪽으로 보이는 통도사 일주문 밖의 선자봉의 연봉이 아름답게 보인다.

 

옥련암에는 재밌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옛날에 '장군수'라고 하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옥련암 스님들이 매일 이 물을 마시고 힘이 장사라서 큰 절 스님들이 당할 수 없자 큰 절 스님들이 몰래 장군수를 메우고 그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버렸고, 이후 옥련암에 힘센 스님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옥련암에는 약수를 길어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약수터 주변에 주차된 차량에는 트렁크 가득 약수통을 싣고 다니는 사람들로 늘 장사진을 이룬다. 옥련암 아래쪽 평평한 곳에는 밭이 있어 스님들이 직접 여러 채소를 가꾸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양산시민신문 271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통도사, #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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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수영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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