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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은 설렘을 말고...

 

 회식에는 삼겹살, 설날에는 떡국, 일요일은 짜O게티, 그렇다면 소풍, 운동회에는? 그렇다! 전 국민의 피크닉 푸드, 바로 '김밥'이다.

 

어린 시절 나에게 있어 김밥은 '설렘' 그 자체로 각인되어 있다. 소풍을 떠나기 전 날, 들뜬 맘에 밤새 잠을 뒤척이다보면 새벽잠을 걷어 내신 어머니의 고소한 김밥 만드는 냄새로 잠을 깨곤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 위에 뿌려진 깨소금과 김에 발라 놓은 참기름 그리고 구운 햄의 고소한 향기는 그 어떤 알람 소리보다 강력한 기상 효과가 있었다. 눈꺼풀도 완전히 뜨지 못한 비몽사몽한 상태로 부엌으로 엉금엉금 기어가 김밥 속 햄과 시금치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항상 확인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썰다 남은 김밥 꽁다리를 나에게 물려주실 때는 그게 얼마나 꿀맛 같던지, 지금도 침이 고일 지경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20대의 종착역에 다다른 지금의 나에게, 유년 시절의 설레임을 말았던 김밥은  더 이상 유쾌한 존재만은 아니다.

 

김밥은 비참한 삶의 굴레를 말고...

 

 수많은 미래학자들은 자신했다. 우리 사회의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삶은 더욱더 여유로워질 것이라고… 여유로워지기는 犬뿔. 요즘 학생들과 직장인들을 보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공부하고 일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지만 현실에선 '일하기 위해' 먹는다. 그래서 일까? 바쁜 현대인들의 끼니대용으로 전략한 1000원짜리 김밥 한 줄이 괜스레 서글프게 보인다.

 

김밥의 시커먼 겉 표면이 암울한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김과 밥의 흑백 대비가 죄수복을 연상시켜 다양한 우리네 모습으로 대변되는 햄, 단무지, 시금치, 계란들을 옭아매는 모습이다. 삼각 김밥을 비롯한 편의점을 가득 메운 각양각색의 신종 김밥들을 볼 때마다 홍등가의 몸 파는 여인네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너희는 살기위해 아니, 일하기 위해 먹는 거라며 유혹의 손길을 내젓는다. 우리의 건강을 망치기 위해 끼니 거름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보장된 미래를 위해 김밥 등으로 대충 끼니를 해결하며 열심히 살아온 대가는 미래의 어느 날, 건강을 망친 스스로를 발견함과 동시에 '카르페디엠'에 충실하지 못했던 뼈저린 후회로 다가올 것이다.

 

 더 이상 소풍, 운동회 등과 같은 신나는 뭔가를 보장해 주지 않는 김밥이기에 괜히 심술이 날 뿐이다.

 

첫 단추를 잘 말아라!

 

김밥만큼 첫 단추를 잘못 꿰매는 대가를 처절하게 치르는 음식이 또 있을까? 한 번 잘못 말기 시작한 김밥은 결국 옆구리가 터져버리는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된다.
 
특히 김밥 만들기를 생업으로 하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손실은 없을 것이다. 재료 낭비에 시간 낭비… 옆구리가 터진 슬픈 낙오자는 그 흔한 은색 가운 한번 둘러보지 못한 채, 결국 주워 먹히게 될 뿐이다.
 
 

절대 외모로만 판단하지 말아라!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이들 중에는 대부분이 선호하는 삽겹살, 갈비살, 목살 대신, 곱창, 막창, 간, 껍데기 등 특수 부위에 환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김밥의 경우에도 특수 부위 마니아가 존재한다. 일명 '꽁다리'라 불리는 김밥 끄트머리에 꽂힌 이들이다. 썰릴 때 뚫려 있는 한 쪽 면으로 내용물이 삐져나온 바람에 비호감형의 외모가 되었을지언정, 맛과 영양만큼은 그 어느 부위에 뒤지지 않는다.

 

 누가 알겠는가? 가까운 시일 내 '꽁다리 김밥'이 시중에 나오게 될 지 말이다. 우리가 삼각 모양의 김밥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잘 말린 김밥처럼 서로 어울리며 살자

 

김밥이 불고기, 김치, 된장찌개 등과 같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김밥에는 밥과 반찬을 한 큐에 해결하려는 한국인 특유의 '헐리업(Hurry-up) 문화가 서려 있다. 허나 우리가 진정으로 김밥에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은 시간을 황금같이 쓰자는 것이 아니다.

 

 김밥 속의 여러 재료들이 한 데 섞여 그 특유의 맛을 내는 것처럼, 서로 다른 모습의 우리가 대한민국이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얼마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반의 갈등과 불신으로 몸살을 알고 있는 이 때, 김밥은 오늘도 우리에게 '어울림의 지혜'를 찾으라며 자신을 둥글게 말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ea789)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김밥, #어울림,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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