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는 13일의 금요일. 뭔가 불행한 예감을 느끼게 하는 그 '13일의 금요일'이었다. 그런 금요일 날 아침부터 하늘은 어둑어둑했고, 오랜 겨울 가뭄 끝에 모처럼 겨울비가 음산하게 내렸었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바람은 왜 그렇게 사납게 불었는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우산은 마구 할퀴어졌고, 여자들의 옷은 거칠게 뒤집혔다. 회색빛 하늘의 색감은 주변을 온통 장악하여 점심 때를 지나 오후까지도 마치 어두운 저녁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기분을 음울하게 만들었다.

 

2월 13일 금요일. '1년에 몇 번 돌아올까 말까 하는 그 13일의 금요일은 대체 무슨 이유로 사람들에게 불행한 날의 대명사로, 불행을 예고하는 숫자와 요일로 알려지게 되었을까?'

 

나는 그에 대해 어렴풋이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은 호기심이 생겨나 이리저리 13일의 금요일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게 되었다.

 

그 유래는 이랬다. 예수는 12명의 제자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고 있다가 제자 중 한 사람인 가론 유다의 배반으로 병사들에게 붙잡혀 갔다. 다음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당했다. 그날이 금요일이었다.

 

게다가 예수를 포함해 12명의 제자를 합친 13명이 모인 곳에서 유다의 배반이 일어났으므로 13이라는 숫자에는 배반과 불행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오늘날까지도 13명이 모여서 식사를 하면 그 해 안에 한 명이 죽음을 맞는다는 미신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는 전혀 실감으로 다가오지 않는 그야말로 바다 건너 서양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13일의 금요일은 남의 나라 미신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에게도 당연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나는 어제 13일의 금요일 밤 오래도록 뒤척거리며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배반과 불행을 상징하는 날이라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친구들과 마신 술기운으로 머리가 깨질 듯 아파 밤 새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괴롭고 고통스러웠던 악몽 같은 지난밤을 새우고 나는 아침에 간신히 기운을 차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탁에 앉아 냉수 한 사발을 벌컥거리며 마시는데, 딸아이가 애처로운 듯 아빠를 쳐다보다가 무슨 사탕 하나와 작은 편지 한 통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딸, 이거 뭡니까?"

"아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모르세요?"

"오늘이 무슨 날이지…."

"봉투 안에 있는 편지 잘 읽어보시고요, 얼른 정신 차리세요!"

"어? 그래그래 알았다."

 

나는 커다란 막대사탕 하나와 예쁜 종이봉투 안에 담긴 편지를 꺼내 읽는 순간 비로소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밸런타인 데이'라는 그 날이었다. 딸아이는 친구들 줄 사탕과 쵸콜릿을 사려다가 아빠에게도 하나를 사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탕 하나를 사고, 짧은 사연을 적은 편지를 내게 선물로 주게 된 것이었다.

 

"밸런타인 데이…, 이건 또 무슨 의미를 갖는 날인거지?"

 

나는 그저 젊은이들이 서로 사랑을 고백할 때, 여자가 남자에게 쵸콜릿을 선물하여 그 마음을 표현하는 날이라고, 서양에서 유래된 기념일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내게 건네 준 밸런타인 데이 사탕과 편지를 받고 보니 또 그 유래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알아보니 이랬다. 예날 로마 황제 클라우디스는 청년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결혼금지령을 내렸다. 청년들은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 전쟁에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청년들의 사랑은 전쟁을 회피할 수 없게 좌절되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성 밸런티누스 사제는 많은 젊은이들이 사랑을 이루도록 도와주었다. 그런데 그 사실이 나중에 들통 나 붙잡혔고, 마침내 그 해 2월 14일에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그날 사랑을 고백하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13일의 금요일과 밸런타인 데이. 우리는 요즘 멀리 바다를 건너와서 우리 땅에 정착한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무턱대고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억지 이야기가 아니라면 우리나라에도 재미나고, 흥미진진하게 전해 내려오는 매우 다양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많은데 말이다.

 

지나친 상업주의와 결합되어 전설과 설화 같은 이야기도 자본주의식으로 절묘하게 확대재생산 되는 오늘의 현실이 대세라면 어쩔 도리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것, 우리 이야기들은 하나 둘 기억 속에 잊혀져 가고, 우리의 아름다운 풍습과 문화는 점차 서양식으로 탈바꿈해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블랙데이,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놈의 무슨 ‘데이’와 그걸 이용해서 만들어 낸 무수한 상품들…. 돈 버는데 혈안이 된 첨단자본주의 기업들의 상업적 상상력은 잔뜩 칭찬해줘도 될 만큼의 수준임에 틀림없다.

 

아이들과 청소년들,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쵸콜릿과 사탕을 주고받는 가벼운 놀이문화를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겠지만, 그 보다는 국적불명, 출처불명의 서양식 기념일과 그 문화에 우리들의 의식과 정신이 서서히 종속당하며, 잠식당하고 있는 것 같은 현실이 느껴지니 씁쓸하다.

 

아빠에 대한 사랑을 담아 건네준 딸아이의 사탕과 편지는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지만, 13일의 금요일을 지나고 바로 그 다음날이 '밸런타인 데이'라니 내가 지금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 거지? 라는 웃지 못할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태그:#13일의 금요일, #발랜타인데이, #사탕과편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양시에 걷기 좋은 길을 개척하기 위한 모임으로 다음 카페 <고양올레>를 운영하는 카페지기 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