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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15년 전, 현장학습으로 강화도를 찾았다. 고인돌 앞에 섰는데 그 고인돌을 보고 소감을 써내려가야 했다. 거대한 바위, 그리고 그것을 바치는 또다른 바위. 엉성하게 서있는 그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누구의 무덤이라고 했는데 왜 이걸보러 이 곳에 왔는지 궁금하기만 했던 그 때 난 강화를 찾았었다.

 

"강화도는 말이죠, 아주 살기 좋은 동네에요. 먹을게 풍부하고 자연경관 수려하고 사람들도 좋죠. 요즘 땅값이 올라서 이사 오기 힘들 수는 있지만...(웃음)"

 

15년 만에 다시 찾은 강화도에서 지나가는 길에 만난 선생님이 내게 건넨 말이다. 우연찮게 들른 이 섬이 포근하게 날 다시 감싸주는 것만 같았다.

 

어디를 가야되나 고민을 하다가 섬에서 다시 섬으로 들어가길 결정했다. 인천에서 강화대교를 타고 강화까지 오는 길이 2시간이나 걸렸는데 전혀 섬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서였다. 진도를 갔을 때도, 남해를 갔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섬이란 기대감이 왠지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배를 타고 싶었다.

 

 

"석모도가 좋지. 가면 보문사도 있고 경치가 그만이야!"

 

초행길인 강화도에서 우연히 만난 한 신부님은 자신 있게 석모도를 추천했다. 왕복 2,000원에 배삯을 치르고 갈매기와 대화하기 위해 새우깡 한 봉지를 샀다. 물론 반 이상은 내 입으로 들어가버렸지만.

 

 

도착한 석모도, 밥을 먹어야 했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입구에 늘어선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얇디얇은 학생의 지갑으론 선뜻 식당에 입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관광지의 식당은 뭐랄까, 맛은 별로고 비싸다는 생각 때문에.

 

그러던 도중 한 아주머니한테 덜미가 잡혔다.

 

"학생들 배고프지, 일로와. 잘해줄께!"

"아주머니 얼만데요? 저 돈 별로 없어요."

"아 글쎄 일단 들어와서 이야기하라니까!"

 

 

그렇게 함께 간 일행들과 나는 식당으로 들어가게 됐다. 한 사람당 5,000원씩 생각하라는 아주머니. 그 정도 가격이면 요즘 물가에 그리 비싸진 않았다. 그리고 우리 앞엔 밴댕이 회덮밥과 해물칼국수, 조개국물로 우려낸 육수와 새우튀김을 먹을 수 있었다. 먹다 먹다 지쳐서 몸을 뒤로 졎히고 있을 낮이면 아주머니는 다른 음식을 또 내오고 있었다.

 

"원래 7000원씩은 받아야 되는데 학생들이라서 5000원만 받는거야. 맛 없으면 다음에 오지마. 하지만 맛 있으면 기억 날 때 한 번 더 들려줘!"

 

관광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아주머니의 귓가에 맴돌았다. 난 몇 시간 전만해도 걷는대도 긴장해야 하는 도시에 있다와서 였을까?

 

보문사로 가는 길, 버스를 탔다. 앞 뒤로 문이 달린 버스는 사람이 탈 때도 앞문을 열고, 사람이 내릴 때도 앞문을 연다. 왜 그럴까? 골똘히 지켜보니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종점인 보문사로 향하고 있었고, 노인들은 자신의 집을 찾아 중간에 내렸는데 대부분의 노인은 앞 자리에 앉았던 것이다. 버스기사는 그 노인들의 다리를 걱정한 탓이었다. 독특한 경험이었다. 그런 것이 보이는 내 눈, 여유를 조금은 머금은 것 같았다.

 

안개가 자욱한 석모도, 평소 때는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다는 보문사 오르는 길이 오늘은 뿌옇기만 했다.

 

"아따, 요즘은 장사도 안되는데 안개까지 껴부렸네. 그래도 이 것은 맛나지. 일단 하나 먹어보고, 그려. 이따 내려올 때 생각나면 한 번 들리라고!"

 

아주머니의 우격다짐에 한 입 베어문 고구마 튀김을 뒤로 하고, 그렇게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보문사로 가고 있었다. 으레 그랬다. 절을 가면 이 절은 언제 만들어져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그러기가 싫었다. 아니 귀찮았다. 그냥 주변을 둘러보는게 훨씬 재미있었다.

 

내 앞을 가는 아주머니는 주전자에 물을 가득떠서 절뚝절뚝 보문사로 향하고 있었다. 잎에서는 불경이 끊이질 않았는데 항상 절에 다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내 뒤로는 양복에 구두를 신은 아버지뻘 되는 분이 근심어린 얼굴로 보문사로 향하고 있었다. 어른들이 오르시기에 다소 가파렀는데 뒷짐을 짚고 여유롭게 오르는 그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뭐랄까. 그 분이 무척이나 커 보였다.

 

 

절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돌에 새겨진 부처의 모습이 있었다. 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초를 밝히고 절을 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불을 붙이니 관리자가 사람들에게 한 마디 했다.

 

"요즘은 건조해서요. 이렇게 불을 많이 붙이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은 빌고 또 빌었다. 사람들이 무엇을 그렇게 소망할까. 무엇을 그렇게 빌어야 하는 것일까. 빈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멍하니 안개가 자욱한 저 너머를 바라보는데 아까 지나친 아주머니가 힘겹게 정상에 다다르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숨 한 번 돌리지 않고 바로 절을 하러 가는 그 모습에서 그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랬다.

 

 

내려오는 길, 전통 찻집에 들렀다. 한겨울, 계룡산 갑사에서 마셨던 차가운 매실차를 잊지 못해 들렀는데 내겐 다소 부담스런 5000원이란 가격이었다. 그리고 일행들과 이야기가 시작됐다. 소소한 일상, 대학생활, 취업얘기, 정치얘기... 여유를 한 모금 마시고자 들른 찻집에서 갈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다. 점점 나에서 주변부로 이야기가 확장될 때 가슴이 각박해지고, 또 각박해졌다. 가장 재미를 누리는 위치가 대학생이라는데 동의하지만, 가장 고민많고 각박한 위치가 또 대학생인 것만 같아서였다.

 

해가 질 무렵, 석모도에 나오는 배에는 들어갈 때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탔다. 10분 남짓의 항해시간, 오늘 배가 뜬게 다행일 정도의 시계밖에 확보가 안되기에 강화 앞바다의 석양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난 돌아가야 했다.

 

전등사도 못보고, 초지진도 못보고... 그렇게 난 강화도를 다녀왔다. 오는 길, 두 시간여 걸리는 인천터미널 행 대신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신촌 행을 택했다.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 새 도착한 서울.

 

지하철을 타려고 내려가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두줄서기가 없어진지 꽤 됐다는데 사람들이 여전히 한쪽으로 비켜나 있다. 그리고 한쪽을 숨가쁘게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바쁠까? 그 순간 스쳐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왜 이리 여유가 없어보이는지...

 

난 그렇게 강화도를 다녀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강화도, #석모도, #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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