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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춘절은 폭죽으로 시작하여 폭죽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춘절의 필수품 폭죽 중국의 춘절은 폭죽으로 시작하여 폭죽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고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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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시 우리와 같은 음력 문화권이다. 한때 우리가 외세의 영향으로 음력설을 무시하고 양력설을 권장했던 것처럼 중국에서도 신해혁명 이후 양력을 중시하여 양력 1월1일을 신년 혹은 원단으로 부르게 되면서 대신 음력 1월1일을 춘절(春節)이라 부르게 되었다.

춘절은 알려진 대로 중국 최대의 민속명절이다. 객지 밥을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내가 사는 공단지역은 마치 전쟁 통에 피난을 떠난 곳처럼 썰렁하기만 하다. 모두 떠난 공장을 비울 수가 없어 우린 춘절기간의 긴 휴무에도 한국에 가서 설을 쇠지 못한다. 그리운 가족 친지들과 함께하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대신 이곳 사람들의 세시풍속을 곁에서 지켜볼 기회가 되기도 한다.

중국의 춘절은 오랜 풍습인데다 땅이 넓고 그 소통은 오히려 원활하지 못한 사회이다 보니 각 지방마다 풍속도 자연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그 근본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절강성에 사는 남동생네가 전해주는 세시풍속도 대부분 이곳과 비슷하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그곳에선 춘절엔 꼭 작은 벽돌처럼 생긴 직사각형의 찹쌀떡을 물에 담가 놓고 춘절 기간 내내 탕을 끓여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 산동은 갖가지 소를 넣은 교자를 즐겨 먹는다.

음력 섣달이 되면 어느새 춘절 분위기다. 폭죽을 비롯한 대련 등 춘절용품 파는 곳이 무척 많아지고 길 앞까지 쌓아놓은 물건들로 시장 주변은 온통 붉은색 일색이 된다. 우리 공장식구들도 마음이 들떠 평소보다 생산량이 적게 나오기 일쑤여서 중국 최대의 명절이 다가왔음을 직감하게 된다.

화려한 색상과 문양으로 인쇄된 제품이 많아 이제는 손수 써서 붙이는 집은 찾아볼 수 없다.
▲ 상품화된 대련 화려한 색상과 문양으로 인쇄된 제품이 많아 이제는 손수 써서 붙이는 집은 찾아볼 수 없다.
ⓒ 고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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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초파일에 라빠저우(臘八粥)를 먹는 것으로 본격적인 춘절행사가 시작된다. 라빠저우는 쌀, 좁쌀, 찹쌀, 수수, 팥, 대추, 호두, 땅콩 등 갖은 곡식을 넣어 끓인 죽을 말하는데 이를 먹는 것은 오곡이 풍성하기를 바라는 의미라고 한다.

섣달 스무사흗날은 쇼녠(小年; 작은설)으로 사실상 춘절의 시작이다. 이날은 엿을 만들어 조왕신(부엌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홍등(紅燈)을 대문간에 걸고 폭죽을 터트린다. 23일을 작은설로 쇠는 것에 대한 재미있는 전설이 있어 옮겨 본다.

옛날에 가난한 노인이 탄광에서 일하는 늦둥이 아들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만난 길동무는 저승사자였다. 저승사자는 노인의 아들이 일하는 탄광의 광부들을 모두 데려가기 위해 가는 참이었다. 이를 알게 된 노인이 자신의 아들을 살려주면 이 일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애원하여 무사히 아들을 데리고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3년 뒤 노인이 섣달 스무사흗날 밤에 부인에게 이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다. 이를 조앙신(부엌신)이 엿듣고는 옥황상제에게 고자질을 했다. 옥황상제가 대노하여 저승사자를 벌하고 노인의 아들도 데려갔다. 사람들은 매년 이날에 조앙신에게 엿을 고아서 제사를 지내며 속세의 시시비비를 천상으로 옮기지 않기를 빌었다.

23일 쇼녠을 시작으로 24일은 대청소와 묵은 빨래, 25일은 두부콩 갈기, 26일은 고기 삶기, 27일은 닭잡기, 28일은 밀가루 불리기, 29일은 춘련(春聯) 붙이기, 30일은 제석(祭夕)지내기 등 춘절 준비가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진다. 그 때문인지 대부분의 중국공장들은 이날부터 휴가에 들어 우리처럼 중국공장을 하청으로 둔 기업들은 애를 먹기도 한다. 우리도 쇼녠엔 직원들에게 특별 음식을 제공하고 폭죽을 터트려 춘절을 기다리는 마음을 함께 표현한다.

섣달 그믐날은 춘절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이날은 시간대별로 갖가지 행사가 이어진다. 오전엔 집안에 녠화(年畵)라고 하는 그림을 붙이고, 대문에는 두이롄(對聯)과 ‘복(福)’자를 거꾸로 붙인다. 춘롄(春聯)이라고도 하는 대련은 원래 복숭아나무로 만든 두 개의 판자에 귀신을 쫓는 부적을 그려 놓은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보통 대련의 대구는 희망을 표현하는 글을 붉은 종이에 붓으로 쓰며 문신상(門神像)은 악마를 쫓는 작용을 한다.

‘福’자를 거꾸로 붙이는 이유는 ‘거꾸로’라는 뜻의 중국어 ‘도(倒)’와 ‘오다, 도착하다’는 뜻의 중국어 ‘도(到)’의 발음이 같기 때문에 전해오는 풍습이라는데 요즘은 보통 대문 바깥쪽엔 똑바로 붙이고 안쪽에 거꾸로 붙인다고 한다. 그래야만 온전히 복이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예전엔 거꾸로 붙인 집이 많았는데 최근엔 거꾸로 붙인 곳을 만나기 쉽지 않다.

농촌 가옥의 전형적인 춘절맞이 장식이다. 설날엔 대문을 열어 놓는데 배년을 위해 방문하는 이를 위함이라고 한다.
▲ 홍등과 대련으로 치장한 대문 농촌 가옥의 전형적인 춘절맞이 장식이다. 설날엔 대문을 열어 놓는데 배년을 위해 방문하는 이를 위함이라고 한다.
ⓒ 고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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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날 오후가 되면 남자들이 산소에 가서 조상을 모셔 오는데 이를 궈녠(過年)이라고 한다. 농촌은 대개 집성촌이라선지 이날 마을 어귀에 있는 공동묘지에서는 친족들이 함께 모여 궈녠을 지내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긴 대나무 장대에 폭죽을 걸어 터트리며 산소 봉우리에는 조상이 쓰실 돈(노란종이)을 놓는 것으로 조상을 모시는 절차가 진행된다.

이날 저녁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데 이를 옌예판(年夜飯)이라 한다. 이때는 정성껏 준비한 진기한 음식들을 먹는데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폭죽을 터트린다. 한해를 무사히 지낸 것에 대한 감사와 새해에도 건강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이다. 저녁 식사 후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교자(만두)를 빚는다. 요즘은 텔레비전을 시청하느라 교자 빚는 일을 게을리 하는 남자들 때문에 여자들 불평이 많아졌다고 한다.

섣달그믐날에 모인 가족들이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는 것은 우리와 비슷하나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는 우리와 달리 이곳에선 자정에 산소에서 모셔온 조상께 절을 하고 온가족이 빚은 교자를 먹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한다. 이를 제석(祭夕)이라 한다. 교자(만두) 속에 동전이나 설탕을 넣은 것을 섞어두고, 이를 먹게 되면 돈을 많이 벌며 한해를 달콤하게 살게 된다고 믿는다.

이때 또 일제히 폭죽을 터트리는데 이는 산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녠(年)을 물리치고 천수(天壽)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날은 온종일 폭죽 터지는 소리가 끊이질 않아 꼭 전쟁터에 있는 느낌이다. 섣달 그믐날 밤에 대련을 붙이고 폭죽을 터트리며 불을 환하게 밝히는 풍습에 대한 전설도 옮겨 본다,

옛날에 녠(年)이라는 바다 속에 사는 괴상한 짐승이 섣달 그믐날이면 육지로 올라와 산 사람을 잡아먹었다. 사람들은 섣달 그믐날이 되면 이 괴물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도망을 가야만 했다.

어느 해 그믐날 밤에 백발노인이 찾아와 자기를 하룻밤 묵게 해주면 그 괴상한 짐승을 쫓아주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노인의 말을 믿지 않고 빨리 함께 산으로 숨기를 권했지만 노인은 고집을 꺾지 않아 사람들은 하는 수없이 노인을 남겨둔 채 산속으로 숨었다.

백발노인은 집안에 불을 밝히고 붉은 비단 옷을 입은 채 괴물을 기다렸다. 드디어 ‘녠’이란 짐승이 나타나자 노인이 ‘녠’을 향해 폭죽을 쏘았다. 폭죽소리에 놀란 괴물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앞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이때 붉은 옷을 걸친 노인이 대문을 활짝 열고 큰소리로 웃자 ‘녠’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산에서 내려온 마을 사람들은 괴물이 가장 무서워 한 것은 붉은색과 불빛, 폭죽소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때부터 대문에 붉은 대련을 붙여놓고 밤새 불을 환하게 밝히며 폭죽을 터트려 ‘녠’이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

설날엔 전날 온종일 터트린 폭죽의 잔해들이 골목길을 가득 메우곤 한다.
▲ 폭죽의 흔적 설날엔 전날 온종일 터트린 폭죽의 잔해들이 골목길을 가득 메우곤 한다.
ⓒ 고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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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엔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남자들은 이웃으로 바이녠(排年)을 다닌다. 우리의 세배와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여자들은 대문 밖을 나갈 수 없어 남자들만 다니는 것, 덕담을 주고받는 것, 세뱃돈을 주는 풍습까지 우리와 아주 비슷하다. 바이녠(排年)은 전날 녠(年)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것을 서로 축하하며 인사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다시 조상을 산소에 모셔다드리는데 이를 쑹녠(送年)이라 한다. 이 때 산소 봉우리에 놓았던 돈(노란종이)을 태운다. 그렇지만 조상께 하는 차례는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진다. 궈녠에 차린 차례 상의 향을 꺼트리지 않으며 의관을 정히 하고 매일 새로 찐 만토(찐빵)를 올린 뒤 절을 한다. 설날 아침에만 차례를 지내는 우리완 사뭇 다른 모습이다.

벽에 조상의 가계도가 적힌 연화 붙이고 차례 상을 준비해 조상을 기린다.
▲ 연화와 차례상 벽에 조상의 가계도가 적힌 연화 붙이고 차례 상을 준비해 조상을 기린다.
ⓒ 고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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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사흗날은 여자들이 나들이를 시작하는 날이다. 이날은 결혼한 여인들이 남편과 함께 친정을 방문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설 사흘째 되는 날엔 길거리에 선물을 챙겨들고 처가를 찾는 가족단위의 사람 물결이 넘쳐난다. 이들을 겨냥해 철시한 상점이 문을 열기도 하며 대로변에선 노점상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장사를 일찍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라고 한다.

요즘이야 공식 휴일도 사흘뿐이고 형편에 따라 일을 일찍 시작하는 곳도 많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대부분 정월 초파일에 개업을 했다. 이는 숫자 8(파八)이 돈을 번다는 뜻의 파차이(發財)와 발음이 비슷해서 8자를 무척 좋아해 생긴 풍습이 아닐까 싶다. 이날 역시 폭죽을 터트리는 것으로 개업을 알리는데 시장에 서 있으면 지축을 흔드는 소리에 귀가 먹먹해진다.

정월대보름인 ‘원소절(元宵節)’은 지금까지 지내온 춘절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날이라 할 수 있다. 원소절엔 찹쌀 경단인 웬쇼(元宵)를 먹으며 역시 폭죽을 터트린다. 춘절 내내 폭죽을 터트렸으면서도 이날의 폭죽은 그 어느 날보다 더 요란하다. 폭죽을 많이 터트림으로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지, 부의 과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부자들은 경쟁적으로 마지막까지 폭죽을 쏘아댄다. 이번 춘절기간에 얼마치의 폭죽을 터트렸는가가 자랑거리가 되기도 한다.

불꽃의 아름다움보다 연기와 소리에 더 주목하는 이곳의 폭죽문화는 무지막지한 소리에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다. 하지만 요즘은 밤하늘에 퍼지는 불꽃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면서 나날이 그 아름다움도 더해가고 있다. 폭죽에 의한 사고가 많아 도시에선 한때 금지되기도 하였지만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 어쩌면 폭죽은 중국인에게서 떼려야 뗄 수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리와 연기에 주목하던 폭죽은 이제 이렇듯 아름다운 불꽃을 즐기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 화려한 불꽃 소리와 연기에 주목하던 폭죽은 이제 이렇듯 아름다운 불꽃을 즐기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 박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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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녠(작은 설)부터 거리며 집 안팎에 치장했던 장식들은 원소절을 지낸 후 모두 철거하여 태운다. 이것으로 기나긴 춘절행사는 마무리가 되고 전쟁터를 방불케 하던 폭죽소리도 사라진다. 


태그:#중국의 춘절, #폭죽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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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살면서 오블에 <고단한 삶의 놀이터>란 방을 마련하고 타국살이의 고단함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블로그 운영한 지가 일 년 반이 되었으나 글쓰기에 대해 늘 자신이 없어 좀 더 체계적이고 책임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에 시민기자 활동을 신청합니다. 주로 사는 이야기와 여행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주부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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