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해 끝자락부터 올해 초반까지는 예년과 비교해 규모와 횟수가 적어지긴 했어도 송년회, 신년회 등 각종 모임들 때문에 평소보다 대리운전이나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긴 했다.

지난달 성탄절쯤, 지인들과 송년 술자리 모임을 가졌다. 좋은 분들과의 술자리였던지라 긴장을 풀고 마시는 바람에 거나하게 취한 채로 귀가하려 택시를 탔다.

평소 택시를 이용할 때는 목적지까지 택시기사님과 아무 말도 없이 가는 것이 서먹하게 느껴지곤 해서 "요즘 운전하기 힘드시지요?" 하고 먼저 말을 꺼낸다.

하지만 그날은 술을 많이 마신 까닭으로 혀가 꼬여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고, 말하면서 술 냄새를 풍기는 것도 실수겠다 싶어, 택시기사님과 목적지 등과 같은 필요한 말 이외에는 거의 나누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본 기사의 휴대폰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음>
 <본 기사의 휴대폰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음>
ⓒ 이완구

관련사진보기

차가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웅~~ 웅~~' 하는 긴 진동소리가 들렸다. 휴대폰 진동소리였다. 내 휴대폰인가 싶어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 보았지만 내 휴대폰은 침묵을 지키며 잠들어 있었다.

휴대폰의 진동소리는 조그맣게 계속 들렸고,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운전석 뒷자리에 한 개의 휴대폰이 액정에 불을 켜고 온몸으로 진동음을 울리고 있었다. 이전 택시 손님이 실수로 놓고 내린 휴대폰이라는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공간으로 몸을 최대한 길게 넣어 손을 뻗으니 휴대폰이 잡혔다. 얼른 자세를 바로한 후, 휴대폰을 받으려 할 때였다. 운전하던 택시기사님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 주인에게 휴대폰을 인계할 방법을 안내해 주려는 것 같아 통화를 하지 않고 휴대폰을 넘겨 드렸고 기사님이 전화를 받았다.  

택시기사님과 휴대폰을 놓고 내린 사람의 확인 대화가 잠시 오고 갔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택시가사님이 통화중 거짓말을 했다.

"지금 ○○시내에서 멀리 나와 있어서 금방 가져다주기 곤란하고, 잃어버린 휴대폰 가져다주면 보통 3-4만원은 주셔야 합니다."

허걱~ 내가 타고 있는 택시는 ○○시내 한복판을 달리고 있었다. 택시기사님은 휴대폰 주인에게 물건을 찾아주는 수고비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휴대폰 주인이 있는 곳까지의 택시비 정도의 수고비가 아닌, 몇 만원의 추가금을 수고비로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소심하여 나서기 좋아하지도 않고, 정의의 사도가 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지만, 취기도 용기에 힘을 보태줘서 아직 휴대폰 주인과 통화가 끝나지 않은 중에, "아저씨, 그분에게 왜 거짓말을 하세요?"라고 통화 저편에서도 들릴 수 있게 큰소리로 한마디 했다.

그렇게 택시기사님과의 승강이가 시작됐고, 택시는 집 앞까지 도착했다. 택시가 멈춘 후에도 "지금 휴대폰 주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 하고 휴대폰을 찾아주시라"는 나와, "술 먹고 영업방해 하고 있다"는 택시기사님의 승강이는 계속되었다.

한참만에야 택시기사님은 "그러면 당신이 휴대폰 찾아줘라"고 했고, 나는 "그렇게 하지요"라며 휴대폰을 받아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승강이 하면서 세워두었던 시간 동안의 택시요금도 당당하게(?) 지불하고.. T.T

아내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잃어버린 휴대폰 주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로 휴대폰을 돌려줄 방법을 상의한 아내에게 '잃어버린 휴대폰 주인 찾아주기' 임무를 부여했다. 다음날 저녁, 휴대폰은 주인에게 공짜로 안전하게 전달되었다.

많은 택시기사 분들이 정직하고 힘들게 일하시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상식에 벗어난 택시기사 분들이 전체 택시기사 분들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내가 만났던 그 분 한 분만 그런 사람이었다고 믿고 싶다.

모든 것이 돈으로만 보이는 세상은 너무 각박하고 삭막하지 않은가?


태그:#분실휴대폰, #택시, #택시기사, #수고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一寸光陰不可輕·한 시도 가볍게 여길 수 없음

이 기자의 최신기사벌집제거에 119 출동시키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