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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어 닫아놓았던 창을 열어놓는 시간이 길어졌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00여일 앞으로 다가온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모든 창문이 열리는 기간이다.

요사이 열린 교실의 창문으로 벌들이 날아오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때마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학생들의 괴성을 동반한 과민반응에 수업이 지장을 받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벌 한마리가 교실에 날아들면, 쉽게 밖으로 내쫓을 수도 없어서 난감한 경우가 많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예전보다 부쩍 벌들이 교실에 들어오는 횟수도 많아졌지만 벌의 크기도 상당히 커진 듯 보여 그냥 넘길 사안만은 아닌 듯했다.

 교실에서 자주 목겨되던 벌. 크기가 제법 크다.
 교실에서 자주 목겨되던 벌. 크기가 제법 크다.
ⓒ 이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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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많아진 벌들의 벌집이 근처에 있을 거라 판단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주의 깊게 이곳저곳을 살폈다. 얼마 되지 않아 발견된 벌집은 의외의 장소에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벌들은 과감하게 2층 교무실 창문 바깥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2중창의 안쪽창문을 열고 위쪽을 보니, 족히 20cm는 되어 보이는 연한 황토색의 벌집에 2~3cm가량 되는 커다란 말벌들이 쉴새없이 들락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변에서는 모기약이 들어 있는 ○킬러를 쏘면서 라이터로 그곳에 불을 붙이면 화염방사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불이 나가는데, 그걸 벌집을 향하여 쏘면서 벌집을 떼어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지금 벌집을 건드리면 자칫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겨울까지 기다려서 벌집을 제거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당장 벌들이 교실에 자주 출몰하고 있고, 학생들이 벌에 쏘일 수도 있다는 판단에 당장 벌집을 제거하기로 했다. 하지만 과감하게 벌집을 제거할 용기와 능력을 지닌 사람은 주변에서 찾기 힘들었다. 결론은 119.

"119죠. 여기가 ○○학교인데요 벌집이 있는데 제거해 주실 수 있는지요?"
"네... 그런데 좀 기다리실 수도 있습니다. 먼저 신청 들어온 장소부터 해결을 해야 해서요."

119에 벌집제거 요청이 자주 접수되는 모양이었다. 전화통화로 장소를 전달한 후 20분 정도 지났을 때, 3명의 119구급대원들이 소방차를 타고 도착했다. 벌집이 있는 장소를 지목하자 벌집을 제거하는 방법에 대해 서로 의견을 잠시 교환한 구급대원들이 행동에 들어갔다. 교무실 내에서 1명의 대원이 로프를 잡고 있고, 다른 1명의 대원은 반대쪽 끝 로프를 허리에 매고 교무실 밖에 매달려 벌집을 제거하기로 했다.

 벌집 제거에 앞서 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망과, 투터운 점퍼를 착용하는 119 대원
 벌집 제거에 앞서 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망과, 투터운 점퍼를 착용하는 119 대원
ⓒ 이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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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준비된 망을 머리에 쓰고, 찌는 듯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보기에도 부담스러운 두터운 점퍼를 착용한 후 벌집을 담을 비밀봉투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 난간에 매달린 대원의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도 위험천만해 보였다. 벌집 제거가 시작되자 대원들 모두가 긴장하는 듯했다.

벌집에 비닐봉투를 덮어씌우고 제거를 시작하자마자 벌들의 숫자와 움직임이 상당히 빨라짐을 옆에서도 눈과 귀로 느낄 수 있었다.

로프 하나에 의지해서 벌집을 통째로 들어내어 비닐봉투에 담고 한 손으로 봉투의 윗부분을 봉한 대원은 교무실 안쪽에 있던 대원에게 벌집이 들어 있는 비닐봉투를 전달한 후 ○킬러를 벌집이 있던 장소에 뿌렸다. 그곳에 다시 집을 만들지 않도록 뿌려두는 거란다.

그 사이 안으로 들어온 벌집이 담긴 비닐봉투는 안전한 망 속으로 다시 넣어졌다. 봉투가 움직여질 때마다 말벌들의 날개 짓 소리가 무겁게 들렸다.

외출했던 벌들이 자신의 집이 사라진 것에 당황했기 때문인지 말벌들이 10여 마리 이상 주변에 날아다녔다. 신속하게 교무실 안으로 들어온 대원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런 대원들의 위험과 수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서 '벌집은 약으로 쓴다', '벌집으로 술을 담그면 그만이야' 하는 말들이 기억났다.

"벌집은 주고 가시면 안되나요?"
"왜요?"
"약이나 술 담그면 좋다고 해서..."
"드려도 되는데, 위험해요. 저희도 이거 가져가는 즉시 폐기해요."
"그런가요..."
"저희가 위험한 상황에 벌집을 제거해 드렸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가 일하는데 힘이 안납니다."
"죄송해요."

부끄러웠다. 벌들의 공격이 걱정되어 119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벌집이 제거되자 잠시 전까지 벌들의 위험은 잊고 잿밥에 온통 관심을 집중해서, 벌과 추락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고생한 119 대원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미안한 마음을 시원한 음료수 대접으로 대신했다.

인간의 욕심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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