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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 '식민지'다.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 있는 주장이다. 수도권이 아무리 거대하다 해도 아직 지방에는 2천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지방은 식민지가 맞다. 서울공화국에서 모든 자원과 인프라를 서울에 빼앗기고 있는 식민지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논객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가 최근 지방이라는 '식민지'에 대한 책을 냈다. 책 제목부터가 눈길을 끈다. 제목이 '지방은 식민지다'(개마고원, 2008)다.

 

"'식민지'는 과도기적 용법"

 

강 교수는 머리말에서부터 '한국형 식민지론'을 편다. 강 교수는 "지방은 내부식민지"라고 말한다. '내부식민지(internal colony)'는 "1970년대 남미 종속이론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이론"으로 "식민지는 국가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극심한 지역간 불평등의 형식으로 존재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실제로 책에서는 지방 자원의 서울 집중화를 보여주는 자료들을 제시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 재학생 40여만 명 가운데 지방 출신은 절반 가량인 20만 명이나 되며, 이들의 학부모들이 서울로 보내는 등록금만 연간 9천억 원에 이른다" "2004년 말 현재 수도권의 인구는 주민등록인구 기준으로 2321만 명으로 전체 4858만 명의 47.8%". 과연 이 나라가 '서울공화국', '수도민국'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강 교수는 '식민지'라는 말이 부정적 용법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내부식민지'라는 말이 지방 사람들에게 열패감을 안겨줄지 모른다"는 점이 걱정된다며 "지방 사람들의 자존감을 살리는 노력을 병행하는 걸 전제로 해서, 과도기적 용법으로서 내부식민지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게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지방사람들이 그리 반기지 않을 법한 용어('내부식민지')를 사용했지만 이 책의 저자 강준만 교수는 그동안 지방 살리기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사람이다.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그는 지난 1988년 전북대 신문방송학과에 처음 몸담은 이래로 20여년간 전북에서 살면서 "지방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강 교수는 책에서 "그간 나는 지방을 옹호하는 강경한 목소리를 많이 내왔는데, 글을 쓰고 나서 매번 후회하곤 했다. 사람들이 영 좋게 보질 않기 때문"이라며 "지방에 살다보니 한 맺힌 게 많다고 본다. 심지어 지방 사람들조차 그렇게 본다. "이젠 웬만하면 만족하고 사시지요." 그런 고마운(?) 말씀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결코 지방을 '옹호'하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서울공화국'과 '지방은 식민지'라는 문제의식에 근거, 시작한 책이지만 강 교수는 결코 이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이미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그는 "이 책은 '내부식민지'의 책임을 중앙에만 묻지 않는다"며 "오히려 지방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더 비중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책은 1장에서 10장까지, '내부식민지'의 정치적 현실에서 지방신문, 지역주의 등 지방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 걸쳐 꾸준히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늘 '큰일' 걱정만 하다가 '작은 일'을 소흘히 함으로써 종국엔 '큰일'을 망치는 게임을 하는 것 같다. 또한 입만 열면 '위에서 아래로'의 방식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왜 세상을 바꾸는 일마저 '위에서 아래로'의 방식에 의존하는지 모르겠다"(1장),

 

"지방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할 순 없다. 나는 지금과 같은 '내부식민지' 체제하에선 지방 엘리트의 상당수가 현 '서울공화국' 체제의 공범으로 가담하고 있기 때문에 '수도권 대 지방'이라는 구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선명하진 않다고 생각한다."(2장)

 

"아무리 감동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지역에서만 유통되어야 하는 현실을 시청자들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어디 한 번 물어보자. 공영방송인 KBS의 두 채널 모두가 서울 중심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7장)

 

지역의 변화를 위한 다양한 제안이 돋보인다

 

"대안없는 비판은 독설에 불과"하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언제나 비판에는 대안제시가 함께 해야 한다. 강 교수는 자신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다양한 답을 내놓았다. 기존의 원론적인 대안이 아니다. 그동안 해보지 않았지만 해볼 법한,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대안제시가 돋보인다.

 

"서울시장만 국무회의에 참석하게 할 것이 아니라, 지방 광역자치 단체장들도 돌아가면서 국무회의에 참석케 해야 한다. 지방 사람들이 믿게끔 해달라는 것이다. 늘 '서울 찬가'만 불러대면서 심신이 지칠 때만 휴식과 여가 장소로 지방을 찾는 체질을 원초적으로 바꿔야만 지방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2장)

 

"지방 사람들이 체념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도 정도 문제다. 지금과 같은 서울 중심적 소통구조는 지방을 넘어 국가적 재앙이다. 서울 중심의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 비용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정책결정자들의 의식이 귀향을 하는 설과 추석 때뿐만 아니라 1년 365일 내내 서울이 아닌 전국을 생각할 수 있게끔 소통구조부터 개혁하려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야 한다."(7장)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베스트 의원' '베스트 교육자'를 뽑아 시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의사 사건(pseudo-event) 만들기'도 그 자체로서 콘텐츠의 가치가 있는 동시에 지역민들의 지역에 대한 관심과 주목도를 높임으로써 수용환경에 변화를 줄 수 있다."(7장)

 

"지역의 우수한 인재를 서울로 보내는 걸 지역발전 전략으로 삼는 '내부식민지' 근성만큼은 꼭 청산해야 한다. 유능한 인재일수록 지역에 붙잡아두는 걸 지역발전 전략의 제1 원칙으로 삼지 않는 한 중앙의 오만한 지방 폄하는 계속될 것이며, 지역분권화는 신기루가 될 수 밖에 없다. 지방 내부 개혁과 인재 육성을 지역분권의 초석으로 삼아야 한다."(머릿말)

 

결국 지방 개혁은 '지방 내부 개혁'과 '서울로 빼앗기지 않는 인재육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지방이 한국을 책임지자"

 

지방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꼬집었던 강 교수는 '맺음말'에선 "지방이 한국을 책임지자"고 말한다. 강 교수는 "지방분권·지역균형발전의 이해관계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은 어느 한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한쪽이 피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을 하는 셈이지만, 비수도권에선 수도권의 입장까지 헤아리는 제3의 대안들을 적극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우리만 죽는다"고 외치는 걸론 약하거니와 모자란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비수도권의 연구·홍보 기능이 앞서야 한다. 돈과 인력을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며 "중앙정부가 수도권만 챙기더라도 비수도권은 한국 전체를 책임진다는 이미지와 더불어 실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헤게모니도 가지면서 속된 말로 '말빨'이 먹힌다"고 주장한다.

 

강 교수는 비수도권 지역들이 이런 노력들을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다"며 비수도권 13개 광역단체가 '느슨한 연대'를 이룰 것을 주문한다. 큰 부담을 갖지 않고 지속가능하게 가기 위해서는 '느슨한 연대'를 통해 지방이 단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권한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며 "제대로 된 분권 시스템의 적용을 통해 전체의 발전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걸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에 대한 다양한 분야를 다룬 이 책은 지방에서 먼저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강 교수의 메시지부터 "지방에서 먼저 바꿔나가자"는 내용을 담고 있을뿐더러 지방에서 아직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들에 대한 아이디어도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민원 교수가 지난 2006년 출간한 책 제목처럼 '지방이 블루오션이다'(문화유람, 2006). 모든 것이 중앙에 쏠려있기 때문에 아직 지방에는 시도해야 할 것들도, 극복해야 할 것들도 많다. 지방의 현실은 아직도 암담하지만 지방엔 희망이 있다. 강 교수가 마지막에 남긴 문장 한 줄이 자꾸 가슴에 닿는다.

 

'지방이 한국을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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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선샤인뉴스(sun4i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방은 식민지다! - 지방자치.지방문화.지방언론의 정치학

강준만 지음, 개마고원(2008)


태그:#강준만, #지방, #식민지, #선샤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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