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총선이 코앞이다. 야권 분열과 최악의 공천 파동은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정치권의 대립으로 선거구 획정도 늦게 된 데다, 중앙 정치의 파동이 워낙 세다 보니 지방 이슈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지난 총선에서는 '복지'라는 정책 이슈라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마저도 없다. 공천 줄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풀뿌리 정치'는 관심 밖이다. 말이 좋아 '전략 공천'이지 선거때마다 되풀이되는 '낙하산 정치' '호명의 정치'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토대를 허약하게 만든다.

집에 두꺼운 선거공보물이 왔길래 펼쳐봤다. 5명의 후보가 나왔는데 이 공보물을 보고서야 비로소 누가 출마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정책을 훑어봤다.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선거때만 되면 공수표처럼 남발하는 그렇고 그런 개발 공약들은 그렇다 치고 죽어가는 농업, 농촌의 처지에 대한 현실 인식도 안이하다. 게다가 모든 후보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정책에서 '핵발전소' 문제는 쏙 빠졌다. 잦은 고장과 부품 비리 문제로 '누더기 원전'이라는 소리를 듣는 영광 한빛원전이 있는 지역구인데도 말이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내부식민지체제'

.
▲ <지방식민지 독립선언> 표지 .
ⓒ 개마고원

관련사진보기

지방 이슈와 정치의 실종은 '풀뿌리'가 배제된 한국 민주주의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에 대해 강준만 교수는 "지방이 중앙 정치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건 지방 엘리트가 지방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더 챙길 수밖에 없다는 걸 시사한다.

중앙 정치 대리전에 올인하는 지방 엘리트의 머릿속에 지방보다는 중앙이 더 큰 자리를 점하고 있으리라는 건 뻔한 게 아니냐는 말이다. 중앙정부는 바로 그 점을 파고들어 천연덕스럽게 '지방분권 사기극'을 저지르고 있으니, 도대체 누굴 더 탓해야 하는가?"(<지방 식민지 독립 선언>, 45쪽)라고 개탄했다.  

오랫동안 지역주의 청산을 학문적 과제로 삼고 연구해 온 저자는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전 영역에서 나타나는 서울과 지방간 구조화 된 격차와 차별을 '내부식민지체제'라고 정의한다. '내부식민지체제'란 서울을 중심으로 국가의 모든 기능이 초집중화된 시스템 속에서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로 밖에 허락되지 않는 체제를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지역균형발전'의 다른 표현은 '서울패권주의' 타파다. 서울로의 초집중화 현상과 이로 인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전반의 기형적 구조에 대한 개혁이 없고서야 정치권의 '지역균형발전' 구호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 집중화 현상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 집중화로 인해 죽어가는 지방의 비용도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전작인 <지방은 식민지다>에서 저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2002년 현재 서울은 한국의 중앙행정 기능의 100%, 경제 기능의 76.1%, 정보 기능의 93.6%, 국제 기능의 92.7%를 보유했다. 수도권의 국토면적은 12%에 불과하지만 전체 인구의 47%가 거주하고 있고, 100대 기업체 중 95개, 공공기관의 90%가 몰려있고, 금융기관 대출의 64%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중략)...서울의 극심한 교통 체증과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국고 손실만 해도 연간 13조~14조원에 이른다. 그런데 이런 비용은 아예 고려되지도 않는다. 국민 모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누가 나서야 할까? 시민운동단체들이 문제 삼아야 한다.' (<지방은 식민지다>, 78~80쪽)

'2006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사회적 자본 실태 종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 국민들의 사회적 관계망 가입 비율은 동창회가 50.4%로 가장 높고, 종교 단체 24.7%, 종친회 22.0%, 향우회 16.8%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공익성 짙은 단체들의 가입률은 2%대에 머물렀다...(중략)...나의 문제의식은 개혁이나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위한 모든 시도가 한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보루라 할 동창회, 종교단체, 종친회, 향우회 등과 따로 노는 현실에 대한 성찰이다. 동창회, 종친회, 향우회에 공공적 성격을 가미하는 시도를 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진보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존 '모드'를 한번 바꿔보자는 것이다. 나는 그런 확신에 근거해 '실천 가능한 방안'으로 동창회 활동에 공익적 성격을 가미하자고 주장해왔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회비의 1%라도 떼어내어 공익적 목적을 위해 쓰자는 것이다.' (<지방은 식민지다>, 292~296쪽)

지방정치의 '1당 독재'를 종식시켜야

<지방은 식민지다> 표지
 <지방은 식민지다> 표지
ⓒ 개마고원

관련사진보기

너도 나도 지역주의 청산을 외치지만 선거 때만 되면 지역주의를 고수하는 것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려는 행태가 비일비재하다. 덕분에 지방 정치는 '1당 독재'를 유지해 왔다.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맹주고, 영남에 가면 새누리당이 주인이다. 그나마 이번 총선이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영호남에서 지역 1당 독재 구도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중앙집중화가 단순히 서울로의 공간적 집중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주요 부문에 있어 엘리트의 중첩성이 그 위에 합쳐진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한국사회 지리적 협소함이나 전통사회의 중앙집중화된 유교적 관료 문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역시 냉전반공주의의 강력함이 만들어낸 가치 구조의 획일화와 깊은 관계를 갖는다. 이 단원적 가치 구조가 사회의 다원주의적 성격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기 어렵다는 것은 강조할 필요도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앙집중화가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강력한 동인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지금 우리는 '중앙제국주의'의 함정에 빠져 권력을 가진 쪽이나 저항을 하는 쪽이나 사실상 기존 체제를 유지시키는 '적대적 공존'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며 "풀뿌리 정치는 '빨대정치'로 전락했다. 중앙 정당들이 지방을 식민지화한 가운데 빨대를 꽂고 단물만 빨아먹고 있다. 지방정치는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1당 독재' 체제로 전락했고, 감시와 견제를 해야 할 언론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지방은 식민지다>, 201쪽) 비판했다.

'2014년 지방선거가 끝나자 어느 정당이 이겼는가를 놓고 말이 많았다. 승자는 누구인가? 야당인가, 여당인가? 아니면 무승부인가?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승자는 '중앙'이요, 패자는 '지방'이었다.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자는 정신 나간 구호에서부터 우리 지역 출신 대통령 한번 만들어보자는 '지역 대망론'에 이르기까지, 중앙 권력을 염두에 둔 이슈와 전략이 지배한 선거를 지방선거라고 할 수 없었다.' (<지방식민지 독립선언>, 42쪽)

지방 식민지 체제를 종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더 이상 '서울 탓'만 하지 말고 지방민들 스스로 지방을 살리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중앙집권체제가 가져온 '레드 오션' 체제가 모든 한국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 현실과 더불어 지방이 '블루 오션'이라는 점을 이해하게끔 해야 한다. 지방의 무능과 부패를 말하는 사람들에겐 "권한은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며 "분권 시스템은 동기부여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유연성을 가져다줌으로써 전체의 발전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걸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고(<지방식민지 독립선언>, 294쪽)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지방은 식민지다>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펴냄 / 2008.10. / 15,000원)
<지방식민지 독립선언>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펴냄 / 2015.9. / 15,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방은 식민지다! - 지방자치.지방문화.지방언론의 정치학

강준만 지음, 개마고원(2008)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 서울민국 타파가 나라를 살린다

강준만 지음, 개마고원(2015)


태그:#강준만, #내부식민지, #서울공화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