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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낙안읍성의 위쪽으로 구불구불 올라가면 금전산(金錢山)이라는 곳이 있다. 낙안읍성에서도 어렵잖게 볼 수 있는 이 금전산은 바위와 수풀이 적절하게 섞인 산이다. 낙안읍성에서 바라보면 이 산의 바위들이 한쪽으로 쏠려있고, 다른 쪽은 바위가 흐트러져있다. 마치 돈꿰미를 한쪽에 툭 던져놓았는데, 자루의 입이 풀려 속에 있던 엽전들이 좌르르 펼쳐진 모양새랄까? 아무튼 이름만으로도 왠지 배가 부르며 뭔가 있지 않을까 기웃거리게 하는 산이다.

 

사실 금전산이라는 명칭은 부처님의 5백제자 중 한명인 금전비구(金錢比丘)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약초를 캐고 팔고 지내던 가난한 금전비구는 부처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약초를 팔아 모은 돈으로 공양을 하였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5백제자 중에서 가장 훌륭한 제자가 되었다고 하니, 그 명칭을 초창주 담해조사가 본떠 명명하였다 한다.

 

이 금전산에는 금둔사(金芚寺)라는 절집이 있단다. 낙안 쪽을 자주 지나칠 때마다 간판을 보고 금둔사라는 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긴 알았었다. 하지만 막상 가려고 하면 시간 없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우연한 기회로 이곳을 찾게 되었다. 때는 청매실이 익어가는 봄날, 벌써 몇 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곳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것은 그때 그곳에서 받은 감동이 아늑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금둔사는 도로변에 있다. 하지만 말이 도로변이니 구불구불 올라간 산 중턱이라 딱히 도로변이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산사 옆에 길이 터졌기에 그런 것이지, 길도 없었을 시절엔 여느 절과 마찬가지로 헥헥거리면서 올라가야 이곳의 약수터에서 물 한잔 떠다 마셨을 수 있었으리라. 금둔사로의 길목은 차곡차곡 쌓아올린 돌탑이 있어 입구라는 걸 말해주며, 천천히 올라가면 장승 두 분이 답사객을 맞는다.

 

선암사와 금둔사, 그 비슷한 모양새 이야기

 

 

산사의 입구에 두 장승이 떡하니 서있는 모습이 퍽이나 흥미롭다. 이러한 모양새는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답은 머잖은 곳에 있었다. 바로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선암사는 조계산에 있는 그윽한 산사로서, 송광사와 함께 순천을 대표하는, 아니 한국을 대표하는 대찰 중 하나이다.

 

비슷한 느낌을 지닌 이 두 절은 태고종에 속한다. 그리고 같은 순천에 있는 사찰이라서 그런지 서로의 공통점이 몇 개가 있는데,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서 흥미를 끈다. 마치 금둔사가 작은 선암사 같다고나 할까? 그런 서로의 비슷한 점을 천천히 펼쳐본다.

 

앞서 말한 입구의 두 장승. 절 입구에 사이좋게 있는 모습이 노승 두 분께서 객손을 맞이하는 모양새다. 왼쪽의 장승은 진한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과 큼지막한 코, 헤벌쭉하게 벌리며 이빨이 다 드러내며 웃고 있는 얼굴. 그 아래에 뭉게구름같이 뭉실하면서도 세 가닥으로 점잖게 내려온 수염을 가졌다. 오른쪽 장승의 모습은 전체적인 특징은 미묘하게 다르다. 왼쪽의 장승이 젊은 승려라면 오른쪽은 전형적인 노승이다. 주름살에 흰 눈썹, 그리고 주름이 세월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았다.

 

왼쪽의 장승은 간만에 온 객손이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반면 오른쪽 노승은 그런 왼쪽 장승에게 약간 핀잔의 눈초리다. ‘오는 길 안막고, 가는 길 안말린다’는 식으로 무덤덤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간만의 객손이 싫지는 않는 모양이다. 수염 너머 보이는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미소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할애비 찾으러 간만에 시골로 놀러온 손주를 보는 모습이랄까...

 

장승을 지나 올라가면 일주문이 있다. 사찰의 일주문엔 금전산금둔사(金錢山金芚寺)라고 금박 입힌 글씨로 써있다. 요새의 사찰에 가면 어렵잖게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산과 사찰의 이름 때문인지 묘한 느낌이다. 자. 이제 이 일주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금둔사의 모습이 펼쳐진다.

 

신발을 벗듯 세속의 번뇌와 고통도 다 벗고 지나오시지요

 

일주문을 건너면 계곡을 사이에 두고 그 계곡 건너편에 대웅전이 보인다. 그리고 그 대웅전으로 가려면 돌로 된 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 다리는 방하교(放下橋)라고 불리는 다리로서 홍교다. 홍교란 무지개다리를 의미하는데, 그 모양이 무지개처럼 둥그스름하게 되어 아치의 모습을 보이는 게 특징이다.

 

방하교라는 이름이 심상치 않다. 도대체 무엇을 아래에 놓으라고 하는 것일까? 바로 이 절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세속의 번뇌와 고통을 놓으라고 하는 뜻이다. 번뇌와 고통. 이는 사바세계에 사는 모든 중생들에게 짊어진 짐이라고 하겠다.

 

중생들은 알고 있다. 자신들이 어깨에 메고 있는 것은 미련이라는, 그리고 욕심이라는 이름의 짐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놓지는 않는다. 그저 끝까지 붙잡은 채 무덤까지 가져갈 궁리만 한다. 그러한 중생들에게 이 다리는 놓으라고 한다. 미련을 놓고 욕심을 놓는, 그게 바로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는 제일의 방법임을 그대로 말해준다.

 

 

방하교 건너편에는 대웅전이 있으며 그 앞에는 8각9층탑과 범종각이 있다. 마당은 자갈로 깔아 놓아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이 들지만, 반면에 인위적인 색채가 짙다. 전통사찰에선 아직도 일부러 마당에 흙으로 그냥 놔두는 경우도 많다. 눈이나 비가 오고 난 후에는 다소 불편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흙만의 운치가 산다. 금둔사가 그렇게 오래된 절은 아니라 이러한 점을 살리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살짝 인위적인 색채는 조금 배제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란 안타까움도 든다.

 

선암사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축대를 이용한 건축이다. 선암사나 금둔사나 둘 다 축대를 이용하여 공간을 만들고 그 위에 사찰을 세운 것이 특징이다. 이는 완만한 경사가 있는 경우에 주로 쓰는 방식이다. 하지만 단순히 축대의 존재가 비슷하다고 해서 닮았다고 하지 않는다.

 

선암사와 마찬가지로 금둔사는 축대가 주로 세로로 놓여 있다. 이러한 축대 배치는 절을 아담하게 하면서도 깊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시선이 닿았을 때보는 잘 모르더라도 거닐면 거닐수록 처음보다 몇 배는 더 크다는 생각에, 그리고 좀 더 그윽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니깐 맛을 보면 볼수록 깊은 향이 느껴지는 오묘한 차의 향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산신령께서 떠주시는 약수, 그 맛은 어떨까?

 

 

절집에 오면 누구나 찾게 되는 게 있다. 바로 약수. 절맛은 약수맛이다. 약수맛이 좋은 절치고 실망시키는 절이 없다. 금둔사의 약수터도 어디 한번 찾아보자. 그런데 약수터가 잘 보이지 않는다. 기웃기웃 거리면서 좀 올라가보면 왠 작은 건물이 하나 보인다. 가까이가보면 익숙지 않은 관경에 깜짝 놀라게 된다.

 

기둥 4개의 한간짜리 건물에 안쪽엔 그림 한 장이 걸려 있고 그 앞에 약수가 놓여 있다. 약수는 계속 흐르면서 나와 답사객의 입을 적셔주지만 사뭇 의아하다. 언 듯 보기엔 산신령께서 동자와 함께 자리 잡아 있다. 그림 속 산신령은 답사객을 천천히 쳐다본 후 체하지 않게 천천히 시원한 물을 마시라는 듯이 앉아 있다.

 

알고 보니 산신령은 아니고 약사여래이다. 약사여래는 불가에서 중생들을 모든 병을 고쳐준다고 하는 부처님이다. 약사여래에게 소원을 빌어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 하면 약사여래께서도 모른 척 할린 없다. 그러한 약사여래의 마음을 담은 물이 바로 금둔사의 약수가 되겠으니, 이 물을 마신다면 그만큼 몸에 있던 아픔과 때가 서서히 벗겨진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금둔사는 폐찰을 최근에 들어 다시 복원하였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축건물들이 많지만, 이곳에 있던 두 바위는 이전부터 쭉 금둔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지금 그 두 바위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불자들과 답사객들을 맞고 있다.

 

 

하나는 석조마애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은 두 손을 위아래로 한 지권인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진리와 지혜를 만방에 비추는 것 같다. 비로자나불 자체가 산스크리트어로 태양을 말하기에 더욱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병풍처럼 오목하게 들어가고 그 가운데에서 불룩 나왔기에 연화대좌가 소파처럼 느껴져 편안한 느낌을 준다. 부처님이 편안하게 앉아 중생들을 바라보니 중생들도 당연 편안치 않겠는가?

 

또 다른 하나는 불조전이라 하여 불조마애여래좌상이다. 여기에는 여러 부처님들이 모셔져 있는데 바로 불가에서 말하는 53불(조각에서는 60불)이 그것이다. 53불은 미륵보살이 성불하여 부처가 될 때 나타난다고 하는 부처들로서 미래의 부처님을 상징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60불이라 하여 7분의 부처님이 더 모셔져 있는데 이는 과거칠불이라 하여 과거에 있었던 7분의 부처님을 말하며, 그중 마지막 부처님이 바로 석가모니불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53불을 이렇게 표현한 곳은 금강산 유점사와 조계산 선암사가 있다. 금강산 유점사는 6.25전쟁 당시에 불타 사라졌다고 하니 현존하는 곳은 선암사와 이곳이라 하겠다. 이 점에서도 선암사와 이 금둔사의 깊은 공통점과 연관성을 잘 알 수 있다. 반면 선암사는 53불이 모셔진대에 비해, 금둔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60불이 모셔져 있어 약간의 차이도 보여준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더욱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금전산 금둔사다. 조용한 사찰, 그리고 이곳저곳에 깊은 의미를 지니고 이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는 것도 어떨까?

 

덧붙이는 글 | 2008년 5월 5일 순천 금전산 금둔사에 갔다와서 쓴 글입니다.


태그:#금둔사, #금전산, #보성, #사찰,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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