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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학희망 김선경입니다.”
“아, 선경씨. 오랜만이에요. 근데 무슨 일이에요?”
“이번에도 일본에 가려고요. 그래서 전화 드렸어요.”
“지금 일본 너무 더워요. 햇살이 피부를 찌르는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8월의 뜨거운 햇살. 아스팔트가 녹아버릴 것 같은 더위를 뚫고 우리가 떠난 곳은 일본이다. 작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일정에 따라 갔던 대학희망은 이번에는 자체적으로 ‘2008일본평화체험’을 준비했다.

사실 이번 행사 준비를 위해 국제전화를 하는 것부터도 상당한 부담과 떨림이었다. 그러나 막상 전화통화를 하고 나니 너무 큰 기쁨이었다. 작년 교토에 있는 리츠메이칸 대학생들과의 간담회를 조직해주시고, 우토로 마을을 안내해주셨던 김혜옥 선생님과의 전화통화가 그러했다.

8월 5일 일본으로 떠나기 전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화이팅을 다지는 대학희망 친구들입니다.
▲ '야스쿠니 반대', '동북아평화실현','일본역사왜곡반대' 힘찬 구호를 다지는 모습 8월 5일 일본으로 떠나기 전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화이팅을 다지는 대학희망 친구들입니다.
ⓒ 안승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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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근황과 안부를 묻는 이야기부터 왜 다시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평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일본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작년에 부족했던 간담회를 어떻게 하면 좀 더 활기차고 즐겁게 가져가볼지. 이런 저런 이야기 속에 이번 일정에 대한 확고한 목표와 의미를 세울 수 있었다.

88만원세대에게 자신이 아닌 세상을 고민케 하는 시간

2008일본평화체험은 20살, 21살 후배들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조국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야 하나’라는 다소 추상적인 물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케 하는 일정이다.

우리들에게는 다소 생뚱맞고 별로 중요치 않는 질문들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가장 큰 질문이고 고민이어야 한다. 다만 한국사회가 대학생들을 끊임없이 취업과 학비벌기에 내몰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고민은 20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가당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강요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야스쿠니가 왜 문제가 있는지 백날 듣고 공부해 봐도 직접 가보는 것만 못하다는 그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야스쿠니에 강제로 아버지가 합사되어 있는 이희자 선생님의 눈물을 보았기 때문에 결코 이 문제가 역사 속 책장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이다.

우리의 일정은 끊임없는 자기고민과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였다. 그리고 그 이해는 동시에 우리에게 행동을 요구하는 것들이었다. 이런 것의 정점에는 바로 ‘야스쿠니반대촛불공동행동’이 있었다. 

사실 촛불은 낯설지 않다. 우리에게는 이미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외치던 광화문의 100만 촛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촛불이 친숙하다. 촛불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고 강한지를 경험한 친구들이다. 이런 촛불을 서울이 아닌 도쿄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은 무척이나 큰 감동이다. 그것도 야스쿠니 신사를 반대하는 촛불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8박 9일간의 일정, 야스쿠니촛불행진을 가장 크게 기대해

이번 일본평화체험은 총 8박9일의 일정이다. 5일부터 시작된 일정은 13일 끝이 났다. 이 일정 속에서 후배들을 비롯해 가장 크게 기대했던 날은 10일. 10일이 바로 촛불행동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 날은 낮 1시부터 시작돼 저녁 9시에 끝나는 일정이었다. 낮 1시부터 시작된 촛불공동행동은 야스쿠니신사에서 도보로 10분정도 떨어져 있는 일본교육문화회관에서 진행되었다.

8월 10일 낮, 일본우익들은 이날 집회를 열어 야스쿠니반대 촛불행진을 반대했다.
▲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서 행사장 주변에 모인 일본우익들 8월 10일 낮, 일본우익들은 이날 집회를 열어 야스쿠니반대 촛불행진을 반대했다.
ⓒ 안승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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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육문화회관에 가기위해 역에서 나왔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본경찰들이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지나가나는 자동차를 검문하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울려 퍼지는 일본 우익차량의 선전과 비방소리는 우리를 매우 긴장케 했다.

그리고 가로수에 붙은 ‘독도는 다케시마다’라는 글귀. 우리는 매우 위축되었다. 그러나 교육문화회관 안에서 만난 일본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긴장했던 마음을 확 풀 수 있었다. 우리보다도 그들은 일본에서 실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우익들의 표적이 되어 테러를 당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를 반대하기 위해서 일본 각지에서 모인 활동가들이었다. 그들의 온화한 표정과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얼굴은 우리에게 큰 힘이었다.

행사가 시작되고 단상에 오른 얼굴 중에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먼저 한국 측을 대표해 발제에 나선 한명숙 전 총리, 그리고 ‘야스쿠니 문제’라는 책을 지은 일본의 다카하시 데츠야 도쿄대 교수가 그러했다. 전 총리로서 쉽게 오기 힘든 자리임에도 기꺼이 자리를 빛내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갖는 문제인식에 대해 잘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다카하시 교수의 이야기 또한 훌륭했다. 책으로만 접했던 그의 이야기를 직접 바로 앞에서 듣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신기하고 새로운 일이었다.

이어진 증언에서 이희자 선생님의 이야기 또한 감명 깊었다. 선생님의 확실하고도 명쾌한 이야기. 그리고 지극히 너무도 상식적인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에 참여한 1천여명의 사람들도 큰 박수를 치며 공감했다. 야스쿠니의 문제는 일본 활동가들에게도 일본의 평화를 위해서도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그들이 갖는 고민 또한 같은 맥락에서 제대로 된 역사청산을 위한 행동이며, 오늘의 자리가 하나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날 일본교육문화회관에는 1천여명의 활동가와 시민들이 모여 야스쿠니반대행동에 함께 했다.
▲ 평화만들기 율동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대학희망 학생들 이날 일본교육문화회관에는 1천여명의 활동가와 시민들이 모여 야스쿠니반대행동에 함께 했다.
ⓒ 안승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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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콘서트 자리에 대학희망에서 ‘평화만들기’라는 노래에 맞춰 율동공연을 선뵈었다. 사실 연습이 많이 부족했지만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평화’라는 메시지가 일본인들에게 작은 떨림으로 전달되는 것을 보면서 무척 감명 깊었다.

그들이 치는 박수소리와 환호 그리고 응원의 메시지들은 우리에게는 매우 큰 힘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춤을 춰보는 친구들도 있었고, 몸치인 친구들도 있었지만 야스쿠니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큰 힘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인 공연이었기에 더욱 가슴 뭉클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특별초대된 권해효 배우의 ‘임진강’이란 노래는 정말 우리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우리는 문화공연을 즐겁게 끝내고 난 뒤 야스쿠니신사 주변을 행진했다. 우리가 행진하는 길 건너편으로 계속 쫓아오는 일본우익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섭기도 했지만, 보면 볼수록 그들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들의 ‘쌩쇼’는 우리의 행진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촛불을 들었고 그들의 손에는 육일승천기가 들려 있었던 것. 우리가 왜 촛불을 들었고 도쿄에 왜 서있는가를 다시 한 번 자각하는 자리가 되었다.

8월 10일, 베이징 올림픽에 정신 없을 때 도쿄에서는 야스쿠니 반대 촛불행진이 있었다.
▲ '야스쿠니 반대 한다' 도쿄 도심에서 울려퍼진 야스쿠니 반대 촛불행진 8월 10일, 베이징 올림픽에 정신 없을 때 도쿄에서는 야스쿠니 반대 촛불행진이 있었다.
ⓒ 안승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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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평화체험을 마치면서 아직도 잊지 못하는 장면들이 있다. 오사카 민족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우토로 마을에서 만난 할머님들의 눈물과 거친 손, 나가사키에서 우연히 만난 재일조선인 친구들과 함께 외쳤던 ‘통일’이라는 구호 그리고 야스쿠니반대를 외쳤던 일본인들과 함께 한 촛불행렬. 이런 장면들을 어떻게 다시 또 볼 수 있겠는가.

너무도 뜨거웠던 여름의 햇빛, 그리고 매일 땀으로 축축이 적은 셔츠. 그리고 뭉친 어깨끈육과 왼쪽새끼발가락에 굳은 살. 8박 9일 힘들고 고된 일정이었지만 또다시 내년을 준비하라고 하면 더 열심히 잘 해보겠노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 이 더운 여름에 어떻게 갔다 왔느냐고 물어본다면 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일본의 여름을 먹어 삼킬 수 있는 더욱 뜨거운 열정과 살아있는 분노가 가슴에 뜨겁게 달궈져 있어 절대 덥지 않았다고. 오히려 차갑고 메마른 일본 땅에 우리는 희망의 뜨거운 씨앗이었다”라고.

덧붙이는 글 | 민족문제연구소 회보에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야스쿠니, #야스쿠니반대, #김선경, #대학희망, #경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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