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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요인들의 생활상

상해에 간 정묘희는 하루하루를 바삐 살았다. 당돌하게도 그 먼 길을 찾아갔을 때, 시아버지는 크게 놀라면서도 어린아이처럼 그녀를 반겼다.

"네가 어떻게 여길 왔느냐? 여기가 어떤 곳인 줄은 알고 온 것이냐?"

남편은 아예 기가 질려 버린 듯했다. 그는 아내를 단순하고 나약한 여성으로만 간주했던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속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정묘희는 친정 아버지가 준 돈을 시아버지에게 드릴 때, 그것이 독립 자금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그녀는 시아버지를 진정으로 존경했다. 시아버지 김가진은 몇 년 안 될 것임이 분명한 여생을 기꺼이 조국 광복에 바치기 위해 상해로 망명을 온 것이었다. 그녀는 임정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아버지를 비롯한 이시영, 이동녕과 같은 어른들을 돌보는 일도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임정 요인들의 생활 형편은 무참할 정도였다. 시아버지와 남편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름만으로도 민족적 지사인 그들은 대부분 하루 식사를 모두 배달식으로 때우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식 백반이 아니었다. 반찬을 찔러 넣은 중국식 빵이 주식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빠우판'이라고 불렀다. 식대는 한 달에 한 번 계산하는데 그나마도 지불이 밀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시아버지의 숙소는 프랑스 조계 좁은 골목에 있었다. 임시정부에서는 최연장자인 시아버지를 특별히 대접하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기에 월세로라도 집을 마련해 준 것이었다. 방이 셋이었지만 하나를 다시 다른 사람에게 세 내주어 적은 임대료나마 받아 생활비에 보태고 있었다.

그녀는 법무총장인 예관 신규식이 임시정부에서 가장 핵심적 인사라는 것을 알고는 내심 놀랐다. 그는 이미 1911년에 거액의 자금을 가지고 상해에 와서 중국 혁명 주역들과 교류하며 임시정부의 기반을 닦았다고 했다. 이승만이 상해를 버리고 미국으로 가 버린 후, 신규식은 어려운 임정의 일을 거의 도맡아서 꾸려가고 있었다.

상해임시정부의 실정은 국내에서 알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정묘희는 정치적인 동향을 정확히 읽을 수는 없었지만 민족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의 생계가 저리 막막해서야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독립지사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구차한 형편을 밖으로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녀가 보기에 그들은 순수한 애국자임이 분명했다. 이제 그녀는 그런 어른들이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여보, 제가 국내에 가서 자금을 구해 와야 할까 봐요."

남편은 뜨악한 눈빛으로 그녀를 볼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남편의 체면을 생각해서 먼저 남편에게 상의하는 형식을 취했을 뿐이었다.

"아버님, 국내에 가면 친정 아버지가 돈을 주실 겁니다."

시아버지는 일단 만류했다. 이시영과 이동녕과 안창호는 위험한 일이라고만 말했다. 그녀가 계속 자기 주장을 꺾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똑같은 말만을 되풀이했다. 아녀자로서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아녀자라는 말이 앞에 하나 붙었을 뿐이었다.

정화, 국내로 잡입하다

정묘희는 답답해졌다. 그래서 그녀는 신규식을 찾아갔다. 그녀는 그 동안의 살림 형편을 넌지시 말하고 자신의 뜻을 밝혔다.

"엉뚱한 발상이라고 여기시겠지만 제가 친정에 가서 돈을 얻어 올까 합니다."

신규식은 40대 초입의 신사였다. 그는 정중하면서도 진솔하게 그녀에게 답변해 주었다.

"부인도 아시겠지만 지금 국내는 사지(死地)와 같습니다. 게다가 동농(시아버지 아호) 선생의 망명으로 왜놈들의 감시가 심할 것은 자명합니다. 물론 사려 깊게 처신하시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붙잡히게 되면 큰 고초를 겪게 되실 겁니다."

그녀는 갑자기 가슴이 미어져옴을 느꼈다. 차라리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더라면 그녀의 가슴은 그렇게 아프지 않았을 터였다. 단호히 막지도 못하면서, 한 나약한 여인의 신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신규식의 진실성이 그녀를 감동시켰던 것이었다.

신규식은 그녀의 일에 공식적인 성격을 부여했다. 그는 자신의 지시에 따르는 것을 전제로 그녀의 국내 잠입을 허락한 것이었다. 그녀의 공식 임무는 독립 자금 조달이며 출발, 잠입, 귀환의 모든 경로는 임정의 명령대로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신규식은 그녀에게 노끈처럼 묶여진 암호 편지 여러 통을 주었다. 신규식은 친정에 들르지 말고 자기 조카인 세브란스 의사 신필호의 집에서 유숙하라고 했다.

그녀는 3월 초순 상해를 떠났다. 국내 잠입 경로는 연통제의 조직망을 이용한다고 했다. 연통제(聯通制)란 임시정부에서 국무원령 제1호로 공표한 법령이었다. 조선총독부의 행정 조직에 대응하는 임시정부의 비밀 행정 조직인 연통제는 도, 군, 면까지 지부를 두었다고 했다. 연통제는 임시정부에서 공포하는 법령과 공문의 전포, 군인의 모집 및 징발, 구국금 모집 등이 주 업무로서 임시정부의 내무국과 교통국이 관할했다.

그녀는 이름을 정정화(鄭靖和)로 바꿨다. 그녀는 단동현까지 이륙양행의 선편을 이용했다. 불과 몇 년 전에 새로 생긴 이 항로는 임정의 요인들이 단골로 이용한다고 했다. 단동에는 일본 형사로 있으면서 실제로는 임정의 요원인 최석순이 있었다.

그녀는 임정의 지시에 따라 최석순을 찾아갔다. 최석순은 상해에서 온 비밀요원이 젊은 여자라는 사실에 놀라는 것 같았다. 그는 정화의 신분을 확인하더니 신의주로 넘어갈 안전한 방도를 생각해 보자고 했다.

정화는 낯선 남자 최석순의 집에서 하루를 묵어야 했다. 최석순은 정화가 잘 방에 들어와 방이 따뜻한지 살폈다. 그러더니 내일 일은 자기에게 맡기고 잠이나 푹 자 두라고 했다.

다음 날 정화는 최석순의 누이동생으로 가장하고 압록강을 건넜다.

"동생, 잘 가시오."

그녀는 속으로 '네. 오라버니'라고 대답하며 최석순과 헤어졌다.

정화는 신의주 시내에 있는 세창양복점을 찾아갔다. 양복점 주인 겸 재단사 이세창은 임시정부의 요원이었다. 그도 최석순과 마찬가지로 임시정부의 신분증명서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는 정화가 신의주에서 서울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이세창은 소박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정화는 이세창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이세창의 옆모습에서 열정과 정의감을 읽을 수 있었다.

이세창은 그녀를 역까지 배웅하고 손수 차표까지 끊어 주었다. 열차에 오르기 전 이세창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내레 솔직하게 한마디 하갔는데, 젊은 아주머니레, 더구나 귀골로 곱게 산 사람이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시다. 독립 운동하는 유명한 사람들이레 다 이런 험악한 일을 하는 건 아니디요. 기렇디요? 나 같은 놈이나 하는 일인 줄 알았거든. 뎨발 몸조심하라요. 자기만 생각할 거이 아니라 남도 생각을 해야 되는 일이라요. 그래야 또 들어올 수 있으니까이."

조선의 서민들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그녀는 최석순과 이세창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낯선 두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교육 받지 못한 서민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외모나 말씨가 투박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참다운 인정과 교양이 있었다.

지주의 딸로 태어나 한말 정일품 가문의 며느리가 되었던 그녀로서는 서민 남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지내는 일은 상상조차 못해 보았었다. 따라서 그녀는 조선 서민들의 참 모습을 알 기회가 거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그녀가 지녀온 것은 그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였다. 그 점에 대해서는 그녀가 존경하는 시아버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민들은 곧 상놈이었고 그들에게는 주체성과 창조성이 없는 것처럼 그녀는 교육 받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들은 관대했고 성실하면서도 겸양의 미덕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애국 활동에도 지극히 순수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었다. 그녀는 학벌이나 문벌이 좋다는 상류층 남자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인간적 매력을 조선의 서민 남성들에게서 체험한 것이었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태그:#신규식, #연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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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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