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트래펄가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
 트래펄가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
ⓒ BBC

관련사진보기


한 여성이 경찰들이 탄 경호용 말에 무참히 몸을 짓밟힌다. 시민들이 달려가서 그 여성을 서둘러 끌어낸다. 흥분한 시민들은 경찰의 곤봉에 맞서 돌과 병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한다.

1990년 3월 31일, 영국 런던의 한복판 트래펄가광장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그 당시 시민들은 영국 정부에 의해 폭도로 비난을 받았지만, 이 사건은 당시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총리를 하야시키는 기폭제가 되었고, 결국 이 사건을 일으킨 부당한 정부 정책은 철폐됐다.

대처의 무리한 인두세(Poll tax) 정책

이 사건의 직접적인 계기는 영국 정부의 인두세 정책에서 비롯됐다. 1979년 영국 정부의 총리가 된 마가렛 대처는 세 번의 선거에서 계속 승리하면서 자신감이 한껏 고취되었다. 연속 집권으로 무서울 것이 없던 그녀는 1989년 스코틀랜드에 인두세 정책을 시행하더니, 1990년에는 잉글랜드와 웨일즈 전역으로 확대 실시했다.

대처 전 영국 총리.
 대처 전 영국 총리.
ⓒ 마가렛 대처 재단

관련사진보기


인두세는 지방세(Community Charge)의 일종으로 이전에는 그 사람의 소득이나 재산에 따라서 차등적으로 거두던 세금을, 일괄적으로 모든 어른에게 동일 금액으로 거두기로 한 것이다.

그 사람의 재산이나 소득과 전혀 관계없이 그 가족의 어른의 수에 따라서 세금을 거둬들이는 이 인두세는 그렇잖아도 심각하던 빈부 격차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게 분명해 보였다.

많은 시민들과 노조들은 이 세금 정책이 발표된 직후부터 "너무 불공평하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담이 너무 크다"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대처 정부는 이를 귀담아 듣지 않고 강행했다. 시민의 의견보다는 지방세를 더 확충해서 국가 재정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전국으로 번진 저항의 불길... 폭력 진압 후 폭도로 몰아붙인 경찰

높은 인플레이션과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 격차를 꾹꾹 참아온 국민들은 드디어 그날을 정했다. 1990년 3월 31일. 트래펄가 해전의 승리를 기념해서 만들어진 트래펄가광장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같은 날,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우에서도 5만 명의 시민이 행진을 시작했다.

이날 트래펄가광장에서 행사를 주최한 '반인두세 연합회(Anti-Poll Tax Federation)'는 당초 6만 명의 시민들이 모일 것을 예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참가자가 늘어 무려 20만 명이 집회에 모였다. 젊은이, 노인, 흑인, 백인 등 다양한 계층과 연령층의 사람들이 'NO POLL TAX PAY!'라고 적힌 플래카드와 깃발을 가지고 하이드파크 쪽을 향해 거리 행진을 시작했다.

처음에 이 행진은 평화로웠다. 사람들은 구호를 외치면서도 서로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이 평화로운 행렬은 대처 총리가 살던 다우닝가 근처에서 멈췄다. 이곳은 한국으로 치면 청와대 근처로, 영국 총리가 집무하는 곳이다.

집회에 참가한 엄청난 숫자의 시민들의 움직임에 불안감을 느낀 영국 경찰은 다우닝가 근처를 봉쇄하면서 폭력을 쓰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때리고 밀어붙였다. 시민들이 이에 저항하면서 시민과 경찰이 서로 쫓고 쫓기는 양상이 전개됐다. 그러자 경호용 말을 탄 경찰들이 곤봉으로 시민을 더욱 심하게 때렸고, 시민들은 지지 않으려고 돌과 병 등을 던지면서 저항했다.

이 와중에 한 여성이 달려오는 경호용 말에 깔려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흥분한 시민들은 더욱 거세게 저항했고, 화가 난 시민들은 결국 상점들의 유리를 깨트려 경찰에게 던지고 일부는 그 안에 있는 물건을 훔쳐가는 약탈까지 저질렀다.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물가를 폭등시킨 대처 정부에 화가 쌓일 대로 쌓인 시민들은 새벽이 넘어서까지 격렬하게 시위를 계속했다.

인두세 시위를 보도한 영국 BBC(http://news.bbc.co.uk/onthisday/hi/dates/stories/march/31/newsid_2530000/2530763.stm). 이 면에는 당시 시위 장면을 볼 수 있는 동영상도 있다.
 인두세 시위를 보도한 영국 BBC(http://news.bbc.co.uk/onthisday/hi/dates/stories/march/31/newsid_2530000/2530763.stm). 이 면에는 당시 시위 장면을 볼 수 있는 동영상도 있다.
ⓒ BBC

관련사진보기


하야하는 '철의 여인', 철폐된 인두세... 국민의 참뜻 승리하다

이 같은 저항에도 영국 정부는 반성은 하지 않고 다음날 오히려 시위대들을 폭도로 몰아갔다. 그러나 영국 시민들은 이미 텔레비전을 통해 얼마나 과격하게 경찰이 시민들을 때려잡았는지를 생생히 보았고, 국민들은 '철의 여인' 대처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인두세 납부 거부 운동을 벌이면서 조직적으로 저항했고, 결국 대처 총리는 그해 11월 20일에 실시된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그 자리를 존 메이저에게 넘겨줘야 했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았던 철의 여인도 그해 11월 22일 여왕에게 사직서를 내기 위해 총리 관저를 나오면서 눈물을 흘렸다. 영국 국민의 저항이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후임 존 메이저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인두세를 폐지하고 소득에 따라 부과되는 새로운 세금(Council Tax) 제도를 만들었다.

물론 그 배경과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영국의 경험은 정부의 부당한 정책에 대한 시민의 건전한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방통행을 하는 정부도 그렇고, 평화롭게 뜻을 알리려는 시민을 향한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도 닮았다. 그런데도 한국 시민들은 문화제를 무려 20여 회가 넘게 이어가며 여전히 평화롭게 촛불을 지키고 있다.

1989년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인두세가 1993년 존 메이저 총리에 의해 폐기되기까지 무려 4년여의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때 국민이 저항하지 않았다면 빈부 격차를 더욱 심하게 만들었을 이 잘못된 정책은 지금까지 영국 시민들의 목을 옥죄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한국 시민들이 촛불 시위와 그 정신을 지키지 않았더라면 정부의 잘못된 고시는 아주 자연스럽게 발효됐을 것이다. 부당함에 저항한다는 것, 그 과정은 참으로 혹독하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국민의 참뜻은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역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2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열린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및 재협상을 촉구하는 26차 촛불 문화제에서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2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열린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및 재협상을 촉구하는 26차 촛불 문화제에서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태그:#대처, #인두세, #촛불문화제, #저항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