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집사람은 내가 혼자서 돌을 쌓는 동안에 잔디가 심어진 사면의 석축위에 야생화를 심었다.
▲ 시랑헌으로 가는길 집사람은 내가 혼자서 돌을 쌓는 동안에 잔디가 심어진 사면의 석축위에 야생화를 심었다.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세상에 가장 재미있는 일

몇 가지 모종을 사서 지리산 시랑헌으로 가는 길에 집사람에게 "여보!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뭘까?" 하고 질문을 던졌다. 갑작스런 나의 질문에 집사람은 대답보다 질문하는 저의를 찾으려는 듯 내 눈치를 살핀다. "내 일을 하는 것 아닐까?" 답을 가르쳐 주면서 다음 질문을 던졌다. "제일 재미없는 것은?"하고 물었더니 앞 질문에서 힌트를 얻었는지 집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남의 일 해주는 거지"라고 대답한다.

"그렇치~이…."

일오(우리집 세퍼트)가 심부름을 아주 잘했을 때 해주는 칭찬이다.

"여보! 그러면 말이야, 여기다가 너와 나의 구분을 없애버리면 뭐가 되지?"

시랑헌으로 출발하면서부터 나의 뇌리를 맴도는 본 질문을 집사람에게 던졌다. 집사람은 제법 심각해지더니 한참 만에 "노동의 순수한 즐거움이지 않을까?"라면서 말꼬리를 흐린다. 

노동의 순수한 즐거움이라…. 물리적으로는 가장 좋은 것과 가장 싫은 것을 섞으면 아무맛도 없는 맹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저녁이 되면 허리도 못 펴게 피곤하고, 몸에는 온갖 상처고 님도 못 알아보게 얼굴이 그을리는 노동에 순수한 즐거움이 있다는 말이지, 그것도 남을 일을 해주면서.

아직은 모를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남이 우리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서운해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이 부모 형제요, 자식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마치 자식에게 상속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마냥 아들에게 서운했고 딸에게 섭섭했다. 그런 나도 동생이 점포를 옮겼어도 가보질 못했고, 여동생이 병원에 입원했었지만 퇴원 후 소식을 들었다는 핑계로 가지 못했다.

시랑헌 텃밭에 심으려고 대전에서 사온 각종 모종들
▲ 모종 시랑헌 텃밭에 심으려고 대전에서 사온 각종 모종들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김기사에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텃밭, 윗사면이 불안정하다.
▲ 텃밭 김기사에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텃밭, 윗사면이 불안정하다.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산에서 땅을 얻는다는 것은 석축을 쌓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텃밭을 경사지게 할 수 없어 평지를 만들려고 석축을 쌓았더니 땅 값이 만만치 않게 되어버렸다. 돌 운반비 및 구입비(50만), 굴착기기사 인부임(15만), 굴착기 연료비(10만), 석공인부임(20만), 보조인부임(8만)을 계산하면 임야구입비, 내 인부임, 굴착기 수리 및 감가상각비, 인부들 간식 및 식사비를 재외 한다고 치더라도 평당 20만원이 훌떡 넘어가는 땅이 되어버렸다.

토요일 24일 아침에 시랑헌에 도착하여 김 기사에게 5평의 텃밭을 인계 받아 대전에서 사간 모종을 심으려고 했지만 텃밭 상부의 붕괴 위험성 때문에 모종을 심을 엄두가 안 난다. 그렇다고 텃밭을 평당 50만원이 넘어가는 땅을 만들 수는 없다. 실제로 경사져서 못쓰는 땅을 감안하면 두 배인 100만 원도 과한 계산이 아닐 것이다.

내가 석축을 쌓아야 하는 사연

집사람은 김 기사의 과다한 비용청구 내역 때문에 곧 터질 정도로 화가 나 있는 상태이다. 일단 김 기사를 돌려보냈다. 김 기사는 우리가 오두막을 일단락 짓고 터를 다듬기 시작할 때부터 같이 일을 시작한 어떤 의미에서는 동지이다.

나는 굴착기 운전기술이 서툴고 김 기사는 사업에 실패하여 굴착기가 없다. 나와 김 기사는 상호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구비된 셈이다.

한 달 정도의 일정으로 하루에 13만원씩 지불하기로 하고 김 기사를 고용했다. 나도 별난 사람이지만 김 기사도 만만치 않다. 오늘까지 약 50여일 우리 집터 일을 하는 동안 나와 김 기사는 파국으로 치닫는 대립을 세 차례나 하였다.

김 기사는 40여일 우리 일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취직하여 간다고 하면서 우리를 떠나갔고 나는 김 기사 송별식도 해줬다. 건설사 식당에서 만난 안 반장(산동~고달 간 도로공사 시공사의 하청업자, 김 기사를 소개한 사람)이 김 기사가 새 직장에서 일주일도 못돼 그냥 왔는지 쫓겨 왔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집에서 놀고 있으니 시킬 일이 있으면 불러서 시키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없는 동안 십여일 일을 부탁하였더니 집사람 상식으로 이해하기 곤란한 명목까지 포함시켜 청구한 모양이다. 김 기사는 가면서 "사모님이 많이 화가 나신 모양이나 먹고 살기 위해 한 짓이니 박사님이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하는 같은 처지의 가장으로서 김 기사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나 집사람 앞에서는 같이 맞장구를 쳐야한다.

돌쌓기에 나선 집사람, 여자들에게 크고 무거운 돌을 다루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 석공 아줌마 돌쌓기에 나선 집사람, 여자들에게 크고 무거운 돌을 다루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석축을 쌓아야하기에 돌집게를 장착하고 굴착기 운전석에 앉았다.
▲ 굴착위의 나 석축을 쌓아야하기에 돌집게를 장착하고 굴착기 운전석에 앉았다.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나와 집사람 둘이 남았다. 모든 일은 천천히 그리고 둘이서 한다는 초심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공주 철공소에 120만원을 주고 주문한 돌집게를 장착하고 굴착기 위로 올라갔고 집사람은 석공을 자처하고 나섰다.

아주 능숙한 굴착기 기사들은 가끔 혼자서 돌을 쌓지만 결과는 매우 조잡하여 중요한 장소에는 석공과 같이 쌓는다.
▲ 혼자 돌쌓기 아주 능숙한 굴착기 기사들은 가끔 혼자서 돌을 쌓지만 결과는 매우 조잡하여 중요한 장소에는 석공과 같이 쌓는다.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크고 무거운 돌을 다루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어디 집사람이 감당할 일인가? 혼자서 해볼 요량으로 아래 터에서 큰 돌과 잔돌을 모아 작업이 가능하도록 텃밭에 정리하였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돌쌓기에 6천만 원이 넘어가는 돈을 썼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혼자 해야 할 처지이다. 그러나 슬픈 얘기이지만 나와 같이 돌을 쌓자면 나의 굴착기 운전 실력을 아는 인부들은 망설인다. 아니 거절한다.

나는 그동안 봐 온 경험과 굴착기 실무책의 내용을 응용하고 상기하면서 기초 터파기를 하고 석축의 앞면을 잡는 줄을 띄웠다. 이제 기초 큰 돌을 놓고 절반 쯤 묻은 상태에서 줄과 나란해야한다. 돌 한 덩어리 놓는데 30여 분 이상 걸린다. 옆에서 보고 있던 집사람은 안타까워 더 이상 보기 힘든지 공터에 대전집에서 가져온 야생화를 심으러 간다.

세덩이 째 돌을 놓고 있는데 박씨 아저씨가 올라오신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나 선뜻 같이 돌을 쌓자고 하기가 힘들다. 박씨 아저씨가 나를 놀리는 듯 제안을 한다. 오늘 중으로 저 밑에 있는 돌을 한 덩이라도 텃밭으로 올려놓으면 같이 돌을 싸주겠단다.

나는 돌집게를 이용하여 큰 돌을 가져왔고 5분 걸렸다. 내심 놀란 박씨 아저씨는 점심시간까지 석축에 필요한 돌을 올려다 놓으면 오후에 같이 석축을 쌓잔다. 나는 부지런히 돌을 날랐고 오전 11시도 못 되 석축에 사용할 돌 나르기를 마쳤다.

몸을 다쳐 망정이지, 왕년의 돌 쌓은 솜씨는 여전하다.
▲ 박씨아저씨 몸을 다쳐 망정이지, 왕년의 돌 쌓은 솜씨는 여전하다.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저녁 7시가 넘어가자 날이어두어 석축작업이 위험하다. 서둘러 일을 중단하고 급히사진을 찍었다.
▲ 미완성 석축 저녁 7시가 넘어가자 날이어두어 석축작업이 위험하다. 서둘러 일을 중단하고 급히사진을 찍었다.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돌쌓는 예술

박씨 아저씨는 공들인 석축을 무너트리는 나의 엉터리 실수를 파안대소로 넘겨줬고 나는 불편한 박씨 아저씨 몸이 파김치가 되지 않도록 틈만 나면 굴착기 운전대에서 내려와 돌이 제자리를 잡도록 도왔다.

앞 돌이 무너지지 않게 뒤에 채우는 돌을 우라돌이라고 한다. 박씨 아저씨와 나는 성심성의껏 우라돌을 모아서 채웠음으로 기성 석공들이 쌓은 석축보다 더 튼튼할 것으로 자부한다.

돌쌓기 삼매경에 빠져 있다보니 저녁 7시가 넘었다. 어두워 위험하다. 마지막 뒷마무리는 다음 주말에 하기로 하고 시랑헌으로 올라가니 집사람이 술상을 마련해 놓고 개선 용사들을 기다린다. 나와 집사람 그리고 박씨 아저씨는 승리의 감격을 곁들여 술잔을 부딪친다.

석축의 공포를 뛰어 넘었다. 내가 굴착기로 석축을 쌓았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고 즐거운 일이다. ‘물론 내 일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같이 즐거워하고 축하하는 박씨 아저씨는?

‘남의 일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로 생각을 바꿔야겠다. 다만 한 일에 대한 보람과 자기 능력이 재확인되어야겠지. 박씨 아저씨는 그동안 힘을 쓰는 일을 매우 부담스러워 했다. 특히 돌을 쌓다가 몸을 다친 박씨 아저씨에겐 돌 쌓는 일은 향수(鄕愁)와 같은 일이다.

돌은 한 개도 같은 모양의 돌이 없다. 돌 쌓는 일은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작업이다. 그 일을 하는 동안에 쉽게 삼매경에 빠진다. 내가 해보고 나서 얻은 소중한 경험이다.

도로 위쪽 ‘마지막 남은 200㎡ 정도 돌쌓기를 내가 해버릴까?’ 굴착기가 구르면 목슴 내놔야 하는데….

덧붙이는 글 | 산골에 살기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태그:#돌쌓기, #석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